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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10)  4. 고려와 조선의 갈림길 (1) 이색의 분화. 한 스승에서 나온 다른 제자

입력 : 2019-12-27 06:21:53
수정 : 2020-01-28 02:42:27

임진강을 건너온 역사 (10) 

4. 고려와 조선의 갈림길

(1) 이색의 분화. 한 스승에서 나온 다른 제자

 

이색이 장단에 유배되고 한 달여가 지난 때였다. 도성을 나올 때와 같이 추운 겨울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색은 탄핵의 억울함과 울분을 애써 삼키고 있었다. 장단음 시편 곳곳에 그때의 울적한 심정이 담겨있다. 그나마 임진강과 감악산, 자연에서 위로받으며 하루하루를 견디고 있었다. 그런 어느 날 도성으로부터 한 인사가 울적한 노학자를 찾아왔다. 이색은 그날의 일을 시에 담는다.

문생인 길 주서가 집에서 보임될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가 늙고 어린 가족들을 데리고 선주로 돌아갈 적에 나를 찾아와 작별 인사를 하고는 하룻밤을 묵고 가다

 

 

▲ 이색 유배 당시의 흔적이 남은 자장리 괘암

 

주인공은 뒤에 조선 학문의 종조로 존경받게 되는 야은 길재다. 당시 길재는 문하주서의 벼슬을 하던 젊은 문사였다. 길재는 이색이 주관해서 치른 1386년 과거시험에 합격해서 벼슬길에 올랐다. 문생과 좌주라는 고려 말 문화풍토 아래서 둘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맺은 사이였다. 혼란스런 정치상황을 피해 벼슬을 버리기로 결심한 길재가 그 결행의 길에 스승을 찾은 것이다. 그들 사이에 많은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지는 않다. 길재는 이미 가족까지 데리고 고향 선산을 향해 나선 길이다. 마침 그 길목에 머물던 스승에게 마지막 문안인사를 올리려던 뜻이 컸을 것이다.

 

 

▲ 쾌암 암각문. 이색의 옛터임을 밝힌 허목의 글씨가 지금도 남아있다.

 

이색은 앞 길이 창창한 젊은이의 은둔 결심에 안타까움을 느낀다. 제자의 결심에 대해 아무 말도 보태지 못한다. “기러기 한 마리 아득히 하늘 끝으로 사라지네.”라며 떠나가는 제자를 바라볼 뿐이었다.

한 겨울에 젊은 제자를 떠나보낸 이색의 마음은 임진강처럼 얼어있었을 것이다. 그 뒤로 차츰 날이 풀리고, 이색의 마음도 조금은 누그러진다. 석벽으로 철쭉 구경을 가기도 하고 임진강으로 뱃놀이를 나가기도 한다. 그러던 4월 어느 날 두 사람의 문생이 이색을 찾아온다.

 

 

▲ 민통선 길. 길재와 맹사성은 이 길을 따라 장단 유배지의 이색을 찾았을 것이다. 

 

장단현령 문군과 석벽에서 다시 노닐었다. 문군의 마중을 받고 물이 한데 모이는 상류까지 올라가서 물고기를 잡고 음식을 먹으며 즐기다가 늦게야 돌아왔는데, 이 자리에 맹균과 유기가 참석하였다. 이날 문생인 맹사성과 이치가 와서 소식을 알려 주기를, 대성이 전의 일을 또 논핵하여 함창으로 부처하였다고 하였다.”

두 사람의 문생은 이색을 먼 경상도에 유배한다는 조정의 결정을 가지고 왔다. 막 흥겨운 뱃놀이를 마치고 돌아온 때였다. 문생 중 한 사람은 나중에 조선의 재상으로 이름을 떨친 맹사성이다. 이색은 과거를 주관하며 수많은 문생을 배출했는데 맹사성도 젊은 인재 중 하나였다. 1386년 과거에 급제했으니 길재와 동년인 셈이다. 이색은 멀리 경상도 함창 유배길에 오른다. 길재는 자신의 떠나는 결심을 고하려고 스승을 찾았지만 동년인 맹사성은 스승의 퇴출을 전하려 찾아온 것이다. 한 스승에서 나왔지만 각자의 길이 달랐다. 고려왕조에 의리를 지키려는 자와 새로운 질서에 복무하는 자로 길이 나뉘었다.

 

길재는 스스로 퇴진하는 길에 장단 유배 중인 스승 이색을 찾는다. 반면 동기였던 맹사성은 스승의 퇴출을 알리기 위해 강가의 유배지를 찾아온다. 임진강은 그 갈림길에 있었다.”

 

묘한 것은 조선은 나중에 둘 모두를 승인했다는 것이다. 맹사성은 정승의 지위에 올라 정치 일선에서 동분서주했다. 청렴의 상징이 됐고, 개국초기 조선을 안정시킨 유능한 관료로서 본보기가 됐다. 길재는 은거했지만 의리와 명분을 쥐고 많은 제자를 배출했다. 김종직, 조광조로 이어지면서 조선유학의 정통으로 추앙받았다. 한쪽은 현실정치에서, 다른 쪽은 정신사에서 조선을 이끈 대표적 인물이 됐다. 이색은 한 시대를 갈무리했다. 그리고 후예들에게는 새로운 길이 필요했다. 갈림길에서 그들은 저마다의 판단으로 서로 다른 길을 갔다.

                         이재석 / DMZ생태평화학교 교장,

                                    [임진강 기행], [걸어서만나는 임진강]저자

 

▲ 두지나루. 옛 장단나루로 추정한다. 이색에게 인사를 고한 길재는 임진강을 건너 고향 선산으로 은거한다. 

 

#11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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