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책 되새기기] 자기 앞의 생, 로맹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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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책 되새기기] 자기 앞의 생 (로맹가리, 문학동네)
아내가 모처럼 좋은 소설을 읽었다는데, 어떤 내용인지 말을 아꼈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눈빛에서 문학의 아름다움에 압도된 영혼이 보였습니다. 책을 건네받았습니다. 제목부터 남달랐습니다. 첫 장에 적힌 짧은 글귀에 한동안 책장을 넘기지 못하고 머뭇거렸습니다.
그들은 말했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내가 대답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폴란드계 유태인 로자 아주머니는 프랑스 파리 외곽에서 엘리베이터도 없는 7층 아파트에 삽니다. 로자 아주머니는 평생 몸을 팔았지만 나이가 들자 몸 파는 여인들의 아이를 맡아 기르며 근근이 살아갑니다. 주인공 모모는 로자 아주머니에게 맡겨진 열네 살 아랍계 소년입니다. 소설은 로자 아주머니와 모모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정정합니다. 로자 아주머니와 모모의 ‘절절한’ 사랑 이야기입니다.
작가 ‘로맹 가리’는 프랑스에서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상을 1956년 수상했고, 1975년 환갑이 넘은 나이에 ‘에밀 아자르’라는 가명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여 다시 한 번 공쿠르상을 수상했습니다. 에밀 아자르가 로맹 가리였다는 사실은 작가 사후 유서를 통해 밝혀졌습니다.
가수 김만준이 부른 ‘모모’라는 70년대 가요가 있습니다. 이 소설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노래입니다. ‘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라고 시작합니다. ‘그런데 왜 모모 앞에 있는 생은 행복한가.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는 것을 모모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도 있습니다. 소설을 읽으니 가사가 이해갑니다. 소설의 제목을 ‘자기 앞의 생’이라고 번역했지만 프랑스어 원제목(La vie devant soi)을 직역하면 ‘여생’, 즉 ‘앞으로 남은 생’입니다. 삶과 사랑은 영원히 헤어질 수 없는 동반자임을 소설은 참으로 절절하게 보여줍니다. 소설 마지막 구절도 ‘사랑해야 한다.’ 입니다. 성탄절에 어울리는 소설입니다.
유형선 (‘중1 독서습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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