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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나눔이다 - "부활하는 토종벼, 밥맛을 찾다!"

입력 : 2018-01-25 15:54:00
수정 : 0000-00-00 00:00:00



“부활하는 토종벼, 밥맛을 찾다!”

0.0001%의 미래, 토종쌀의 맛과 멋


(사진 설명_한반도 지역을 대표했던 토종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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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지난 1월 20일(토) 서울혁신파트 맛동에서 ‘2018 전국 토종벼 전국대회 &, 8도 토종쌀 맛보는 날’ 행사가 열렸다. 이 자리는 우리나라에서 토종벼를 재배하는 농부들이 2017년 한해 동안 토종벼 품종을 재배한 다양한 경험을 도시민, 농부, 요리사들과 나누는 자리였다. 토종벼 논농사를 지으며 농법, 공동체, 품종, 생물다양성, 판로와 가공, 토종볍씨 나눔 등 중요한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워크숍과 함께 그동안 한 번도 맛보지 못한 한반도 8도의 대표 토종쌀 품종을 전시하고 시식하는 자리이기도 했다.  

어떤 예술가보다 멋지고 다양한 생명을 키우고 나누는 농부들이 만든 토종벼의 아름다움을 ‘예술은 나눔이다’ 코너에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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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_우보농장에서 지난해 재배한 벼 100여 품종이 다양한 형태로 전시되어 주목을 받았다)


수천 년 동안 한반도에서 우리 농부들이 재배하며 이어왔던 벼의 품종이 1451종(1911년 기준, <조선도품종일람>)에 달했다고 한다. 추정해보면 한반도 전 지역에서 리(里) 단위로 쌀의 품종이 달랐다는 얘기다. 작년(2016년)에 전국에서 생산된 쌀 420만 톤 중에 토종벼 품종 재배 수량은 5톤 남짓이다. 일제강점기 전까지 우리 밥상의 주인으로 자리 잡았던 토종쌀이 이제는 모두 사라지고 0.0001% 남짓밖에 없는 것이다. 토종쌀이 이제는 거의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다양한 맛과 향, 그리고 농부의 시간과 역사가 빚어낸 그 많던 토종벼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토종벼 고유의 아름다움에 빠져 시작된 나의 논농사가 7년째를 맞고 있다. 2011년, 전국의 오래된 농부와 씨앗 나눔 단체 등에서 5년 동안 모아온 20여 품종을 3평에 심은 지 7녀 차(2017년 현재), 우보농장의 논에는 100여 품종의 토종벼들이 자라고 있다. 토종벼 논농사를 통해 나는 한 톨의 씨앗이 1000알의 씨앗으로 확산되는 볍씨의 경이로운 번식 능력을 경험했다. 또한 한 알의 볍씨를 구할 때마다 그 각각의 고유한 모습과 이름, 그리고 성장 과정의 독특함에 빠지게 되었다. 그동안 토종벼를 재배하면서 지역의 땅과 기후, 시대가 요구하는 농부의 선호도에 따라 다양하게 분화되어 이 땅의 식문화를 다양하게 살찌웠음을 알게 되었다. 

토종벼는 흔히 키가 커서 잘 쓰러진다거나, 쌀알이 작아 수확량이 적다거나, 대부분 까락(벼수염)이 있어 관리가 불편하다는 말은 피상적인 토종벼에 대한 편견이었다. 토종벼는 한반도 전역에서 수천, 수백 년을 진화해 오면서 각각의 지역과 토양, 기후에 따라 너무나 다양하게 변화해 왔다. 그러다 보니 1500여 종 이상이 지역적으로 고정화되어 고유한 특성을 띄게 된 것이다. 사람 키만큼 큰 녀석이 있는가 하면(북흑조/달못곳), 무릎 아래로 자라는 녀석이 있다.(졸장벼/앉은뱅이벼) 술을 담가도 좋을 만큼 쌀알이 큰 녀석이 있는가 하면(원자벼/천주도), 일반 쌀의 절반 크기지만 맛에서는 으뜸인 녀석도 있다.(흑갱/버들벼) 

토종벼는 까락과 낟알마다 고유한 자신의 색을 간직하고 있다. 논에 불을 질러 놓은 듯한 녀석(다백조/붉은차나락)이나, 꿩이 날아와 앉아 있는 듯한 녀석(까투리찰), 벼가 익으면 황금벌판이 된다는 통설을 여지없이 깨버리며 검은 들판을 이뤄내는 녀석(흑저도/흑도/흑갱)들을 키우다보면 한반도라는 좁은 공간에서 어떻게 이토록 다양하고 아름다운 색과 모양을 만들어 냈는지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자연이 만들어내는 다섯 가지색(오방색)을 그대로 닮은 게 토종벼들이다. 다수확 품종만을 고집했던 개량종에게서는 도저히 볼 수 없는 고유한 아름다움을 토종벼는 간직했던 것이다.


(사진 설명_농업인의 씨앗 대동'벼'지도)


자연과 더불어 생존하려는 토종벼의 유전적 특징 중 개량종과 가장 차이가 나는 게 큰 키이다. 무릇 생명이란 자연 속에서 살아남는 법을 스스로 터득하는 법인데, 토종벼들은 씨앗으로 번식하다보니 다른 풀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을 키웠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살림살이에 없어서는 안 될 볏짚을 얻기 위해 농부들이 키 큰 녀석들을 선택적으로 선발 육종하면서 키 큰놈들이 많아졌다. 요즘이야 볏짚 쓸 일이 없으니 태풍에도 잘 쓰러지지 않는 작은 키의 벼들을 개량시켜 일정한 크기의 벼들만이 자라고 있다. 

