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맙습니다 ⑨ 세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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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옷만 입고 일하는 나는 세신사 CEO’”
주거생활이 아파트 위주로 바뀌면서 집안에서 손쉽게 목욕을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음에도 목욕탕이 전국에 9,000개나 된다. 집에서는 느낄 수 없는 뜨끈한 온탕과 열탕, 냉온욕을 할 수 있는 냉탕, 속 땀까지 빼주는 사우나를 갖춘 목욕탕은 피로를 푸는 가장 대중적인 장소이다. 오전 시간대에는 목욕탕 매니아들 여럿이 냉탕 온탕 사우나를 오가며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살림 정보도 나누니, 사실상 ‘목욕탕 카페’라 할 수 있다.
이 대중목욕탕에 CEO가 있다. 바로 세신사. 사실 세신사라하면 특별한 기술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할 지 모르지만, 자본과 기술 없이는 할 수 없는 고소득 직종이다.
내가 찾은 이 목욕탕은 목욕 베드 3개에 세신사 보증금이 3억이다. 그러니 각자 1억씩의 보증금을 내고 여기서 영업을 하는 것이다. 파주에 가장 최근에 생긴 M목욕탕도 보증금이 4억이라 했다. 도심에서는 억단위 보증금을 내지만, 작은 목욕탕은 몇 천의 보증금으로도 자리를 살 수 있다했다. “그런데는 동네가게고, 우리는 슈퍼인 셈이야.”라고 비유를 하면서 깔깔 웃으신다.
굳이 인터뷰는 싫다면서도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눠주신 두 세신사는 이 방면에 20년 넘은 베테랑이었다. 키가 큰 언니는 말했다. “나는 동네 언니 따라 갔다가 배웠지. 눈썰미가 있어서 금방 배웠어. 그렇게 시작한겨. 요새는 목욕관리사 학원을 나와야 해”. 이 두 분은 “이렇게 자유로운 직업이 어디있어? 우리는 CEO야”라며 자기 직업에 대단히 만족하고 있었다. 전신 세신이 2만원이고, 오일 맛사지, 경락 맛사지 가격은 4~5만원하니 세신사의 수입은 적지 않다. 옛날과 달리 목욕탕 청소일은 다른 사람에게 맡겨 밤중에 청소하러 오는 분이 따로 있다. 근래에는 목욕관리 업체가 생겼다한다. 사람들이 힘들고 어려운 일을 안하려해서 업체가 자리를 사서, 외국인 노동자들을 목욕관리사로 파견하고 월급을 주는 식으로 운영한다는 것이다. 그것과 비교하니, 정말 이 분들은 자유롭게 자기 사업을 하는 사장님들이다.
보람 느낄 때가 언제냐 물으니 작은 언니가 말했다. “혼자 걷지도 못하는 거동이 불편한 분들이 와서 때밀고 갈 때 보람을 느끼지. 그 분들은 목욕을 자주 못하니, 아닌 말로 때가 10센치나 나와. 기운이 없으니 온탕에 오래 있지도 못해서, 때를 밀고 또 밀어야 해서 힘들어. 그런데도 그 분들이 ‘날아갈 듯 기분좋다’하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어.”
24시간씩 교대로 증기 가득한 목욕탕에서 사람들의 때를 밀어주면서 즐겁게 일하는 두 세신사. 이 분들처럼 세상 부조리한 때를 즐겁게 밀어줄 사람 세세사(洗世事)은 왜 없을까?
글 임현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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