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수정 : 2022-01-10 01:01:40
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
임종업 지음 / 288쪽 / 148×210mm / 20,000원
2018년 4월 27일 아침,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으로 가던 문재인 대통령은 판문점을 눈앞에 두고 환영나온 사람들을 만났다. 그곳은 일반인이 들어갈 수 없는 DMZ 안이었다. 누가 나온단 말인가. 바로, 판문점 인근에서 살고 있는 대성동 주민들이었다.
“대통령 일행을 태운 차량 행렬은 이들을 지나쳤다가 대성동 갈림길 길목까지 후진했다. 문 대통령이 전용차에서 내려 환하게 웃으며 주민들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2014년 19대 국회 국방위 소속으로 활동하면서 국회의원 신분으로 이곳을 방문한 적이 있는 그에게 주민들은 구면이었다. 대통령은 주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고 기념사진까지 찍었다.” (프롤로그 중에서)
그로부터 3년. 남북관계는 수십년간 그랬던 것처럼 냉탕과 온탕을 오갔다. 그때마다 누구보다 마음을 졸이는 사람들이 있다. 군사분계선과 맞닿아있는 대성동 주민들이다. 대성동은 북한의 기정동마을과는 채 2킬로미터도 떨어져있지 않다.
I. 발간 의의: 대성동마을에 관한 첫 책, 남북관계를 조망한다
“한반도 비무장지대(DMZ, De Militarized Zone) 안에는 민간인 마을이 두 곳이 있다. 군사분계선(MDL, Military Demarcation Line)을 기준으로 남쪽, 즉 대한민국의 대성동 ‘자유의 마을’과 북쪽, 즉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의 기정동 ‘평화의 마을’이 그것이다.” 대성동은 대한민국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민간인 마을이고 판문점이 지척이다. 가끔 연말 뉴스에 나오기도 하지만 겉보기일 뿐, 그 마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주민들의 삶은 어떠한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외부인의 접근이 원천적으로 차단돼있고, 군사구역이라 기밀에 해당하는 사항이 많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대성동마을에 대한 ‘가짜 뉴스’들도 있었다. 그 중 하나가 대성동마을 사람들은 2개 국어를 쓴다, 즉 모두 영어를 잘한다는 것이다. 또 주민들이 DMZ 밖으로 아예 나올 수 없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 모두 틀렸다.
이 책은 대성동마을을 본격적으로, 총체적으로 이야기하는 첫 책이다. 대성동의 면모를 알리는 동시에 왜곡되게 알려진 사실을 바로잡는 데도 기여할 것이다.
대성동마을에 관한 첫 책이라는 의미 외에도 이 책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사료를 뒤지고 주민 인터뷰를 통해서 기록과 기억을 생생하게 살려냈다. 지역 주민의 삶을 면밀히 들려다보고 최덕빈 중령 이야기 등 잊혀진 인물을 조명했다. 또 유엔사(미군) 관할지역의 특성상 국내에는 없는 자료는 외국의 자료를 찾아서 책에 실었다. 지도와 사진을 풍부하게 넣어, 갈 수 없는 곳을 시각적으로 가늠할 수 있도록 했고, 더불어 제3땅굴을 비롯해 판문점, 임진각 등 안보관광으로 소비되는 지역의 역사를 돌아보도록 구성했다. 대성동마을에 관한 이런 종합적이고 깊이 있는 책은 당분간 나오기 힘들 것이다.
이 책은 남북관계를 이해하는 데도 필요하다. 최근 종전선언 이야기가 오고가고 있다. 종전선언 후 우리 사회는 어떻게 달라질까. 저자가 에필로그에 다루었듯, 서울과 개성을 잇던 의주로의 한 마을 이야기에 주목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다.
II. 책의 내용
대성동의 과거와 현재
대성동마을은 정전협정이 결과 탄생했다. 남북한 양측이 비무장 지대에 민간인 마을 하나씩을 둔다는 정전 협정에 따라 군사정전위원회가 1953년 8월 3일에 조성을 시작했다. 일종의 완충지대이자 선전마을이었다.
대성동은 행정구역 이름이 아니다. 마을의 행정구역은 ‘파주시(옛 장단군) 군내면 조산리’다. ‘대성동’은 47세대가 밀집된 주거지와 주민들이 농사를 지어 생계를 꾸리는 인근 영농 지역을 일컫는다. DMZ 안 분계선 남북쪽 마을 하나씩을 두기로 하면서 유엔군에서 ‘TAE SUNG DONG’ FREEDOM VILLAGE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마을 앞에 있는 둔덕인 ‘태성’에서 따와 ‘태성 부근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삼은 것이다. 영자 표기를 다시 한글화하는 과정에서 ‘대성동’이 됐다.
