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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고장 역사 교실 - 교하 물푸레나무

입력 : 2014-12-22 15:44:00
수정 : 0000-00-00 00:00:00

내 고장 역사 교실 - 교하 물푸레나무

“주민들이 지켜내 기념물이 되다”

교하 대원효성 아파트 입구 오른쪽에 커다란 물푸레나무가 서 있다. 택지를 개발하면서 인위적으로 심은 것이 아니라 물푸레나무를 살리면서 택지를 개발한 것이다. 수령이 150년 정도, 파주에는 그 이상 오래된 나무도 많은데, 택지를 개발하면서 이 물푸레나무를 보호한 이유는 무얼까?

 

농기구로 제작되던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는 흔하디흔한 나무로, 껍질을 벗겨 물에 담그면 물을 푸르게 만든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민간에서는 껍질을 말려 각종 질병을 치료하는 한약재로 사용했다. 또, 재질이 단단하여 각종 농기구와 생활용품을 만드는 데 이용했다. 우리나라는 1960년대까지 농업이 산업의 중심이었다. 국민은 대부분 농부였고 농업과 관련된 일에 종사했다. 농기구나 생활용품을 만들라치면 주변에 있는 물푸레나무를 베어 용구를 만들어 사용한 것이다. 

“재남아, 도리깨 좀 만들게 물푸레나무 좀 베어 오너라.”

“아버지는 왜 나만 시켜요? 인수한테 시키세요.”

물푸레나무는 자라기가 무섭게 베어져 목재로 활용되거나 한약재로 사용되다 보니 100년 넘도록 수명을 유지하는 것이 어려웠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파주 무건리 물푸레나무

물푸레나무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도 흔하게 구할 수 있어서 관심 밖의 나무였다. 그런데 1982년에 적성의 무건리에 있는 물푸레나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무건리 물푸레나무는 수령이 약 150년 정도로 높이가 15m, 가슴높이의 둘레가 3.29m로 거목이다. 물푸레나무가 오랫동안 살아남아 거목으로 성장하는 것이 쉽지 않고 나무 모양도 아름다웠다. 또한, 무건리 농민들이 일을 하다가 더위를 피하는 쉼터 역할도 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은 것이다. 

 

시민들이 지켜낸 파주 교하 물푸레나무

한편, 택지 개발 지구로 지정되기 전까지 교하는 대한민국의 여느 농촌처럼 작은 산들과 농지로 이루어진 자연 마을이었다. 특히 다율리에는 물푸레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다율리에 살던 주민이 다른 사람들과 적성으로 답사를 가게 되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무건리 물푸레나무를 보고서는 놀라워했다.

“우리 마을의 정자목도 물풀레나무인데, 이 나무는 천연기념물이 되었네?”

“정말이에요? 확인해 봐야겠어요.”

잎사귀를 비교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물푸레나무였다. 주변이 온통 물푸레나무 군락을 이루고 있었다. 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교하 택지 개발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주민과 환경운동가들이 택지 개발에 대한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고, 결국 작은 물푸레나무들은 베어졌지만 그중 가장 큰 물푸레나무가 살아남게 되었다. 한 그루만 덜렁 남은 나무가 쓸쓸해 보이지만, 그래도 도서관 이름에 ‘물푸레’ 이름이 붙게 되었고 주민들의 마음속에 전통 마을이라는 자긍심을 갖게 해 주고 있다. 

 

정헌호 (역사교육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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