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71) 적성 오일장 30년 수구레집 '친절한 양심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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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 오일장 30년 수구레집 '친절한 양심 씨'
"장에 나와 사람들 만나면 세상 돌아가는 것도 보고 좀 좋아"
33년이란 세월 한 자리를 지키며 가업을 잇거나 한 가지 일에 매진해 살아온 이들을 우리는 흔히 ‘장인’, ‘달인’이라 부른다. 그러나 여기 30여 년의 긴 시간 파주의 외진 장바닥을 지키며 살아 왔으나 스스로를 ‘장돌뱅이’라 낮춰 부르는 한 사람이 있다.
조양심씨. 오늘은 그녀를 만나러 적성 오일장(매5일, 10일)에 나섰다.
파주 문산의 자유로에서 연천까지 이르는 37번 국도를 타면 이제는 빠르게 진입할 수 있는 작은 읍 소재지. 적성면. 옛길의 정취가 속도에 밀려 잊혀져가 듯, 대형마트와 각종 편의시설에 밀려 한산해진 적성 오일장의 끄트머리 즈음에 이르면 속칭 ‘못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어 본 이는 없다’는 수구레집이 있다.
적성장 30년된 수구레집
수구레란 소의 가죽 껍질과 쇠고기 사이의 아교질을 일컫는 말로 쫄깃하게 씹히는 맛이 일품이라 미식가 사이들 사이에는 이미 널리 알려진 음식이지만 일반인들은 다소 생경한 단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수구레를 누린내가 나지 않도록 씻고 손질하는 과정이 쉽지 않으니 아무나 무턱대고 뛰어들 수 있는 음식 종목은 분명 아니라는 점에서 여기 적성오일장, 조양심씨의 수구레는 더 각별해진다.
잡내를 전혀 느낄 수 없는 고유의 고소함과 풍미, 매콤한 양념의 조화에 별다를 것 없이 참나물과 대파뿐인데 한 번 먹은 뒤 30년 단골이 되었다는 이들의 발길을 사로잡고 있으니 말이다.
늘 그래 왔듯, 비닐로 둘러쳐 진 매장의 한 쪽 비닐을 들추자 변함없이 두엇 손님들이 입살 좋은 양심씨에게 험한 잔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니까 그 국물에 밥을 볶아서 먹어보라니까, 이것들아. 얼마나 맛있는 데 말을 안 들어 쳐먹어?”
내용인 즉, 점심때가 되었으니 기왕 시켜먹은 수구레 전골에 조양심 씨가 집에서 싸온 밥이 있으니 끼니까지 떼우고 가라는 내용이었던 것.
“아, 이모 지금도 배부른데 뭘 자꾸 먹으래요?”
내용을 모르는 이가 지나다 들었다면 주고받는 소리의 크기는 싸움이라도 난 줄 착각할 정도로 하우스 안은 시끄러웠다.
“장돌뱅이는 장바닥이 편하지”
비닐 한 장으로 1월의 한파와 맞서 살아 온 양심 씨의 겨울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멋드러진 매장에 휘황한 조명, 잘 갖춰진 주차 시설과는 거리가 먼, 삶의 변방 같은 장바닥 한 구석에 부려진 비닐하우스여서인지 인산인해의 손님들은 없이 그저 한 테이블 다 먹어간다싶으면 오가던 이들이 추위를 피해 혹은 그리운 맛을 찾아 비닐 휘장을 들추고 끊임없이 들어서고 있었다.
30여 년 이골이 난 장바닥 인생에서 딱 1년 쉬었다. 수구레를 구하러 마장동 시장으로 장을 보러 가던 중 남편과 함께 탄 차가 전복하는 교통사고로 장사를 쉰 일 말고는 오 일 마다 돌아오는 장을 떠나본 일이 없다는 양심 씨.
“가게가 없으니까 내가 없으면 이 수구레도 없는 거거든. 내가 아무리 아파도 수구레 한 그릇 먹으러 올 사람들 생각하면 집에 못 있어. 더 아픈 거 같고 맘도 안 편해. 장돌뱅이는 장바닥이 편하지. 장돌뱅이는 장에서 이렇게 살다 장에서 죽는 겨.”
어렵게 얻은 아들 하나마저도 할머니에 맡기고 오로지 삶의 외진 길을 따라 30여 년. 어쩌다 만들어 본 수구레, 예전에야 귀한 대접 받을 부위가 아니었을 그것을 들고 장바닥에 나와 팔아 돈을 만들어 가면 아이의 우유 값이 되고 쌀을 팔아 식구들의 끼니가 되던 것을 시작으로, 떠돌아 살길 30년.
어렵던 시절 그녀처럼 곁을 지키며 오일장에서 만나는 상인들이 이제는 피붙이보다도 가깝게 느껴진다는 조양심 씨의 말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 때,
“언니, 나 속이 영 안좋아, 막걸리 한 사발 먹고 갈게.”
전대를 매고 하우스로 들어서는 폼새로 보아 근처 상인인 듯 보이는 이가 자연스럽게 막걸리 한 사발 따라 먹더니 전대에서 천 원짜리 한 장을 꺼내어 슬쩍 테이블에 올려 놓고 돌아서고 있었다.
그 모양을 본 양심 씨가 썰던 순대를 다 내려놓고는 잽싸게 돈을 집어 돌아서는 그녀의 전대로 우겨 넣고는 “지X하네…….” 짧게 내뱉던 욕지기는 오히려 정겹게 들리고 있었다.
“5년 전만 해도 적성장이 90호가 넘었어”
“어이, 여기 수구레 1인분하고 막걸리 한 주전자 줘 봐.”