대성동, 즉 장단면 조산리는 개성과 서울을 오가는 의주로 상에 있었다. 의주로는 조선시대 서울과 전국 각지를 잇는 9개 간선로 중 하나로 서울-의주를 연결하는 길이자, 대륙으로 나가는 길이었다. 오랫동안 장을 보러 다니던 그 길이 하루 아침에 끊겼다. 지금 대성동으로 가려면 임진강, 민간인통제선(국군의 검문), DMZ 남방한계선( JSA 유엔사 검문) 등 삼엄한 차단선을 통과해야 가능하다.
이 책은 모두 여섯 개의 장으로 구성돼있다. 대성동의 지리적 배경, 대성동 들어가는 길과 마을 풍경, 대성동 탄생의 역사, 대성동 주민의 삶, 대성동 인근의 관광지 등을 소개한다.
1장 대성동 누구의 땅도 아닌
판문점과 대성동의 이름 유래와 오늘날까지의 역사를 개괄해 소개한다. 대성동은 주민들이 자리 잡아 누대 살아온 그들의 향토다. 주민들 대부분의 농사를 짓는다. ‘바깥’에 비하면 대농이다. 그러나 ‘시절이 좋아지면’ 계속 이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까. 주민들이 고민이 깊다.
유엔사는 대성동 주민이 바깥으로 이주하는 것은 허용했지만 외부의 남성 세대주가 대성동으로 이주하는 것은 불허했다. 대성동 여성과 결혼한 외부 남성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외부로부터의 경쟁 없이 대성동 주민끼리 농지 점유권을 확보하는 게 가능했다. 그로 인해 정전협정 이래 대성동은 마을 규모의 변화 없이 영농지만 확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38쪽)
현재 대성동 가구당 평균 농지 면적은 3만 평(약 10헥타르). 많이 짓는 사람은 최대 8만 평까지 짓는다. 주민들 가운데 2만 평(약 7헥타르) 보유 농가를 ‘소농’이라고 부른다. 참고로 통계청 2019년 자료를 보면 전국 평균 벼 경작지 면적은 가구당 약 2헥타르이다. (38쪽)
주민들은 몇 가지 고민이 있다. 농사철에 외국인 노동자를 쓰고 싶은데 승인이 나지 않는 것이다. 민통선 마을인 통일촌처럼 대성동에서도 허용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 하나, 아이들이 농사를 이어서 지을지 모르겠다는 것. 아직 대성동은 다른 농촌에 비해 평균 연령이 낮은 편이지만 고령화 추세는 여기라고 피해가지 않는다. (43쪽)
“애초 이곳 사람들이 딱히 먹고살 게 없으니 농지 개간을 다 허용했어요. 정부에서 도와주기도 했지만 주민들이 돈을 들이고 피땀 흘려 일군 거죠. 근데 땅문서가 없어요.
만일 개방되어 원주인이 나타나 소유권을 주장하면 막막하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농사밖에 모르는데 어디에 가서 뭘 먹고 사나 걱정이에요.”
DMZ라서 곡창이 된 대성동이 DMZ인 탓에 존폐 위기에 놓인 것이다. DMZ가 열쇠인 동시에 족쇄인 셈이다. (44쪽)
2장 DMZ 첫 마을
대성동 가는 길에 대한 안내와 마을 풍경을 소개한다. ‘용무가 없다면’ 아직 일반인은 마을에 들어갈 수 없는데, 일단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 여느 농촌마을과 다르지 않음이 느껴진다. 한 해 졸업생이 5명인 대성동초등학교은 전국에서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시설이 좋다. 북한과 경쟁하듯이 높이를 높인 국기게양대의 태극기는 마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대성동 마을에 닿으려면 임진강을 건너 북상해야 한다. 임진강은 휴전선과 가장 가까운 천연 장벽이자 민통선이라는 정치적, 군사적 장벽과 겹친다. 임진강에 걸친 다리 가운데 가장 왼쪽에 놓인 통일대교가 대성동 관문이다. (59쪽)
이곳 학생들은 한해 한차례 단체사진을 찍는다. 졸업 앨범용이다. 한해 졸업생이 5명인데, 5명으로 썰렁하게 찍느니 전교생이 함께 찍는 오붓함을 선택한 거다. 해마다 즐겨 찍는 장소는 운동장. 학교 본관 건물을 끼고 대성동 마을의 상징인 태극기 게양대가 배경으로 보이는 곳이다. 사진을 보면 누구나 대성동초등학교와 그 학생들임을 알 수 있다. 졸업 연도만 다를 뿐. (106쪽)
3장 대성동의 탄생
대성동은 마을이 만들어진 후 크게 두 번 개발이 되었다. 이 장은 1950년대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의 대성동마을 조성, 1970, 80년대 중앙정보부가 주도한 대성동 개발 과정을 다룬다. 전쟁 후 대성동의 기초를 세웠으나 지금은 잊혀진 인물 최덕빈 중령에 대해서도 한 꼭지를 할애해 주목한다.
