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병범 시민과학자가 기록한 파주출판단지 제비, 올해는 2차번식까지 살펴보다
수정 : 2021-09-17 08:34:02
파주출판단지 제비의 한살이
조병범(시민과학자)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너무 더워 꼼짝하기 싫은 계절이지만 여름은 생명의 계절이다. 돌곶이습지는 새로운 생명들로 수런댄다. 흰뺨검둥오리 쇠물닭 덤불해오라기 어린 새가 돌아다니고, 개개비와 뻐꾸기가 알을 낳았다. 텃새인 붉은머리오목눈이가 번식하고 습지 바깥에서 까치 참새 박새 같은 텃새도 번식한다. 갈대와 부들 같은 풀이 무성하고 영양이 풍부한 물이 있는 까닭이다. 습지에서 번식하지 않지만 습지의 흙으로 둥지를 짓는 제비도 돌곶이습지의 중요한 일원이다. 쉰 마리 정도가 쓰러진 갈대 위에 앉아 있는 광경을 보기도 했다.
돌곶이습지의 일원인 제비의 한살이를 지난해 처음 관찰했다. <파주에서> 제 117호(2020년 7월 15일)에 관찰일지가 소개되어 있다. 지난해 관찰한 제비는 돌곶이습지 옆 ㈜앤에스피티(대표 문용덕) 건물 입구에 둥지를 지었다. 출입구 CCTV 뒤편 수직 벽돌에 둥지를 지어 4마리의 새끼를 키웠다.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제비에게 똥 받침대를 만들어주기도 하며 돌본 덕분이었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제비가 한 번만 번식하고 두 번째 번식을 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오는 제비는 대부분 두 번씩 번식하는데 한 번만 번식하고 말았다. 1차 번식 때 지은 둥지랑 이삼 미터 떨어진 곳에 두 번째 둥지를 짓다 포기했다. 첫 번째 둥지에 두 번째 알을 안 낳고 두 번째 둥지마저 포기한 것은 1차 번식에 사람 간섭이 있고 두 번째 번식마저 그러리라 예상한 것일까. 2차 번식은 다른 곳에서 한 듯하다. 2차 번식까지 보지 못해 내내 아쉬웠는데 올해 드디어 2차 번식까지 지켜보았다. 이번에 관찰한 제비는 돌곶이습지 바로 옆에 위치한 건물, 삼성BCM(대표 이원근)에서 번식했다. 회사 마당 안쪽 비가림막 밑에서 번식하여 바깥사람은 보기 어려운 환경이었다. 뒤늦게라도 2차 번식까지 보게 되어 다행이다. 시간이 나면 아침 8시쯤 둥지를 찾아 제비에게 영향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관찰했다. 1차 제비 포란을 확인한 5월 20일부터 2차 이소한 제비가 돌곶이습지 갈대 위를 날아다니는 것을 본 7월 29일까지 드문드문 관찰한 일지이다.
첫 번째 번식
2021년 돌곶이습지에서 제비를 처음 본 날은 4월 13일(음력 3월 2일)이다. 지난해 둥지를 튼 ㈜앤에스피티에 올해도 제비가 다시 올까 기웃거렸지만 오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에 습지 둘레를 살펴보다가 5월 20일에서야 습지 위를 날아다니던 제비가 삼성BCM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회사 안으로 들어가 인사를 하고 알아보니 제비가 비가림막 안쪽에서 포란하고 있다. 이곳에서 17년 동안 일한 허양 님(65) 말씀에 따르면 5년 동안 제비가 찾아온단다. 첫해 비가림막에 지은 둥지는 비바람과 세월에 없어졌다. 지난해 1차 번식 때 지은 둥지를 다시 보수하여 알을 품고 있는데 얼마 전에 알 하나가 바닥에 떨어져 깨졌다고 한다. 지난해 2차 번식 때 지은 둥지도 비가림막 밑에 둥지를 지어 보존되어 있으나 1차 번식 때 지은 둥지보다 많이 노출되어 있다. 올해 쓰고 있는 둥지는 마당에서 보면 전혀 보이지 않는 위치다. 회사 내부에서 일하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위치에서 제비 두 마리가 교대로 알을 품고 있다. 원래 봄에 비가림막 교체 공사를 하려고 했으나 제비의 포란 사실을 알고 교체를 미루었다고 한다. 제비를 아끼는 사람들이 일하는 회사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으로 제비가 둥지를 떠날 때까지 지켜볼 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 제비 포란
