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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칼럼 - 10대가 보는 아파트 문제

입력 : 2021-04-05 07:39:21
수정 : 0000-00-00 00:00:00

청소년 칼럼 - 10대가 보는 아파트 문제

                                                          김도휘 (19)

 

 

한국인들에게 ''은 무엇일까.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이라는 단어를 접했을 때, 자신이 과거에 거주했던, 혹은 지금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의 모습을 연상해낼 것이다. 이것은 아파트로 채워낸 이 나라의 여느 도시들을 보고, 그저 일반화해낸 추론이 아니다. 실로 한국 전체 인구의 절반이나 되는 수의 사람들이 아파트에 거주하고 있으며, 아파트와 비슷한 속성을 가진 연립주택 등의 주거형태를 포함하면 '범 성냥갑 주거형태'에 지배당하는 자들의 인구는 과반은 사뿐히 넘어간다. 그럼, 어쩌다 과반이 넘는 한국인들은 획일화 된 닭장에서 살아가게 되었을까?

 

한국 전쟁이 종지부를 찍은 후 한국인들이 북한보다도 가난했던 최빈국의 국민으로 살아가길 약 십여 년, 경제 발전으로 하여금 민족의 중흥을 추구하겠다는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하였다. 그 후 한국은 개발독재 정권의 치하에서, 국가의 주도로 많은 산업이 육성되는 동시에, 서울과 몇몇 지방의 대도시를 거점으로 급속한 공업화/도시화가 진행되었다. 당시 수많은 향촌의 청년들은 그동안은 접해보지 못한 큰 세상이었던 대도시에 대한 부푼 꿈을 안고 빈손으로 상경하였다. 이러한 향촌에서 대도시로의 인구유출은 비약적인 증가추세를 보이며 꾸준히 진행되었다. 허나 이는 곧 그 시대에 나타났던 고도의 출산률과 함께 이 나라의 인구, 특히 수도권과 대도시의 인구 폭발에 대한 신호탄이었다.

 

이에 겨우 십만 제곱 킬로미터 남짓의 좁은 영토에 산업화를 시작한 지도 얼마 되지 않았던 한국은, 발생이 필연적이었던 극심한 주거난을 맞이하게 된다. 가난한 국민, 가난한 정부는 이 문제를 어떻게 타파하고자 하였을까.

 

그들이 내놓은 해법은 아파트라는 형태를 이용해,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일반적인 가족 형태라는 모델을 창시하고, 그에 맞춰 내부 구조를 모두 획일화함으로 하여 비용을 절감하였다. 층마다, 동마다 구조가 전부 같았으므로 지어내는 과정은 그저 공장에서 제품을 마구 찍어내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그렇게 정부와 건설사들이 결탁하여 빠른 속도로 이 나라를 아파트로 채워나가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 기조에 대해서는 소비자들도 반대하지 않았다. 평형마다 내부도 외관도 모두 같아서 마치 하나의 제품과도 같았던 그 시대의 아파트는, 거대 아파트 단지를 마구 찍어냄으로 하여 소비자들에게 비교적 저렴하게 공급될 수 있었고, 소비자들은 금방 가성비 좋은 현대적인 주거공간에 매료되었기 때문이다. 실로 아파트를 선호하는 사회적인 풍조가 여지껏 이어져 내려오고 있듯이 말이다. 그렇게하여 정부는 수십년에 걸쳐 국가적인 난관을 극복하게 된다.

 

 

우리는 저 어려웠던 시대에 아주 효율적임과 동시에 비교적 만족스럽게 주거문제를 극복했다. 일단은 난관 피하고 살아남은 것이다. 그리고 개발독재 시대의 시작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난 지금, 우리는 정치적으로는 민주화를 이룩하였고 경제적으로는 개인소득이 3만 달러를 돌파하였으며, 군사적으로 세계 6위의 힘을 보유함과 동시에 문화적으로까지 융성해지고 있다. 그 작고 빈곤하던 한국이 수십년만에 선진국으로 도약한 것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국민 주거문화의 질적인 부분은 한국의 눈부신 도약에 비례하지 않고 아직도 위기를 타파하기 위해 질적인 가치를 포기해야 했던 그 시대에 머물러있다. 여전히 수많은 가족들이 내외관에의 차별점이 없는 아파트 속 한 칸을 꿰차고, 기획자들이 일반적인 가족 형태에 끼워맞춰 지은 구조에 적응하며 생활하고 있다. 아파트는 무난한 주거형태로써 또 부동산의 재화로써 여전히 선호되는 추세에 있으며, 그동안 쌓아올린 수많은 개성이 결여된 아파트들이 그대로 버티고 서있다.
 

허나 한국인은 이제 선진국가의 국민으로서의 입장에서, 이 획일된 주거 문화에 의구심을 가질 시점이 되었다. 우리는 왜 기획자들이 고안한 '일반적인 가족 형태'에 녹아들어 살아야만 하는가에, 왜 다양해진 가족 형태에 비해 선택지의 다양성이 비례하지 아니하는가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 지금은 현대적이라는 이유로 만족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만족은 상대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질이 이렇듯 발달한만큼, 주거 문화에 있어서 요구의 기준이 높아지는 것은 필연적이다. 물론 한국의 인구 밀도는 세계 5위권(도시국가와 인구 50만 이하의 국가를 제외)이라는 것에 우리는 우리가 지닌 한계를 받아들여야 한다. 한국인은 이러한 한계로 인해 여타 국가의 국민들보다 향유하는 면적의 평균이 필연적으로 낮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계로 인해 '아파트 공화국'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 틀 안에서 각자가 지닌 개성과 상황이 만들어내는 주거 수요에 더욱 다양한 선택지로 화답해주는 주거시장으로의 탈바꿈을 지향하여 마지않을 것이다.

인간의 개성과 고유의 인격이 있는 그대로 존중되는 사회는 이미 도래하였고 앞으로 더욱 완전을 향해 심화될 것임에 틀림없다. 이러한 시대의 요구에 맞게, 사람은 마땅히 사람을 위한 집에 살아야 한다. 그러한 맥락에서 모쪼록 한국인들이 더 이상 기획자의 관념에 적응해야만 하는 작금의 주거 형태를 타개해 나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1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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