키뿐만이 아니다. 현재 토종벼의 80% 가량에 달려 있는 까락(벼수염)은 우리나라 논에서 생산되는 대부분의 개량종 벼에는 없다. 이는 탈곡과 도정을 할 때 불편하기 때문에 인위적으로 까락을 제거한 것이다. 까락이 있는냐, 없느냐는 현대의 논농사와 과거의 논농사를 구별하는 대표적인 잣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벼에게 있어 까락이란 살아남기 위한 주요한 기반이었다. 까락이 있음으로써 가뭄을 버티고, 해충과 새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궁극적으로 동물의 털이나 바람에 날려 자신의 종족을 퍼트릴 수 있었다. 다시 말해 까락의 존재 이유는 자연의 여러 상황에 맞춰 자신을 지키는 필수적인 생존 전략이었다고 볼 수 있다. 결국 토종벼는 야생성을 스스로의 몸체에 유전적으로 갖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들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야생성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까락이 현대의 논농사에서는 필요치 않게 된다. 가뭄은 석유를 써서 양수기로 물을 공급하고, 해충 피해는 농약으로 해결하고, 종족 번식은 인간의 손에 의해 개량되어 대량 생산이 가능한 시대이기 때문이다. 결국 토종벼 농사를 지으려면 벼의 야생성을 살리는 전통농법, 즉 생태농법을 익혀야만 제대로 된 벼농사를 짓는다는 결론이 나오게 된다.


(사진 설명_한반도 16도 막걸리)


지난 해 토종벼 가운데 자광도(紫光稻)를 본의 아니게 두 곳의 논에서 키우게 되었다. 한 곳은 산에서 퍼온 흙으로 객토한 밭을 논으로 만든 곳이고, 다른 곳은 화학비료로 벼를 키우던 곳이었다. 거름기가 거의 없는 객토한 논의 자광도가 하나도 쓰러지지 않고 건강하게 자란 반면, 화학비료의 성분이 남아 있는 논에서 키운 자광도는 낟알 수는 많았지만 남김없이 쓰러지고 말았다. 토종벼의 자생성과 야생성을 무시한 채 인위적인 비료 투입이 낳은 결과였다. 

농촌진흥청에서 발표된 자료에 의하면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던 1912년 우리나라 벼 재배면적의 97%를 차지했던 재래벼(토종벼)들이 1923년에는 33%로, 다시 1928년에는 22%로 재배면적이 크게 줄어들었다고 한다. 일본의 다수확 도입 품종 등에 밀려나고, 70년대 통일벼 계통에 밀려 현재 순수한 우리 토종벼는 농가에서는 재배하지 않고 있으며, 농촌진흥청 종자은행에 450여 품종이 박제화 된 채 보존되고 있다. 수확량 절대주의 시대를 살아오면서 획일화된 개량종으로 맛의 획일성도 가속화되었던 것이다.

모든 것은 이어져 있다.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 나의 몸과 정신의 끈이 확인된다. 내 식탁에 올라온 한 그릇의 밥에 깃든 역사 즉, 어떤 경로와 누구의 손길, 어떤 농법에 의해 지어진 것인지 눈여겨 볼 때다. 

토종벼를 심은 2년차부터 품종별로 아름다움을 넘어 토종쌀 맛의 특성을 알고 싶어졌다. 수십 가지의 토종벼를 조금씩 도정해서, 매년 여러 농부, 요리사, 도시민들과 토종쌀 맛보기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토종쌀의 다양성과 새로운 가능성을 탐험하는 작은 몸짓들이 이곳저곳에서 움트고 있다. 몇 해 전부터는 쉐프들이 나서서 토종쌀 요리를 개발하고, 이에 따라 토종벼를 심으려는 농부들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주로 생태적으로 농사를 짓기 위해 귀농한 농부들과 쌀을 자급해보려는 도시농부들이다. 천편일률적인 개량종 볍씨보다는 우리 땅에서 자라고 적응했던 수백 종에 달하는 다양한 볍씨들 가운데 나만의 볍씨를 찾고, 내 밥상에 어울리는 쌀로 밥을 지어보려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는 한 그릇의 밥에 하늘과 땅과 인간의 땀방울이 담겨 있다고 했지만(一碗之食 含天地人), 지금 우리가 먹는 한 그릇의 밥에는 석유와 농약과 화학비료가 담겨 있는 시절(一碗之食 含油藥肥)을 살고 있다. 건강한 농법으로 토종벼를 키우는 농부들과 이렇게 키운 다양한 토종쌀을 새로운 요리로 재탄생시키는 요리사, 이들을 신뢰하며 밥상의 건강을 찾으려는 소비자들이 확산되어 하늘과 땅과 농부가 키워서 지은 다양한 품종의 밥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때가 오기를 꿈꿔본다.


(사진 설명_토종벼의 키와 까락, 색깔을 한눈으로 확인해 볼 수 있는 벼 표본 전시)



(사진 설명_한반도 8도 토종쌀밥 맛보기)
 

 

우보농장 이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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