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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역사여행_용미리 마애불부터 DMZ까지》신간

입력 : 2022-01-10 01:0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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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역사여행: 용미리 마애불부터 DMZ까지

임종업 지음 / 256/ 148×210mm / 18,000/ 202212

ISBN 978-89-94750-93-4 (03910)

 

종전선언과 파주

종전선언에 관한 보도가 심심찮게 언론에 오르내린다. 파주는 도로로 북한을 갈 수 있는 대한민국 유일한 곳이다. 코로나19로 외국 나가기는 어려운 요즘, 새해는 파주여행으로 시작해보면 어떨까. 파주의 지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간 제대로 된 답사 안내기가 거의 없었다.

I. 우리는 파주를 몰랐다(출간 의미)

 

현대사부터 고려시대까지 파주의 역사를 아우르며 답사를 한 책이 나왔다. 이 책을 읽으면 독자들은 파주에 이야기가 이렇게 많이 숨어있다는 데 놀랄지 모른다. 대개 파주 하면 DMZ를 떠올리지만, 분단되기 전 파주는 개성의 인삼과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는 서울의 과 같은 곳이었다. 또 서울의 사람이 개성으로, 의주로, 그리고 대륙으로 가는 첫 길목이었다. 이 책은 알려진 파주 이야기를 더 깊게 보여주고, 알려지지 않은 파주 이야기를 새로이 발굴한다.

 

저자는 한국 현대사의 큰 장벽인 DMZ에서 출발해 근현대사를 품고 흐르는 임진강,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문화의 중심지였던 파주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현장의 사진이 저자의 글을 단단하게 뒷받침한다. 판문점 안 낯선 추모비의 정체와 DMZ 안에 지어질 수밖에 없던 포로수용소, 영국군의 희생으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한 설마리 전투, 성당 건물을 구호품으로 받은 갈곡리 마을, 기호학파의 산실이 된 서원의 유래와 영조까지 개입한 파평 윤씨와 청송 심씨의 400년 묘지 다툼, 한 번 보면 잊을 수 없는 용미리 마애불 등 파주는 무궁무진 흥미진진하다.

 

파주 이야기에 더 깊게 들어가다

판문점과 DMZ, 파주에 관해 흔히 떠올리는 단어다. 저자는 여기서 좀더 들어간다. 예를 들면, 파주를 여행한 사람들이 한번쯤 다녀가는 통일전망대가 있는 오두산성(관미성)은 삼국시대부터 중요했다. 백제 고구려, 신라가 피터지게 싸우며 차례로 차지한 곳이다. 오두산성이 12·12쿠데타와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를 저자는 밝혀낸다. 육군 제9사단의 관할이었고, 당시 사단장은 노태우 소장이었다. 북한과 대적해 중요한 곳을 지켜야 할 군인들이 대한민국 서울로 향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과 맞섰던 장준하 선생 묘역이 있는 오두산성 근처에 노태우의 묘역도 조성된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다.

 

파주는 예로부터 유학자들의 고향이었다. 많은 학자들의 묘가 파주에 있다. 특히 율곡은 자신의 묘와 어머니 신사임당, 아버지의 묘가 모두 파주의 자운서원 경내에 있다. 이 책에는 한국 철학사에 한 획을 그은 이이, 성혼, 송익필의 파주 삼현이야기가 자세히 소개된다. 한편, 현재 민간인통제구역 내에 있는 덕진산성은 인조반정의 중요한 배경이기도 하다.

고려시대로 가면 보물 93호인 용미리 마애불 이야기가 눈에 띈다. 용미리 마애불은 우리나라에서 드문 쌍미륵불이다. 앞에서 볼 때 웅장한 모습에 놀라고 뒤로 돌아가면 이걸 어떻게 조각했는지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저자는 용미리 마애불의 예술성을 극찬한다. 조성 배경을 자세히 설명하면서 이렇게 이야기한다.

 

미켈란젤로(1475~1564)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대리석에서 천사를 보았고, 그 천사가 풀려날 때까지 조각을 했다.” 그에게 조각이란 돌 속에 갇힌 형상을 드러내어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 조선은 미켈란젤로가 아직 꼬맹이였을 때 미켈란젤로에 버금가는 대가급의 조각가를 갖고 있었다. (210)

 

그 외에도 저자는 이 책에서 알려진 유적지 이야기에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를 찾아내 살을 붙임으로써 이들이 장소의 의미를 더 가지게 한다.

 

알려지지 않은 파주 이야기를 발굴하다

판문점 관광을 가면 관광객들은 인내를 통해 잔디밭에 있는 비석에 추모의 시간을 가진다. 비석의 주인공은 () 장명기 상병이다. 소련인 기자가 갑작스레 북에서 남으로 망명을 하는 중에 일어난 교전으로 사망했다. 판문점을 관할하고 있는 유엔군은 매년 잊지 않고 추모식을 하지만 우리 국민들은 존재를 잘 모른다. 저자는 판문점 이야기에 더해 유족들을 인터뷰하여 장명기 상병을 기록한다. 유족들이 건넨 사진에는 지금과 모습이 다른 도보다리에서 장 상병이 웃으며 서있다.