▲ 허양 님(65세)
2021년 5월 21일(금) 흐리고 비가 오락가락한다. 기온은 14℃이고 북북서풍이 3m/s로 분다. 음료수를 사서 삼성BCM으로 갔다. 허양 님은 납품하러 갔다고 한다. 젊은 분한테 음료수 박스를 전달하고 제비를 봤다. 둥지 근처에서 쉬고 있는 수컷 제비, 그리고 포란하는 암컷 제비. 둥지 근처에서 쉬고 있던 수컷 제비가 밖으로 날아간다. 홀로 둥지에 남아 있는 암컷 제비, 15분이 지나도록 홀로다. 어쩌면 우주에서 홀로인 듯한 느낌도 들지 않을까. 비가 오고, 짝은 안 돌아오고, 포란을 계속해야 해야 할 상황. 알을 품던 암컷 제비가 고개를 들고 슬금슬금 방향을 돌리더니 엉덩이를 둥지 밖으로 향하고 똥을 눈다. 하얀 똥이다. 구멍이 다 보이도록 똥을 눈 뒤 제비는 슬금슬금 다시 방향을 틀어 알을 품는다. 조금 뒤 약하게 내리는 비를 맞으며 나갔던 수컷 제비가 돌아온다.
2021년 5월 24일(월) 기온은 17℃이고 북서풍이 2m/s로 분다. 잔뜩 흐리더니 구름 사이로 해가 나온다. 습지에는 물이 들어와 있다. 습지 위를 어미 제비 두 마리가 날아다닌다. 포란하다 몸을 풀러 밖으로 나왔다. 제비가 둥지 쪽으로 날아가 둥지에 가 보니 한 마리는 알을 품고 한 마리는 근처에서 쉬고 있다. 허양 님 말씀을 들었다. 지금 둥지가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두 개다. 첫해에 지은 둥지는 허물어졌고, 똥 받침대를 만들어준 것은 그대로 남아 있다. 두 번째 해와 세 번째 해에 지은 둥지는 흔적만 있다. 네 번째 해 1차 번식 때 지은 둥지를 올해 쓰고 있고, 네 번째 해 2차 번식을 하려고 지은 둥지는 온전한 모양이지만 지난해 둥지를 짓기만 하고 번식을 하지 않았다. 노출된 곳에 아직 남아 있다. 포란하고 있는 둥지에서 알을 하나 떨어뜨린 게 10여 일 되었다고 한다. 허양 님은 제비가 알을 품을 때 교대로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고, 2차까지 번식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제비에 관한 관찰 지식이 정확하다. 이러한 관심과 애정 덕분에 다섯 해째 제비가 찾아오는 게 아닌가 싶다.
2021년 5월 26(수) 맑음. 기온은 16℃이고 남남동풍이 4m/s로 분다. 삼성BCM은 이른 아침부터 일하느라 바쁘다. 제비 둥지 안에 어미 한 마리가 앉아 있다. 밖에 나갔던 제비가 둥지 근처로 내려앉자 둥지에 있던 제비가 건물 밖으로 날아간다. 둥지 근처에 앉은 제비가 곧바로 둥지로 날아든다. 둥지 안으로 곧바로 들어가지 않고 둥지를 내려다본다. 그러더니 고개를 숙여 새끼 똥을 받는다. 아니, 포란 중인 줄 알았더니 이미 새끼가 알을 깨고 나왔다! 새끼 똥을 부리에 문 제비가 둥지를 벗어나 건물 밖으로 날아간다. 멀리 멀리 내다 버리리라. 잠시 둥지는 어미가 아무도 없는 상태로 새끼들만 있다. 새끼들은 소리를 전혀 내지 않는다. 잠시 뒤 이전에 둥지에 있던 제비가 날아와 둥지 속으로 들어간다. 조금 뒤 새끼 똥을 물고 나갔던 제비가 먹이를 물고 둥지에 온다. 둥지에 있던 제비는 날아가고 먹이를 물고 온 제비가 새끼에게 먹인다. 그러고는 둥지 속으로 들어가 새끼를 품는다. 어미 제비들은 교대로 새끼를 품고 먹이를 잡아 와 먹인다.
