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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정경제백과사전 《예규지(倪圭志)》 번역 출간하다 - 2003년부터《임원경제지》번역 시작, 2023년 총 67권 완간 목표

입력 : 2019-07-08 05:5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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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가정경제백과사전 예규지(倪圭志)번역 출간하다

- 전국 각지의 1,053개 시장을 총 326점의 고지도에 일일이 표시

- 2003년부터임원경제지번역 시작, 2023년 총 67권 완간 목표.

- 파주의 봉일천장, 문산포장, 눌노장, 원기장 등 소개  

 

 


20195월 풍석문화재단과 임원경제연구소가 조선 후기에 실용적인 학문을 추구했던 서유구(徐有榘, 1764~1845)임원경제지 예규지(林園經濟志 倪圭志)(2)를 번역(임원경제연구소 이동인정명현정정기김현진 외) 출간했다. 이 책은 가정경제 백과사전으로서, ‘지출의 조절’, ‘재산 증식’, ‘전국의 생산물’, ‘전국의 시장’, ‘전국 거리표가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이번에 출간된 예규지는 최초의 완역본으로서, 자세한 표점과 교감기가 달린 한문 원문도 대조해서 볼 수 있도록 번역문과 원문을 나란히 편집했다.

예규지또한 이미 출간된상택지와 마찬가지로 정확한 고증을 통해서 전국 각지의 1,053개 시장을 총 326점의 고지도에 일일이 표시했다. 특히 시장의 위치를 최대한 정확히 표시하기 위해서 축적이 큰 광여도(廣輿圖)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각 지도의 숫자는광여도231, 여지도(輿地圖)43,1872년 지방지도33, 대동여지도12, 조선지도2,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1,동여도(東輿圖)1해동지도(海東地圖)1, 안동도회(安東都會)1, 조선팔도지도(朝鮮八道地圖)1점 등이다.

 

당시에 조사된 시장의 숫자는 무려 1,053개나 된다. 조선 시대에 국가 차원의 조사가 아닌, 개인 차원의 조사로서 이토록 전국적 규모로 조사된 예는 이 예규지의 자료가 유일하다. 또한 전국 거리표를 새롭게 일러스트 함은 물론 72점의 사진도 수록하여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노력했다.

 

예규(倪圭)’라는 서명은 장사에 능통했던 춘추 시대의 계예(計倪)와 전국 시대의 백규(白圭)의 상술을 엿본다는 의미다. 서유구는 예규지서문에서 농사를 중시하고 장사를 가볍게 여긴다는 말을 하고 있지만 이는 상대적으로 그렇다는 것이지 장사가 천하다는 것은 아니다.

부모가 굶주리고 추위에 떨어도 알지 못하고 처자식이 아우성쳐도 돌아보지 않고 성리(性理)만을 고상하게 이야기하는 자는 사기》〈화식전을 지은 사마천이 부끄럽게 여길 자라고 질타한다. 돈벌이의 필요성을 역설한 논리다. 이 논리는 성리학이 주된 이념이었던 조선에서 상업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꽤 중요하다. 돈벌이의 추구가 성리학의 세계관을 벗어나려는 시도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식지지술(食之之術)’, 즉 가족을 먹여 살리는 기술을 익혀야 한다는 서유구의 주장은 당시 고루한 사대부들의 사고 구조를 확 뜯어 바꾸고 싶었던 한 지식인의 간절한 절규였다.

 

서유구는 수입과 지출의 계획, 절약하는 법, 음식에 대한 공경 등 가정경제를 지키는 기본자세를 설명하고, 아울러 재산을 축내는 나쁜 습관과 외적인 요소들을 일러준다. 여기에는 도적, 화재, , 세금, 골동품, 저당, 분에 넘치는 집짓기, 빈둥거리는 가족 등이 포함되어 있다.

 

재산 증식장에서는 본격적인 돈벌이를 가르쳐준다. 배와 수레를 이용한 장거리 운송으로 장사하기, 매점매석, 장사 비법, 돈과 재산을 빌려주는 법, 재산의 보관방법, 부동산의 매입과 관리, 사람을 고용하는 법, 재산 증여하는 법도 망라된다.