 

또한, 기록으로는 처음으로 민간인통제구역에서 어로활동을 하는 임진강 어부를 소개한다. 임진강은 서해안을 앞에 두고 한강 하류와 만나는 데다 인간의 손을 덜 탔기에 물 반 고기 반이다. 저자는 신세대 어부 박우군 씨를 만나 임진강 어부의 일상을 기록한다.

 

그 외에도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DMZ 내에 설치될 수밖에 없었던 이야기(이승만 대통령의 인도군 육지 상륙 반대), 한 마을에 19명의 성직자가 나온 갈곡리성당마을, 고려시대의 국립호텔이 있었다는 설이 있는 혜음원지 등 알려지지 않은 파주 이야기를 문헌과 현지인 인터뷰를 통해 생생히 발굴한다.

 

정성을 들인 지도와 사진-북한 여행의 마중물이 되기를 바라며

지리적으로 파주는 한강과 임진강 하류를 끼고 있다. 강과 육지가 북한과 맞닿아있으면서 서울의 북쪽 이다. 구석기 시대부터 사람이 살아 유물이 고루 발견된다. 개성, 서울과 가까워 역사의 큰 흐름 때마다 중요한 장소가 되었다.

파주에는 둑과 제방이 많다. 파주의 는 언덕을 의미한다. 서울에서 개성을 지나 의주로 이어지는 길목이었으나 현재는 군사분계선으로 길이 막혀 있다. 대표적인 파주의 길은 자유로, 경의선, 의주로이다. 자유로는 국가산업단지인 출판단지, 대규모 신도시를 서울과 잇고, 옛길 의주로에는 대외교역이 활발하던 고려시대의 유적이 산재해있다. 의주로는 통일로 바뀌어 다시 북한으로 이어질 날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것을 저자의 글뿐 아니라 파주 곳곳을 누빈 사진과 정성들인 지도에도 담았다. 언젠가 북한을 여행하게 될 날을 바라는 이들에게 이 책이 마중물 역할을 하면 좋겠다.

 

 

II. 책의 내용-파주 하루 여행하기

이 책은 하루에 여행할 수 있는 장소들 단위로 묶어서 크게 네 개의 챕터로 구성했다.

 

<첫날, 비무장지대를 가다>

DMZ 안의 장소들을 볼 수 있다. 판문점과 장명기 상병 추모비, 도라전망대의 풍경과 역사가 눈을 뗄 수 없게 펼쳐진다. 판문점은 통일부에, 도라전망대는 파주시에 신청해서 갈 수 있다.

 

<이틀째, 임진강은 흐른다>

임진강과 그 주변에 읽힌 이야기다. 삼국시대부터 요충지였던 오두산성에 얽힌 근현대사, 남의 나라에 와서 많은 희생을 치렀던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 이야기, 수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를 배출한 작은 마을 갈곡리, 임진강 어부의 이야기가 읽는 사람을 숙연하게 만든다. 갈곡리를 제외하곤 분단으로 인해 출입에 장애가 있는 곳들이다.

 

<사흘째, 파주의 지역성과 보편성>

파주 삼현이라 불리는 송익필, 이이, 성혼의 교류를 살펴보고, 파주로 한양을 천도하려다 결국 퇴위까지 된 광해군과 인조반정의 이야기를 품고 있는 덕진산성, 고등학교 국어교과서에 시가 나오는 홍랑의 묘와 시비를 찾아간다. 저자는 홍랑을 품고있는 파주는 행복하다라고 할 만큼 홍랑의 시를 절창으로 묘사한다.

 

<나흘째, 의주길을 걷다>

용미리 마애불, 고려시대의 국립호텔로 알려진 혜음원지에 대한 다른 이야기, 그리고 묘가 많은 파주에서 400년간 이어진 묘지 다툼 이야기로 마무리를 한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파주를 일복이 많은 곳이라고 이야기한다. 구석기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이고 한국전쟁을 고스란히 겪은 파주에 아직 남은 이야기가 많다는 의미이다. 파주에 관심을 가지고, 나아가 근현대사와 고려의 알려지지 않은 우리 역사 이야기를 알고 싶다면 이 책을 적극 추천한다.

 

 

III. 저자 소개

 

신문쟁이.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 읽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전자신문에서 시작해 한겨레신문편집부, 여론매체부, 문화부 등에서 30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직업의 경험과 공부를 살려 신문기사 제목달기》 《한국의 책쟁이들》 《미술마을 인문기행》 《작품의 고향등의 책을 냈고, 파주 역사여행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에 이어 DMZ와 관련한 그의 두 번째 책이다.