▲ 새끼 똥을 부리로 받는 어미 제비
▲ 먹이를 물고 온 어미 제비
2021년 5월 31일(월) 흐리다. 기온은 18℃이고 남동풍이 3m/s로 분다. 습지에는 물이 빠졌다. 뻐꾸기가 습지 위를 날며 호꾹 호꾹 계속 소리를 낸다. 습지 위 갈대밭에는 개개비 소리 요란하고, 붉은머리오목눈이 무리 소리도 크다. 제비 둥지는 새끼가 얼핏 보인다. 덩치가 자라 둥지 밖으로 몸의 일부가 드러난다. 수컷과 암컷 어른 제비는 둘 다 둥지 근처에서 쉬고 있다. 꼬리가 긴 수컷은 깃털이 깨끗하다. 둘 다 먹이를 잡아 오지만 암컷이 훨씬 부지런하게 갖다 주는 것을 깃털이 그대로 보여준다. 암컷 배와 가슴은 흙이 묻어 지저분하다.
2021년 6월 1일(화) 비 온 뒤 흐리다. 기온은 17℃이고 동북동풍이 3m/s로 분다. 제비 둥지에는 새끼들만 있다. 덩치가 자라 둥지 위로 살짝 보인다. 수컷은 둥지 근처에서 쉬고 있다. 5분이 안 되어 암컷이 먹이를 물고 와 새끼에게 먹이고 날아간다. 조금 뒤 수컷도 날아간다. 5분쯤 지나 암컷이 먹이를 물고 와 새끼에게 먹이고 날아간다. 곧바로 수컷이 먹이를 물고 날아와 새끼에게 먹이를 주고 날아간다. 알이 하나 둥지 아래로 떨어졌다고 하더니 정말 둥지 속에는 새끼가 정말 몇 마리 안 되는 듯하다.
2021년 6월 2일(수) 햇살이 난다. 기온은 19℃이고 동남동풍이 1m/s로 분다. 제비 둥지에는 새끼들만 있다. 새끼 두 마리가 분명하게 보인다. 조금 뒤 암컷이 날아와 먹이를 먹이고는 둥지를 떠나지 않는다. 둥지에 앉아 있다가 수컷이 먹이를 물고 오자 둥지를 비켜주며 비가림막 지지대에 앉는다. 수컷이 먹이를 물고 와 새끼에게 주고 곧바로 암컷이 쉬는 위쪽에 날아가 앉는다. 한 쌍이 쉬는 위치를 보면 거의 수컷이 위쪽에, 암컷이 아래쪽이다. 여전히 암컷 깃털이 지저분하고, 수컷 깃털은 깨끗하다. 어미 두 마리가 깃털을 다듬기 시작한다.
2021년 6월 7일(월) 흐린 뒤 비가 온다. 기온은 21℃이고 남남동풍이 2m/s로 분다. 습지에는 물이 들어와 있다. 심학산 쪽에서 검은등뻐꾸기가 소리를 낸다. 뻐꾸기는 습지 위쪽에서 소리를 내는데 이전보다 소리를 내는 빈도가 적다. 제비 둥지는 조용하다. 10분이 다 되어가도록 조용한 둥지. 어미 제비들도 보이지 않아 새끼들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경망스러운 생각이 든다. 그러나 허양 님 말씀을 들으니 최소 새끼 두 마리가 잘 자라고 있다고 한다. 10분쯤 시간이 지났을 때 새끼 한 마리가 둥지 위로 오르더니 엉덩이를 밖으로 하여 똥을 눈다. 곧이어 어미 한 쌍이 날아와 둥지 근처에 앉는다. 새끼가 두 마리밖에 안 되어 어미들이 그다지 바쁘지 않은 것일까. 새끼들도 먹이를 마구 보채지 않는다.
