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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 특별기고] 역사는 과연 ‘승자의 전리품’인가?

입력 : 2015-10-22 19:50:00
수정 : 0000-00-00 00:00:00

역사는 과연 ‘승자의 전리품’인가?



객관성 담보되기 어려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좌우이념 대립 넘어 헌법적 가치 담아내야





정진새정치민주연합 정책위원회 수석전문위원



 



단언하건데 역사를 기술하는데 있어 가장 부적절한 방식은 통치세력의 주관이 개입되는 방식이다. 이는 역사의 사실성과 객관성이 담보되기 가장 어려운 조건이 전제되는 까닭이다.



 



오죽하면 조선시대에도 최고 통치자인 왕에게 사초를 열람조차 할 수 없도록 엄격히 금지시켰겠는가? 만약 그런 금기가 없었더라면 오늘날 ‘조선왕조실록’은 사료로서의 가치가 평가절하 되었을 것이고, 유네스코로부터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는 영광 또한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말 그대로 통치세력은 그 시대의 정치권력이고, 권력 앞에서 틀린 것을 틀렸다고 지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 이유로 동서고금의 문명국가들이 정치권력과 역사를 따로 분리하는 일에 끊임없이 골몰해왔던 것이며, 지난 2013년에 열린 제68회 UN총회에서는 이와 동일한 취지의 역사교육지침을 재확인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 2013년 제68회 UN총회가 확인한 역사교육지침



  • “역사교육은 폭넓게 교과서가 채택되어 교사가 교과서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교과서 선택은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필요에 기반을 두어서는 안 된다. 역사교과서의 내용은 역사학자에게 맡겨야하며, 특히 정치가들 등 다른 사람들의 의사결정은 피해야한다”



 


그런데 21세기의 문명국가를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이러한 문명사적 동의가 철저하게 묵살되는 일이 벌어지고야 말았다. 지난 12일 정부가 기어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고시 발표하고 나선 것이다. 기존의 검인정제도를 폐지하고 정부기구인 국사편찬위원회에서 만든 국정교과서 한 가지로 통일하겠다는 것이다.



 





 



통치세력의 주관 관철 위한 노골적 의도



현재의 통치세력이 국정화라는 수단을 통해 그들 주관을 관철하기 위한 역사교과서를 만들고자 하려는 의도는 매우 노골적이다. 지난 9월 23일에 교육부가 확정·발표한 ‘2015 개정교육과정 총론 및 각론’을 살펴보면, 중·고등학생들이 배울 한국사 과목에 ‘3.1운동 전개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이 삭제되고 친일행적에 대한 언급은 빠져 있으며, 최종안 발표를 불과 열흘 앞두고 ‘대한민국 정부의 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몰래 변경하여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고 ‘광복절’은 ‘건국절’로 바꾸고자 했음이 드러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를 독립운동가들이 아닌 정부수립에 참여했던 인물들(친일인사들이 대거 포함된)에게 돌려야 한다는 뉴라이트 측의 기존 주장과 완벽히 일치하는 바이기도 하다.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 기념식



 



친일인사가 대한민국 건국의 공로자?



그러나 이는 그들이 국부로 추앙하는 이승만정권 시절에도 인정받지 못했던 사실이다. 이는 당시의 제헌헌법이 “기미 삼일운동으로 대한민국을 건립”했다고 명시된 것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일인 당시 중앙청에 내걸린 축하 현수막에 ‘대한민국 건국’이 아닌 ‘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기재되어 있는 것으로도 확인된다.



 



한편, 중학교 교육과정의 경우, 일제 강점기 한국사 내용을 다룬 네 개의 성취 기준 중에서 1930년대 이후 독립운동을 다룬 부분이 없고, 고등학교의 경우에는 좌파의 독립운동사를 아예 삭제하는 한편, ‘군사독재 체제’에 대해서는 ‘권위주의 체제’라고 순화하는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친일과 독재의 역사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그들의 입장이 반영되어 있음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자학적 사관’ 동조자의 입장일 뿐



이와 관련된 그들의 주장을 들어보면 기존의 역사교과서가 ‘암흑적’이고 ‘자학적’인 사관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을 국정화의 이유로 들고 있는데 이는 어디까지나 친일독재의 주체였거나 동조했던 사람들의 입장일 뿐이다.



 



다른 나라들의 경우를 보아도 독립운동사는 그들에게 있어서 가장 자랑스러운 역사이며 이를 국가 정통성에 기초하는 것 또한 당연하게 받아들여진다. 사실 제헌헌법으로부터 이어져 오는 우리나라의 헌법이나 현재의 검인정 역사교과서도 이런 세계인의 상식에 크게 어긋나는 바가 없다.



 





▲새누리당이 내건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현수막들



 



새누리당의 거짓 주장



새누리당의 행태는 더욱 가관이다. 그들이 국정화에 찬성하는 요지를 살펴보면 “우리 아이들이 김일성 주체사상 배우고 있다”라는 허무맹랑한 주장과 함께 현재의 역사교육을 ‘좌파독재’에 의한 ‘대한민국 부정’이라 규정하고,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를 ‘역사교육의 민주화’로 단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역사에 ‘좌파독재’란 존재한 사실도 없거니와 현재의 검인정 역사교과서 어디를 봐도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내용이나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는 내용을 찾아볼 수 없다.



 



심지어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는 필자에게 저작권이 부여되는 기존 검인정 체제와는 다르게 저작권이 국가에게 귀속됨으로써 정부 마음대로 그 내용을 바꿀 수 있게 됨을 의미하는데 합의과정 자체가 필요 없는 시스템을 만들어 놓고 이것을 ‘민주화’라고 일컫는 것은 또 무슨 경우란 말인가?



 



다양성이 사실성과 객관성 담보



어차피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이나 해석하는 방식은 다양하게 존재할 수 밖에 없다. 때문에 다양한 역사교과서가 존재해야 하고 그것들이 서로를 크로스 체크하게 함으로 해서 사실성과 객관성이 담보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다. 이는 동서고금의 역사가 증명하고 세계적 추세가 확인시켜 주는 바이기도 하다.



 



아울러 역사 교과서는 좌우이념 이념을 넘어 우리 모두가 합의한 헌법적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대한민국 헌법 문에는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한다”고 나와 있고, 모든 국민의 학문적 자유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의 통치세력들의 역사교과서의 국정화 시도는 그 시작부터 위헌행위라 할 수 있으며, 헌법적 절차로써 집권한 스스로의 정당성까지 부정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지도 모르는 일인 것이다.



혹시 그들은 역사를 ‘승자의 전리품’ 쯤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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