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과 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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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산과 산후 조리
젊은 여성 환자들이 스스로 탕약을 지어 먹겠다고 오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대개는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가 산모의 손을 끌고 산후 보약을 지으러 온다. 그리고 산후 보약을 먹는 여성 환자의 10퍼센트는 한의학에서 반산(半産)이라 불리는 자연유산이나 낙태가 원인인 경우다. 산부인과에서 자연유산이 아닌 낙태는 불법이다. 낙태의 윤리적 또는 법적인 면은 여기서 논외로 하겠다. 한 가지 걱정인 것은 낙태의 불법성이 언론에 부각되는 경우는 많지만 낙태 이후 여성의 건강에 대한 관심은 별로 없다. 불법적 낙태이건 유산이건 간에 여성에게는 반산 이후 조리가 아주 중요하다.
얼마 전, 30대 직장여성이 자연유산을 했다며 약을 지으러 왔다. 임신 6주 만에 계류유산(사망한 태아가 자궁 내에 있는 것)임을 알게 되어 산부인과에서 수술을 받은 후 바로 우리 한의원을 방문한 것이다. 나는 적어도 사흘 정도는 쉬라고 말했지만 회사일이 많고 눈치가 보여서 그럴 수가 없다고 했다. 첫 임신이어서 충격이 컸던지 손을 약간 떨었고 음성도 차분하지 못했다. 결혼한 지 3년 만에 첫 임신이었다며 눈물을 흘리는 그녀.
그때부터 나의 진지한 설득이 시작되었다. 밖에서 상담이 끝나기를 기다리던 남편도 들어오라고 해서 겁을 주었다. “유산이 반복될 수 있다.”, “습관성 유산 끝에 불임이 될 가능성도 크다.”, “반산 후 제대로 된 조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느냐.”설득을 위해 과장을 하긴 했지만 의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아이를 정말 원했던지 부부는 내 이야기에 눈빛이 흔들렸다. 무조건 사흘 이상은 쉬기로 부부에게 약속을 받아내고서야 나의 설득은 끝이 났다.
밤송이와 여성의 자궁
가을에 밤을 주우러 가 본 적이 있는가?
잘 익은 밤송이는 껍질이 스스로 벌어져 발로 살짝만 눌러 주면 껍질과 알이 바로 손상 없이 분리된다. 그러나 덜 여문 송이에서 밤을 얻으려면 억지로 껍질을 벗겨 내야 하고 강제로 힘을 쓰다 보니 껍질에 찔리기도 하고, 열매를 얻어도 손상되고, 알이 차지 않은 밤을 얻게 된다. 유산·낙태 이야기를 하다가 밤 이야기가 나와 의아해할 것이다. 이 말은 『동의보감』의 「잡병10 부인」 ‘반산’편에 나온다. 『동의보감』에서는 정상 출산을 잘 익은 밤에 비유하고 반산(半産)을 덜 여문 밤송이에 비유한 것이다. 덜 익은 밤송이에서 밤을 얻겠다고 억지로 다루다 보면 손상을 입게 되는 것처럼 반산은 자궁이 손상되고 탯줄이 억지로 끊어진 연후에 태아가 떨어져 나오는 것이다. 내가 정말 환자에게 하고 싶은 말을 『동의보감』에서는 이렇게 전해주고 있다.
“반산(半産)은 정산(正産)보다 10배의 조리치료를 해야 한다.”
[半産 須加 十倍 調治]
이와 같이 한의학에서는 정상적인 출산보다 유산 후 조리에 훨씬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상 출산 후에도 조리를 잘못하면 산후풍으로 고생을 심하게 하는데 반산은 오죽하겠는가. 반산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 마음가짐이 정말 중요하다.
래소한의원 권해진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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