2021년 6월 8일(화) 햇살이 난다. 기온은 27℃이고 남남동풍이 2m/s로 분다. 더위가 본격 시작된다. 새끼 두 마리가 둥지 위로 고개를 내밀고 있다. 새끼 제비를 보고 있는데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이 시원한 커피를 들고 와서 따라준다. 그러면서 제비 둥지가 덥지 말라고 천막 위에 스티로폼을 올려놓았고 너무 더울 때면 선풍기를 둥지 방향으로 틀어 바람을 쐬어 준다고 한다. 허양 님 말고도 제비를 아끼는 분이 회사에 또 있다. 이러니 제비가 5년째 둥지를 짓는 거겠지. 덕분에 회사도 잘 되는 거겠지. 요즘 같은 불경기에 이곳은 일이 많아 다른 곳으로 넘기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10분 정도 지났는데도 어미들이 오지 않는다. 보통 4-5마리 새끼를 키우고 많을 때는 6마리까지 키우는데 기껏 2마리밖에 키우지 않으니 어미들이 느긋해 보인다. 둥지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있던 새끼들은 고개를 다시 들이밀었다.
2021년 6월 10일(목) 가끔 흐리다. 기온은 22℃이고 남풍이 1m/s로 분다. 아침부터 후텁지근하다. 제비 둥지에 제비가 없다. 새끼가 안 보인다. 깜짝 놀라 둘레를 살펴보니 둥지 근처에 새끼 두 마리가 수컷과 함께 앉아 있다. 벌써 이소라니! 두 마리밖에 안 되니 새끼들이 쑥쑥 자라고 그런 만큼 이소가 빠르다. 조금 뒤 수컷이 날아가고 새끼 한 마리가 날아간다. 새끼의 날갯짓이 어미만큼 민첩하지 않지만 그래도 잘 날아다닌다. 허양 님한테 확인하니 어제까지 둥지에 있었다고 한다. 오늘 새벽에 둥지를 떠났나 보다. 이소한 첫날부터 힘차게 날아다니다니 멋지다. 한 마리는 계속 자리를 지킨다. 힘이 약한 둘째겠지. 어미가 날아와 함께 날자고 얘기하는 듯하지만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다 둘째 어린 제비가 어미를 따라 날아오른다. 민첩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서툴지도 않다. 둘째는 곧 돌아와 지키던 자리에 앉아 쉰다. 조금 뒤 암컷이 먹이를 물고 와 둘째에게 먹인다. 먹이를 먹고 난 둘째가 다시 날아올라 네 마리가 허공에서 춤추듯 날아다닌다.
▲ 텅 빈 둥지
▲ 이소한 새끼 제비 2마리
두 번째 번식
2021년 6월 21일(월) 기온은 21℃이고 북서풍이 1m/s로 분다. 해가 구름 뒤에 있다가 나오려고 한다. 습지에는 물이 빠졌다. 제비가 알을 품고 있다. 10일에 새끼들이 둥지를 나갔으니 11일 만에 2차 번식, 포란을 또 확인한 것이다. 1차 번식 때 2마리밖에 안 키워 2차 번식이 급했던 것일까. 이번에는 1차 번식 때보다 더 많은 새끼를 키우기를 기도한다. 암컷이 알을 품고 있고 근처에 수컷이 앉아 있다.
▲ 둥지 근처 수컷 제비
▲ 알을 품고 있는 암컷 제비
2021년 6월 25일(금) 흐리다가 해가 난다. 기온은 21℃이고 남동풍이 1m/s로 분다. 제비 둥지에 제비가 없다. 포란하다 두 마리가 동시에 먹잇감을 찾으러 나갔나 보다. 허양 님 말씀에 따르면 새끼 제비가 이소한 뒤 3일 만에 새끼들을 쫓아내 그 뒤로 새끼 제비들이 안 보인다고 한다. 습지를 한 바퀴 돌고 오니 그때는 암컷이 포란하고 있다. 조금 뒤 수컷이 날아온다. 습지 위에 이곳 둥지의 제비가 아닌 제비 몇 마리가 날아다니고 있다.
2021년 7월 1일(목) 흐리다 해가 난다. 기온은 23℃이고 동북동풍이 1m/s로 분다. 암컷이 둥지에 있는데 지금까지 있던 자세랑 다르다. 보통 머리가 보였는데 오늘은 방향이 바뀌어 꼬리가 보인다. 포란하다 방향을 바꾼 게 아닌가 싶다. 수컷은 보이지 않는다. 공원 쪽 하늘과 습지 아래쪽 하늘에 다른 제비 6마리가 날아다닌다. 습지 아래쪽 갈대에 내려앉아 깃털을 다듬기도 한다. 어린 새도 있다. 근처에서 태어난 뒤 어미랑 세상 구경을 나왔다.
