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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자 재산 등록 심사제도의 허점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칼럼

입력 : 2021-04-13 03:03:54
수정 : 0000-00-00 00:00:00

공직자 재산 등록 심사제도의 허점

 

 

 

윤주영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감사(전 부천시 감사관)

 

 

LH 직원들의 땅 투기 의혹으로 시작된 논란이 뜨겁다. 평범한 국민들은 접근할 수 없는 정보를 이용해서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사적 이익을 취했는지 그리고 그 사람들 속에 누구보다 솔선해서 공익에 봉사해야 할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도대체 어느 정도나 포함된 것인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알 만한 사람들은 알고 있었을지 모를 이러한 문제점이 불거지면서 정부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설령 지금의 상황이 오랜 세월 동안 켜켜이 쌓여온 부정부패의 발현이라 하더라도, 정의롭고 공정한 세상을 표방해온 현 정부로서는 너무나 뼈아프고 당황스러운 현실과 책임에 마주한 것이다.

 

마련된 대책 중의 하나가 공직자 재산 등록 의무자의 범위를 크게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현행 공직자 윤리법에서는 선출된 정치인, 4급 이상의 공무원, 특정 분야에 근무하는 7급 이상 공무원 등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재산 등록 의무를 부여하고 있다. 이러한 의무를 모든 공직자에게 지우겠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방자치단체 소속 공무원으로 공직자 재산 등록 심사 업무를 다년간 수행한 경험이 있다. 재산 등록 의무자들이 신고한 내용에 대해서 공직자 윤리법에 정해진 기준과 절차에 따라 심사를 하고 위반사항이 발견될 경우 그에 대한 조치를 하는 업무였다.

 

심사는 두 가지 측면에서 이루어진다. 보유한 재산을 누락 없이 법규에 맞게 정확히 평가해서 신고했는지를 점검하는 것이 '성실성 심사'이고 보유한 재산과 관련해서 소득의 원천, 취득의 경위, 직무 정보의 이용 여부 등 재산형성 과정에 부당함은 없었는지 살펴보고 문제가 발견될 경우 수사 의뢰 등 필요한 조치를 취하는 것이 '윤리성 심사'이다.

 

전자는 비교적 잘 이행되고 있었고 지금도 그러할 것이다. 문제는 윤리성 심사의 실효성을 거의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부당한 방법으로 재산을 형성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금융이나 부동산은 물론 세법 등 관련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과 숙련된 경험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나 실제 재산심사의 현장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에게 그러한 역량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공직사회의 본질에 대한 약간의 이해만 있어도 정치인과 고위공무원들의 재산형성 과정의 속살을 드러내게 될지도 모르는 업무에 대해서, 그들의 과감한 접근을 기대하는 게 무리라는 점에 쉽게 동의하리라 생각한다. 이러한 현실에 대한 증명은 간단하다. 지난 10여 년간, 언론의 문제제기 등에 의하지 않고 오로지 재산 등록 심사 과정에 의해서 고발이나 수사 의뢰가 행해진 사례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확인하면 될 것이다.

공적 정보의 이용 등 부정한 방법으로 재산을 형성한 이들을 찾아낼 수 있는 '윤리성 심사'의 현실이 이러할진대, 등록 의무자를 크게 확대하는 방법이 과연 얼마나 효과적일까?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일부를 관리의 대상으로 편입할 수는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각 심사기관의 업무량을 크게 가중시켜 심사의 실효성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의미 있는 윤리성 심사는 아예 기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심사대상은 많이 늘지만 정작 문제를 일으키는 일부에 대한 촘촘한 검증은 여전히 생략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외부 전문가 인증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 정부가 일정한 전문가 집단에게 재산 등록 사항 심사 업무에 대한 대행 자격을 부여하고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의 재산 등록 사항의 성실성과 윤리성에 대해서는 당해 전문가들에게 인증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물론 인증을 담당할 심사자의 객관적 선정과 공정하고 유효한 심사를 위한 절차와 기준 또한 같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심사를 맡은 전문가는 재산의 성실한 신고 여부를 확인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등록 의무자의 재산 형성의 적법성과 윤리성을 검증하게 된다. 재산의 평가는 제대로 했는지, 재산의 증가를 설명할 만한 소득은 있었는지, 타인에게 부당한 지원을 받은 것은 아닌지, 세금의 신고와 납부를 누락하지는 않았는지, 차명으로 재산을 숨긴 흔적은 없는지, 공적인 정보를 이용해서 재산을 불린 사실은 없는지 등을 확인하는 것이다.

 

개인 및 법인사업자들의 대다수는 반드시 조세전문가의 인증을 받아 세금을 납부해야 하고 일정한 요건에 해당하는 민간기업들은 반드시 외부의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이는 모두 공정하고 투명한 사회를 지켜내기 위한 기본적인 장치이다. 일반 국민과 기업들도 이러한 의무들을 감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적 정보에 대한 다양한 접근이 가능한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외부 전문가에 의한 객관적 검증제도의 도입을 마다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그간 의무자들이 신고한 재산사항에 대한 제대로 된 윤리성 심사만 이루어져 왔다면 우리 사회의 투명성은 지금보다 훨씬 제고되었을 것이며 LH 사건으로 촉발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 또한 예방되었을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

 

공직자 윤리법에 명백하게 규정되어 있으면서도 그간 실효성 있게 이행되지 못했던 공직자 재산 등록 사항에 대한 윤리성 심사, '외부 전문가 심사인증제도'의 도입을 통해 확실한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다. 아울러 공직사회와 정치권의 청렴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데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기억 하나를 덧붙여보면, 재산 등록 사항을 심사하던 중 개발 인허가 업무를 담당했던 공직자 한 명의 신고 사항이 아무래도 이상했다. 전년보다 재산이 적지 않게 늘었는데 그 출처가 불분명했다. 급여소득 등 본인이 신고한 내용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부정이 적지 않게 의심되었다.

 

조용히 면담을 요청해서 분석 자료를 내밀었더니 그 공무원은 많이 놀라는 눈치였다. 다행히도 큰 문제는 없었고 증여세 신고 누락이 확인되었다. 부모님에게 금전을 증여받아 재산이 늘었는데 세금 신고는 생략했던 것이다. 약간의 가산세를 붙여서 세금 신고를 이행하게 했고 서로 덕담을 나눈 뒤 기분 좋게 만남을 마쳤다.

 

눈앞의 불을 끄기 위해서 물줄기를 요란하게 퍼붓는 것으로 그치면 곤란하다. 불길의 근원을 정확히 찾아내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

 

정책과 입법을 담당하는 분들의 관심과 혜안을 기대한다.

 

 

출처: https://mywelfare.or.kr/2326 [내가만드는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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