 

 

IV. 책의 본문에서

 

남북 메인 통로들은 특이하게 문산에서 수렴하여 멎는다. 더 이상 갈 수 없기 때문이다. 자연 장벽 임진강과 인공 장벽 DMZ가 버티고 있다. 장벽은 강고하여 민간인통제선을 아우르며 어떤 자본의 힘도 물리친다. 억울하게 그 선과 겹쳐진 임진강은 파주의 젖줄인데도 그 구실을 잃고 저 혼자 흐른다. (프롤로그, 3)

 

140분 판문점 투어(공식 명칭은 견학)는 임진각에서 시작된다. 신분 확인이 첫 관문이다. 평화누리공원 끝자락에 위치한 DMZ 생태관광지원센터 1층 판문점 견학안내소에서 신분증을 대조하여 본인이 맞는지를 본다. 그 다음 정해진 서식에 따라 주소와 연락처를 쓰되 그 정보가 다른 곳에 제공되는 것에 동의해야 한다. (멀지만 가까운 관광지 판문점, 14)

 

JSA 안내병이 안내한 추모비 앞에서 나는 당황했다. 비문에 스치는 이름 장명기 상병은 낯선 이름이었고, 이곳에 추모비가 서 있는 까닭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남의 집 묘에 제사지내고 온 듯 찜찜함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도대체 그는 누굴까. (판문점에서 벌어진 소련인 망명사건, 36)

 

이승만은 어떠한 인도인도 남한 땅에 발붙이는 것을 허용하지 말라는 명령을 내렸다. 미군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넣는 법을 고민하는 처지가 됐다. 그들은 묘수를 찾아내는데, 그것은 비무장지대였다. 한국 땅이되 한국 관할이 아닌 곳. 따라서 인도군이 머물 수 있는 유일한 지역은 비무장지대가 됐고 송환 거부자들을 거기로 옮겨야 했다. 23천여 명의 포로와 그들을 관리할 인도군을 수용할 시설을 비무장지대에 짓느라 미군은 수백만 달러를 써야 했다.

인도인 대표단과 관리 군부대의 비무장지대 이동은 각별했다. 인도군 6개 보병대대와 부속부대 등 5천 명이 인천항에 도착했지만 한국 땅을 밟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미군은 헬기를 동원해 인도군을 그들이 타고 온 배에서 비무장지대로 옮겼다. 당시 헬기 한 대에 탑승할 수 있는 병력은 다섯 명, 인천항-파주 DMZ 편도비행 시간은 35분이었다. 실어 날라야 할 인원이 5천여 명이니 수송 작전은 역사상 최대라고 할 만했다. 넉 대로 구성된 편대가 하루 24시간 쉬지 않고 나른다면 열흘이 걸리는 규모였으니 한국전쟁에 투입된 미군 헬리콥터를 모두 동원해야 했다. (도라전망대에서 볼 수 있는 것, 70)

 

작은 마을에서 무려 19명의 성직자, 수도자가 배출된 사정은 이러하다. 아이들에게 신부님은 큰 바위 얼굴이었다. 어른들이 아이한테 주는 최대의 축복은 너는 커서 신부님이 되어라였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 6, 12, 저녁 6. 하루 세 차례 어김없이 성당의 종이 울린다. 종지기는 30년 넘게 종을 쳐온 김재석 로렌조다. 이곳 여느 어린이처럼 사제의 꿈을 꾸었던 그다. 소신학교 졸업을 얼마 앞두고 뇌출혈로 장애를 얻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기도할 수 있어서 좋다며 하루 세 번 종탑을 오른다. (신앙의 자유를 찾아 숨어든 갈곡리, 120)

 

조선시대 선비들 사이에서는 엄청난 일이었다. 지극한 삶으로써 성인의 경지에 이르려는 게 선비의 목표인데, 공자가 언행으로써 본을 보였고 주희가 이를 성리학으로 이론화했다. 그것은 곧 고칠 수 없는 금과옥조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중화가 아닌 변방 조선에서, 그것도 서울이 아닌 파주의 20대 사이에서 논박이 이뤄졌으니 볼 만하지 않았겠는가. 이들의 삶을 관통해 보면, 이이와 송익필은 천재과, 성혼은 노력파라 하겠다. (서울에서 나고도 파주 삼현이라 불린 그들, 144)

 

미켈란젤로(1475~1564)의 말이 떠오른다. “나는 대리석에서 천사를 보았고, 그 천사가 풀려날 때까지 조각을 했다.I saw the angel in the marble and carved until I set him free.” 그에게 조각이란 돌 속에 갇힌 형상을 드러내어 생명을 부여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우리 조선은 미켈란젤로가 아직 꼬맹이였을 때 미켈란젤로에 버금가는 대가급의 조각가를 갖고 있었다. (소원을 말해봐 용미리 마애불, 210)

 

신라인 눈으로 내려다보면, 멀리 임진강이 구불구불 흐르고 선 자리에서 흘러내린 산자락과 들판이 레이스처럼 만나는 지점이 칠중성이다. 고구려와 지경을 다툰 곳이다. 1300여 년이 지난 1951년 그곳에서 영국 병사와 중국 병사가 육박전을 벌였다. 내게 고구려와 신라가 아득한 만큼, 영국과 중국 병사에게 한국 땅 임진강은 낯설었으리라. 무연의 땅에서 은혜도 원한도 없는 양국 병사가 죽기 살기로 싸웠다. 그곳은 아직 한 꺼풀 흙을 벗기면 피 냄새가 훅 끼칠 듯하다. (에필로그, 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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