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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을 넘나든 평화통일운동가 김낙중 선생님 별세

입력 : 2020-07-31 12:55:35
수정 : 2020-08-03 00:41:12

남북을 넘나든 평화통일운동가 김낙중 선생님 별세

 

- 탐루 등불 들고 전쟁반대외친 한국의 디오게네스

- 5번의 사형선고, 18년간 감옥살이

- ‘통일독립청년공동체 수립안을 만들어 남과 북 정부에 청원, 간첩혐의 받아

- 말년에 인류문명사의 전환을 고민

 

 

평화통일운동가 김낙중선생이 729일 향년 89세 나이로 별세했다.

김낙중 선생은 1931년 파주에서 태어났다. 남과 북의 정권에서 모두 버림받아 5번의 사형선고를 받고, 18년간 감옥에서 지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당시 일제가 중학생을 근로동원 했기 때문에 동원에서 제외되는 경성농업중학교(서울농업대학 전신)에 입학했다. 16세 무렵 폐병에 걸려 삶의 의미를 탐구하다 전쟁을 맞아 부산으로 피난갔다. 전쟁을 멈추고 평화롭게 살아야 한다고 사람이 없어 김낙중 선생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 처럼 <탐루(눈물을 찾는다)>란 등불을 들고 홀로 전쟁반대 평화통일을 외쳤다. 이 일로 경찰에 끌려갔다 온 후 남과 북이 같이 살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여 <통일독립청년공동체 수립안>을 만들어 경무대에 청원서를 제출했다. 치안국에 끌려가 누구의 지시냐고 고문을 받았다. 풀려나온 후 북에 제안을 하기 위해 임진강을 헤엄치고 건너갔다가 남조선간첩이라고 기소되었다. 1년후 재판없이 남한으로 송환조치되어 철도길을 따라 아리랑을 부르며 내려왔지만 고문을 받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실형을 살았다.

 

 

 

이후 선생은 고려대학에 들어가 경제학을 전공하고, 농민운동과 노동운동을 연구해왔다. 그러나, 정권은 북한에 갔다 왔다는 것을 빌미로 선생을 반공법 위반 혐의로, 간첩예비죄로 여러 차례 감옥에 보내, 감옥살이만도 18년이다.

평화통일시민연대' 상임고문으로, ‘한반도평화통일시민단체협의회' 등에 참여해 평화통일운동에 앞장서던 김낙중 선생은, 2013년에는 [인류문명사의 전환을 위하여] 책을 출간하여 평화통일운동을 넘어 인류 문명사의 전환을 고민했다.

더불어 사는 길을 찾아야만 살지, 어느 한 쪽을 악마시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인류문명은 두 바퀴로 달려왔다. 자연을 정복하는 도구의 발달과 인간을 정복하기 위한 무기의 발달이 그것이다. 그러나 이 문명은 자연을 파괴하고, 사람의 자유를 억압해왔다. 이제 이 문명의 전환점에서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바른 삶의 길을 찾아야 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개체가 아니라, 가족, 씨족, 부족, 나라와 같은 겨레 속에서만 삶을 영위할 수 있고, 모든 생명은 하나의 운명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우리 남과 북이 평화적 통일을 성취하는 것은 지구촌에 새로운 인류문화 창조를 위한 또 하나의 등불이 될 것이라고 김낙중 선생은 확신한다 ([인류 문명사의 전환을 위하여] 중에서).

작년까지만해도 아람누리 도서관을 출근하듯 나오셔서 책을 보고, 천천히 걸으시던 선생은 남북정상회담을 보시고 기뻐하셨지만, 남북 관계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운명을 달리하셨다.

유족으로 부인 김남기씨와, 아들 선혁(고려대 교수), 딸 선주·선결씨, 며느리 최혜원(이화여대 교수), 사위 박성운·나호천씨를 두고 있다.

 

 

주요저서 [한국노동운동사], [굽이치는 임진강], [사회과학원론], [민족통일을 위한 설계], [민족의 형성, 분열, 통일], [인류 문명사의 전환을 위하여]

맏딸 김선주씨의 [김낙중 전기, 탐루]

 

임현주 기자

 

 

 2015년 김낙중선생 인터뷰 기사

 https://www.atpaju.com/news/cate/%ED%8C%8C%EC%A3%BC%EA%B0%80%20%EC%A2%8B%EB%8B%A4/post/1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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