이 중에서 눈에 띄는 표제어를 몇 개 살펴보자.

 

먹고 살려면 장사해야 한다.

상인은 공정과 성실이 으뜸이다.

속이는 장사는 보탬이 안 된다.

온 빌려줄 때 이자는 적당해야 한다.

돈이나 식량을 너무 많이 빌려주지 말라.

재산을 금은보화의 형태로 보관만 하지 말라.

부동산을 거래할 때는 법대로 하여 후환을 없애야 한다.

채무자 땅을 술책으로 빼앗지 말라.

자손에게 재산을 고루 나눠줘라.

부지런과 검소가 근본이다.

 

번이 왠지 돈 굴릴 방법을 알려줄 것 같지 않은가? 원문을 살펴보자.

 

사람 중에는 형제나 조카들과 함께 살고 있으면서 개인 재산이 유독 많아 재산 분할을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경우 개인 재산으로 금이나 은과 같은 따위를 사서 깊이 감춰둔다. 그런데 이것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다.

만약 10만의 가치를 가진 금이나 은으로 계산해볼 때, 이 재산으로 농지를 구입한 뒤 1년에 거두어들이는 수확량은 반드시 1만은 될 것이다. 이렇게 10여 년이 지나면 이른바 10만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재산이다. 그 나머지 즉 불어난 10만을 집안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해도 이는 모두 이자일 뿐이다.

더욱이 10만에 대한 이자가 또 붙는다. 이것을 전당포에 맡겨 운영하게 한 뒤, 3년이 지나 그 이자가 2배가 되면 이른바 10만은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재산이고, 그 나머지를 집안사람들에게 나누어준다고 해도 이는 모두 이자일 뿐이다. 더욱이 3년이 지나면 그 이자가 다시 2배가 될 것이다.

이렇게 이자가 셀 수 없을 만큼 많아질 텐데 어째서 재산을 상자에 감춰두기만 하고 이 돈으로 이자를 거둬서 많은 사람들을 이롭게 하려 하지 않는가?”

 

재산 관리과정에서 이윤 확대에 대한 논의가 매우 세밀하다. 비록 시대가 변해서 10% 수입까지는 아니더라도 당장 실행해보고 싶은 제안이지 않은가. 그러나 아무리 훌륭한 이론이 있더라도 이를 실행한 구체적인 기술과 정보가 없이는 사상누각일 뿐이다.

 

예규지가 더욱 돋보이는 점은 위와 같은 이론만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국의 생산물 현황을 낱낱이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총론에서는 각 도별로 물산을 개괄하면서 토질, 지리, 인구, 수확량, 주 생업, 부유함 여부, 특산물, 특정 풍속 등을 소개했다. “전국의 생산물의 팔도 각론에서는 경기(39)충청(52)전라(54)경상(71)강원(26)황해(23)평안(42)함경(24) 등 총 331곳의 자연물농산품공산품을 모두 언급했다.

또 각 지역의 시장과 장날은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소개된다.

파주(坡州)의 봉일천장(奉日川場)은 파주 남쪽 30리 조리동면(條里洞面)에서 매달 27이 든 날에 선다. 미곡면포삼베주단생선소금목기옹기사기유기(柳器)자리소가 풍부하다.

문산포장(汶山浦場)은 파주 북쪽 10리 칠정면(七井面)에서 매달 510이 든 날에 선다.

눌노장(訥老場)은 파주 북쪽 30리 파평면(坡平面) 에서 매달 49가 든 날에 선다.

원기장(院基場)은 파주 동쪽 10리 천현면(泉峴面)에서 매달 16이 든 날에 선다.”

 

  

전국 각지의 거리는 아래의 표처럼 48방으로 상세히 정리되어 있다. 서유구는 예규지 서문에서 재화를 증식하려는 자들이 기일에 맞춰 거래를 하고 여정을 계산하여 통행하기를 바라서이다라고 전국 거리표의 목적과 용도를 밝히고 있다. 먼저 앞의 7개 표는 서울에서 가장 먼 곳까지의 거리를 전국 주요 간선과 지선을 연결하여 리() 수로 표기했다. 서울이 시점이고 종점은 의주서수라(경흥)평해부산태백산통영강화 등 7곳이다. 이 표를 바탕으로 장날과 각 지역의 거리를 잘 계산하면, 시간과 힘의 낭비 없이 사고팔고를 반복하며 전국적으로 짜임새 있게 장사를 할 수가 있다.