한 무더기의 손님이 들어서고 양심 씨가 반갑게 맞이하는 행색으로 보아 오랜 단골인가보다 했지만, 지인을 이끌고 하우스로 들어선 이는 적성장이 서는 마지1리의 이장 이윤희 씨였다.
적성면의 이장단 협회장을 맡아 보고 있다는 이윤희 씨는 오일장이면 빠짐없이 장을 둘러보러 나온다고 하였다. 빠르게 발전해가는 파주의 그늘인 양 낙후된 모습에서 더 나아갈 방향을 찾지 못하고 있는 북파주 지역의 주민들. 그들의 일상을 가장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는 재래시장 그리고 오일장. 집집마다 한 가지 작물씩 심어 먹고, 다 먹지 못하는 것들은 이고 지고 나와 장날에 팔아보곤 하던 이 시장의 정취를 가장 오랜 시간 보고 겪으며 나고 자란 그가 이 오일장과 재래시장에 갖는 애착은 각별해 보였다.
“10년, 20년 전이 아니고 바로 5년 전만 해도 오일장에 오는 장돌뱅이가 90호를 넘겼었어. 이제는 60호 남짓 남았는데 봐 봐. 이렇게 할매들뿐이잖아. 사람들이 다 큰 마트를 좋아해. 군인들 장사해서 먹고 살았는데 이제 군인들도 여기로는 오지 않지. 시내로 나가고, 도시로 나가고. 다 누이 같고 동생 같은 사람들 굶어 죽을까봐 나라도 나와 봤지. 고맙지? 하하.”
“하이고, 퍽도 고맙네. 술 한 잔 하러 오셨잖여? 길이 좀 좋아졌어야지, 세상이 달라졌으니까 할 수 없지 뭐.”
“그나저나 우리 32일에 데이트하는 거 맞지?”
“그럼요, 32일엔 만나야지.”
저들끼리 박장대소 하는 사이에서 어리둥절해 하자 그런 내 모습이 우스웠는지 하우스 안은 한동안 웃음이 이어졌다.
수구레 앞집 50년 건어물상
이 장바닥에서 오일에 한 번이면 한 달 여섯 번이 되는데 이 장만 가는 게 아니다. 파주 장을 떠도는 장돌뱅이들도 있고 여기 적성장만 오는 이들도 있고 하기에 이 곳에서 정든 사람들끼리는 장날에 보는 게 전부라고. 따로 만날 시간들이 여의치 않아 더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을 저리 농으로 전하고 있는 것이라 했다.
그때 무슨 일인가 다니러 오셨다는 고령의 할머니. 수구레집 앞에서 건어물 장사로 50년 이 자리를 지켜 온 적성장에서 가장 오래 장사 한 분이라고 전했다. 누구 하나 안 보이면 서로가 서로를 걱정하며 지내온 세월. 30년, 50년.
근처의 작은 산사 아미사 주지 스님이 양심 씨의 점심으로 두고 갔다며 떡볶이를 내민다.
“조금 짜. 그래도 먹을만 한데 먹을텨?”
쑥스러운 듯 빙긋 웃는 양심 씨의 얼굴에서 전해지는 체감온도는 확실히 ‘진달래 온도’였다.
장돌뱅이, 길 위에 부려진 삶
이상하리만치, 나는 오일장에 가면 마음이 좋았었다. 그래서 마음 한 편 쓸쓸한 날이거나 아무 약속이 없는 날이면 슬쩍 달력을 보고 날짜를 가늠해 오일장을 찾곤 하는 버릇이 있었다. 연유에 대해 딱히 설명할 수 없으나 길 위를 지켜온 이들이 전해주는 이 정겨움 때문이었던 건 아니었을까. 막연하던 감정의 실체를 마주하게 되었던 겨울의 이 하루.
“장에 나와 있어야 사람들을 만나잖아, 배운 것도 없고 아는 것도 없는 사람이 집에 틀어 박혀 있으면 아무 것도 몰라서 어떻게 살아, 사람들 만나면 이 소리 저 소리도 듣고 세상 돌아가는 것도 보고 좀 좋아.”
오일장이 열리는 전날이면 마장동 시장으로 달려가 어김없이 수구레를 구해오고, 직접 손질하고 다듬어 주는 남편. 장날 아침이면 비닐장터를 지었다 어스름 막장 즈음이면 허물어내는 부부. 그들 부부가 그리고 있는 삶의 흔적들.
조양심 씨가 건네는 이야기들은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아주 작은 들꽃 같이 이름 없지만 길가를 빛내고 풍경이 되어주곤 하는 이야기들. 파주시 적성읍 마지리 적성 오일장. 네비게이션에 찍을 수도 없는 길. 스포트라이트에서 비껴난 변두리.
그러나 분명 파주의 어느 한 부분에서 우리 지역 풍물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무던히도 한 가지 맛을 고집하며 30년 넘는 세월 동안 사람들과 정하지 않았으나 어길 수 없다는 약속을 지켜가는 수구레 장수 조양심 씨.
세상의 중심으로 살고 싶은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 낸 행복의 수치는 얼마나 높아져 있을까? 그 대열에 들기 위해 경쟁하느라 우리가 잊어가는 것은 또 무엇이었을까? 지는 노을처럼 삶의 정점을 넘어섰으나 충분히 행복해 보이는 모습으로 길 위의 인연들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적성 오일장 수구레집 양심 씨. 구수한 맛에 영양까지 일품인 그녀의 수구레는 어쩌면 길 위의 사연들까지를 덤으로 담아 더 좋은 맛을 간직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부디, 잊혀져가는 오일장과 재래시장들이 활성화되어 더 많은 파주시민들에게 이런 정서가 전달될 수 있길 소망해 본다.
주성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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