2021년 7월 5일(월) 기온은 21℃이고 남풍이 1m/s로 분다. 비 온 이튿날이고 흐리다. 어미가 둥지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천천히 밖으로 나온다. 가슴 깃털이 깨끗한 거로 봐서 수컷이다. 암컷이 먹이를 잡으러 나간 사이 알을 품고 있었나 보다. 암컷이 아직 오지 않은 상황이라 수컷이 나가면 둥지는 어미가 없는 상태로 있게 된다. 제비 둥지에서는 흔한 일이다.
2021년 7월 6일(화) 기온은 22℃이고 북북동풍이 1m/s로 분다. 햇살 환하다. 어미 제비가 한 마리도 안 보인다. 조금 뒤 한 머리가 먹이를 물고 날아와 둥지 속에 몸을 깊이 들이민다. 이미 포란 단계를 지나 육추를 하고 있나 보다. 허양 님한테 들으니 이미 육추 중이란다. 먹이를 물고 들어오는 것을 보았고, 알 껍질도 발견했다고 한다. 알 껍질은 책을 쌓아 놓은 책더미랑 벽 사이 좁은 곳에 떨어져 있었고 그저께 보았다고 한다. 세 개가 떨어져 있
지만 완전히 둥근 모양이 아닌 껍질도 있어 최소 두 마리의 새끼가 있을 것이라고 한다. 알 껍질을 다른 곳에 버린 가능성도 열어 두어야 한다.
▲ 몸을 숙여 먹이를 주는 어미
▲ 바닥에 버린 알껍질
2021년 7월 12일(월) 흐리다가 해가 난다. 기온은 25℃이고 남동풍이 2m/s로 분다. 제비 둥지가 조용하다. 5분쯤 지나 수컷이 둥지에 온다. 부리에 먹이가 없다. 둥지 안을 살펴보더니 둥지가 보이는 현수막 지지대로 날아가 쉰다. 어미들이 자주 쉬는 곳이다. 곧이어 암컷이 부리에 먹이를 물고 오더니 새끼에게 먹이를 준다. 새끼의 노란 부리가 보인다. 여러 마리가 보이지 않고 달랑 부리 하나만 보인다. 허양 님은 부리 두 개까지 봤다고 한다. 암컷이 둥지에 더 머물다 날아간다. 근처에서 쉬고 있던 수컷도 날아간다.
2021년 7월 15일(목) 해가 쨍쨍하다. 기온은 28℃이고 동풍이 1m/s로 분다. 어미 두 마리가 둥지 근처에서 쉬고 있다. 새끼들이 가끔 부리를 들어 먹이를 달라고 하지만 어미들은 그저 쉬고 있다. 조금 뒤 어미 두 마리가 나가더니 암컷이 먹이를 물고 와 새끼에게 먹인다. 수컷은 먹이를 물고 오지 않았다. 어미들은 곧바로 다시 먹이를 잡으러 가지 않고 근처에서 쉰다. 이소할 때가 가까워진 것일까. 허양 님은 새끼 3마리를 보았다고 한다.