1959년 유엔사와 정부에 의해 추진된 크리스마스 전까지 낙후된 자유의 마을을 근대화한다는 계획에 따라 마을에 변화가 시작됐다. 미군이 기증한 발전기가 도입되었고 블록주택(문화주택) 3동이 지어졌으며, 공회당과 동사무실, 의무실, 목욕탕 등 공공시설이 지어졌다.
최덕빈 중령이 그린 이상촌은 자치 조직을 기반으로 한 주민 공동체다. 이를 위한 기반 시설로 주민들이 모일 수 있는 공회당을 세웠다. 현재는 마을의 동쪽 구릉 위 한적한 곳이지만 당시는 뒤쪽에서 마을 전체를 내려다보며 아우르는 곳이었다. (130쪽)
현재의 대성동 마을은 1979~1980년 ‘대성동 종합 개발’에 따라 갖춰졌다. 대성동 종합 개발은 정부의 첩보 기관인 중앙정보부(국가정보원의 전신) 주도로 이뤄진다. 중앙정보부는 1979년 1월 8일 당시 박정희 대통령한테 ‘판문점 지역 종합 개발 건의’ 제하의 문건을 올려 재가를 받았다. (109쪽)
4장 대성동 주민으로 살아가기
대성동 주민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필요, 충분 조건을 다룬다. 대성동 주민은 납세의 의무, 국방의 의무가 없다. 대신 마을에 가게도 없고 병원도 없다. 통금시간이 있고 농사를 지으러 갈 때는 민정중대가 따라붙는다. 이장은 마을사람들을 위해 유엔군과 국군, 정부와 파주시와 소통해야 한다. 대성동에서는 이장의 역할이 매우 중요하다. TSD(대성동) Mayor라 불리는 이장의 역할과 권한을 자세히 알아본다.
대성동 주민은 주민등록증 외에 또 다른 신분증을 갖고 있다. 빨간색 비무장지대 출입증이 그것이다. 주민증과 형식은 비슷한데 주소 표기와 발행 기관이 다르다. 예컨대 주소가 14-2라면 14번 주택에 거주하는 세대주의 아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통상 1번은 세대주, 2번은 배우자, 3번은 첫 번째 자녀 식으로 번호가 매겨진다. 발행자는 유엔사 공동경비구역 대대장. (156쪽)
대성동에 관한 한 이장이 경비 이외의 모든 사안을 관리한다. 그가 ‘아니오.’ 하면 안 되고, 그가 ‘네.’라고 하면 된다. 그래서인가, 그의 의사 표현은 된다, 안 된다가 분명하다. 주민 대표로서 유엔군 사령관, 대성동 민정중대장, 공동경비구역 한국군 경비대대장, 공동경비구역 유엔사 경비대대장 및 유엔사 군정위 비서장을 상대로 대등하게 현안에 대해 교섭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고 있다. 외부인의 대성동 방문은 사실상 이장이 관할한다.
자신의 농사일을 겸하기에 2배 이상 바쁘다. 통화도 힘들다. 그와의 스케줄은 두어 달 전에 잡아야 할 정도다. (169쪽)
5장 대성동 사람들
한국전쟁 후 민간인 마을을 조성하게 된 배경과, 대성동 주민들의 인터뷰를 생생하게 전달한다. 도토리를 줍다가 북으로 끌려간 사연, 최북단에서 난방도 안되는 집에 살았던 이야기들이 생생한 목소리로 기록돼있다.
대성동 마을은 유엔사 관할이다. 주민들의 모든 행위는 그들의 통제를 받는다. 자유의 마을 출범 당시 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었다. 1969년 주민등록증이 발급돼 비로소 국민이 되었다. 유엔사의 역할이 한국군에게 이양되어 한국군이 그 실행을 대행하고는 있지만 최종 권한과 책임은 유엔사에 있다. 대성동 경비가 한국군으로 이양된 것은 2004년, 불과 16년 전이다. 하지만 이곳을 출입하려면 대한민국 장관도 유엔사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216쪽)
6장 대성동 인근 돌아보기
제3땅굴, 도끼만행사건이 일어난 돌아오지 않는 다리, 판문점(JSA), 임진각 등 전쟁 혹은 평화와 관련된 주변의 가볼 만한 곳을 소개한다. 아울러 이들을 품고 있는 의주로에 대한 저자의 의견을 피력한다.
자유로와 통일로는 그 이름과 달리 대성동 못 미쳐서 끊겨 있다. 문 대통령 역시 2018년 남북 정상회담 때 자유로를 달려 판문점에서 멈췄다. 그에 반해 의주로는 분단 이전에 남북을 잇는 길이었고, 통일이 되면 서울과 평양을 잇는 길이 될 터이다. 그 점에서 의주로는 우리 한반도의 과거이자 미래다. (274쪽)
III. 저자 소개
신문쟁이. 초등학교 때부터 신문 읽기를 시작해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다. 서울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했으며, 《전자신문》에서 시작해 《한겨레신문》 편집부, 여론매체부, 문화부 등에서 30년 동안 기자로 일했다.
직업의 경험과 공부를 살려 《신문기사 제목달기》 《한국의 책쟁이들》 《미술마을 인문기행》 《작품의 고향》 등의 책을 썼다.
IV. 편집 뒷 이야기
책의 시작은 이장님이었다. 마을에 외국인이나 관계자들이 오면 마을을 소개하는 책자가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파주시 중앙도서관에 낸 것이다. 파주시 중앙도서관은 이를 받아들여 다시 출판사에 제안을 했다. (파주중앙도서관에는 전국 유일의 기록화사업팀이 있다. 이 책은 대성동에 관한 기록을 축적할 수 있다)
소동츨판사는 더 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도록 책을 만들자는 편집 방침을 정하고 저자를 섭외했다. 지도와 자료, 도판 등 책의 구석구석에 마을을 입체적으로 조명하고자 하는 노력이 들어가있다. 마음대로 가볼 수 없는 곳에 대한 책을 낸다는 사실에 자부심도 컸다.
저자와 사진 작가, 편집자 등 관계자들이 몇 차례에 걸쳐 대성동을 들어가서 취재를 했다. 무엇보다 대성동을 들어가려면 유엔사의 승인이 있어야 하는데 대성동 이장님이 도와주셔서 비교적 수월하게 다녀올 수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유엔사에서 출입 자체를 원천 봉쇄하여 하염없이 기다리는 날도 있었다.
책의 최종 편집 단계에서는 유엔사가 판매용 책자를 만들 수 없다고 해서 망연자실한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이미 유엔사는 들어가서는 안되는 사진과 내용에 대한 검열도 했던 터였다. 판매용 책에 대한 물꼬는 다시 이장님이 노력을 기울여주셨다. (이장님은 눈 덮힌 송악산과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돌기 전 멧돼지가 심심찮게 출현하던 장면 등 주민만 찍을 수 있는 사진도 제공해주셨다.)
우여곡절을 겪고 책이 나오게 됐다.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어있고 유엔사가 관할하고 있음을 실감했던 시간들이었다. 이 책을 계기로 비밀에 싸여있던 대성동마을이 다른 대한민국 마을처럼 친근하게 다가오기를, 더 많은 연구가 활성화되기를 기원한다. (영문판도 발행돼 있다. 아직은 비매품)
표지: 띠지 형식의 커버는 밖에서 보는 대성동, 속표지는 안에서 보는 대성동, 파란색과 빨간색 톤으로 태극기, 남북한 등을 상징합니다.
소동출판사는 지역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지역의 역사, 주민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담으려는 시도를 꾸준히 해왔습니다. DMZ에 관해서는 <대성동: DMZ의 숨겨진 마을>뿐 아니라 그림책 <기이한 DMZ 생태공원>(강현아)을 냈습니다. 곧 출간될 그림책 <미어캣의 모자>(임경섭)도 DMZ 마을의 동물들이 등장합니다. 평범한 지역주민이 낸 <고향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이재연) <할머니 독립만세>(김명자) 등은 한국출판진흥원 우수콘텐츠에 선정되기도 했고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받았습니다. 앞으로도 지역과 지역민의 이야기를 꾸준히 발굴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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