2021년 7월 19일(월) 오후에 둥지를 찾았다. 흐리다가 소나기가 내리고 그러다가 해가 나는 변덕스러운 날씨다. 기온은 30℃이고 북풍이 1m/s로 분다. 제본기에서 일하는 박일진 님(56)이 제비 둥지 속을 보여주겠다고 한다. 사양했지만 보고 바로 내려오면 괜찮단다. 지게차를 타고 둥지가 있는 곳까지 오르니 둥지 근처에 있던 수컷이 날아간다. 새끼들은 눈을 감은 채 바짝 몸을 엎드려 꼼짝하지 않는다. 얼마나 두려울까. 곧바로 내려왔다. 마당 하늘을 날던 수컷이 날아와 둥지를 확인한다. 새끼들 안전을 제일 먼저 확인하고 지지대에 앉았다가 날아간다. 조금 뒤 암컷이 먹이를 물고 날아와 새끼들한테 먹이고 날아간다. 유독 새끼 한 마리 덩치가 크다. 가장 먼저 알에서 깨어났으리라. 암컷이 날아간 뒤 수컷도 날아간다. 둥지는 잠깐 새끼들 뿐이다. 박일진 님이 시원한 공기를 둥지에 쏘겠다고 장비를 갖고 나온다. 더울 때면 가끔 둥지에 시원한 공기를 불어 넣어준다고 한다. 그리고 가끔 둥지를 살펴보며 사진도 찍는데 그럴 때 어미들은 지켜볼 뿐 난리를 치지 않는단다. 당신이 새끼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어미들은 알고 있다고 한다. 그러니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 마당에서 여러 바퀴 돌며 인사하는 게 아니냐고 한다. 첫 번째 배에 태어난 제비 새끼들은 어디선가 지내다가 가끔 둥지 근처에 놀러 온다고 한다. 가끔 이곳에 와서 쉬고 가다가 나중에 고향으로 돌아갈 때면 첫 번째 배에 태어난 새끼랑 두 번째 배에 태어난 새끼까지 모두 모여 고향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이들은 꼭 회사 사람들이 장기 휴가를 갔다 오면 없어지는데 그럴 때면 너무 서운하다고 한다. 그래서 이듬해 봄에 다시 오기를 기다리게 된다고 한다.
▲ 먹이를 달라는 제비 새끼
2021년 7월 22일(목) 해가 쨍쨍하다. 기온은 27℃이고 북북동풍이 1m/s로 분다. 습지 위에서 제비 5마리가 빠르게 날아다닌다. 새끼들도 둥지를 떠난 것일까. 그러나 둥지에 새끼 2마리가 아직 있다. 한 마리만 이소한 것일까. 거의 어른 몸집만큼 크게 자란 새끼 두 마리가 둥지 위쪽에 오르기도 하고 둥지 안에서 부리를 크게 벌리고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고도 한다. 어미들은 밖을 날아다니다가 둥지 근처에 와도 새끼에게 먹이를 주지 않는다.
2021년 7월 26일(월) 해가 후끈하다. 기온은 29℃이고 동풍이 2m/s로 분다. 습지 위 물 바로 위로 제비 7마리가 날아다닌다. 주말에 나머지 새끼들도 이소했을까. 그런데 5마리가 아니라 7마리이니 왜 그럴까. 습지 위를 날아다니던 제비들이 둥지 쪽으로 날아간다. 그곳에 가 보니 둥지가 텅 비었고 어린 제비들이 둥지 앞 비가림막 지지대에 앉아 있다. 1차 번식 때 이소한 제비까지 와 있다. 그래서 7마리가 날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어떻게 알았을까. 2차 번식으로 태어난 새끼들이 둥지를 떠나자마자 1차 번식 때 태어난 어린 제비들이 찾아와 합류하다니! 놀랍고, 놀랍다. 어미는 갓 이소한 어린 제비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 1차 번식 때도 이소한 날에 새끼에게 먹이 주는 것을 보았다. 습지 아래쪽에도 제비 8마리가 날아다닌다. 습지 근처에서 번식했으리라. 이곳에서 번식한 7마리까지 최소 15마리가 올해 돌곶이습지를 근거지로 살아가고 있다.
▲ 이소한 새끼 3마리
▲습지 갈대에 앉은 어린 제비
2021년 7월 29일(목) 흐리다. 기온은 28℃이고 남남동풍이 2m/s로 분다. 습지에는 물이 빠졌다. 갈대밭에 어린 제비들이 날아다닌다. 어미와 함께 하늘 높이 날기도 하지만 갈대 바로 위를 낮게 날아다닌다. 습지 근처 건물에서 태어나 둥지를 떠났지만 습지를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물과 먹잇감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새들은 월동지로 돌아가기 전까지 더 힘을 기를 것이다. 동남아시아 먼 곳까지 갈 힘을 기른 뒤에 어미와 올해 1차 번식 때 태어난 어린 새까지 모두 모여 고향을 떠날 것이다. 그러고는 내년 봄에 이곳에 오겠지. 제비가 찾아오면 허양 님이나 박일진 님 같은 분은 다시 제비를 반기며 챙길 것이고, 돌곶이습지는 말없이 제비가 살아가는 터전이 되어 줄 것이다.
* 조병범 gcheoyong@hanmail.net <시민과학자, 새를 관찰하다>(자연과생태, 2020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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