예를 들어 아래 서북쪽으로 의주까지의 표를 보면 경사(서울)에서 출발하여 신원고양파주장단개성부청석동금천구금천평산차령금교역상차령서흥검수봉산동선령사인암황주구현중화대동강평양을 거쳐, 순안냉정발소순천운암발소안주광릉원대정강가산효성령정주당아령곽산선천동림산성철산서림산성용천곶진강을 지나 압록강 변 서북단에 있는 의주에 갈 수가 있다. 그림을 보면 지금의 지하철 노선도가 연상이 되는 듯하다.

 

서북쪽으로 의주까지의 표

뒤의 표는 도내의 각 읍 사이의 거리를 기록하기 위해 머리행과 머리열에 읍 이름을 같은 순서로 나열한 직사각형 표이다. 예를 들어 충청도 열읍상거리수의 경우, 머리행에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공주청주충주홍주청풍천안괴산…… 순으로 54개 읍을 배열하고, 머리열은 이미 기재된 공주를 제외하고 위에서 아래로 청주충주홍주청풍천안괴산…… 순으로 53개 읍을 배열했다. 5에 수록한 이 거리표만 있다면 팔도 어느 곳에 있든 전국의 장시까지 걸리는 시간을 예측할 수 있으므로, 장사를 하는 사람은 손바닥 들여다보듯이 전국 8도에 대한 이미지를 구성할 수가 있다.

 

▲ 충청도 열읍상거리수

 

  앞서 2009년에 출간된 곡식농사 백과사전본리지(本利志)(3)는 토지제도, 수리, 토질, 농사짓기, 개관과 경작법, 곡식이름 고찰, 농가달력표, 농기구와 관개시설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2에 출간된 개관서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조선 최대의 실용백과사전(1)은 총 1631쪽에 달하는 분량으로, 방대한 임원경제지의 내용을 한 눈에 알아보기 쉽게 정리한 책이다. 여기서는 서유구의 삶과 학문, 판본 소개, 필사본 분석, 해제, 서문, 목차에 대한 설명, 인용문헌 통계, 각종 사진과 삽화를 각 지()별로 수록했다.

2017년에 완간된 건축도구일용품 백과사전섬용지(贍用志)(3)는 건물 짓는 제도, 건물 짓는 재료, 나무하거나 물 긷는 도구, 불로 요리하는 도구, 복식 도구, 몸 씻는 도구와 머리 다듬는 도구, 일상생활에 필요한 도구, 색을 내는 도구, 불 때거나 밝히는 도구, 탈것, 수송 기구, 도량형 도구, 공업 등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8년에 완간된 교양기예 백과사전유예지(遊藝志)(3)는 독서법, 활쏘기 비결, 산법, 글씨, 그림, 방중악보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20193월에 출간된 상택지(相宅志)(1)주거선택 백과사전으로서, ‘집터 살피기’, ‘집 가꾸기’, ‘전국의 명당에 관한 지식들을 담고 있다.

 

▲ 번역된 임원경제지》 표지 

 

                         ▲ 번역된 임원경제지》 표지 

임원경제지2023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67권이다. 여기에는 임원경제지의 전반적인 소개서인 개관서(1)와 용어사전(3)이 포함되어 있다.

 

▲ 전국 거리표를 검토하는 정명헌 소장(왼쪽)과 김현진 연구원


2003년 조선의 백과사전인임원경제지를 완역하자는 정명현 소장의 발심 이래, DYB교육(대표 송오현)의 순수 민간후원으로 번역이 계속되었으며, 이후 한국고전번역원(교육부 예산)과 풍석문화재단(문체부 예산)의 지원이 본격화되면서, 임원경제지의 완역과 출간도 활성화되었다. 그동안의 번역사업과 출간소식은 여러 차례 여론에 회자되었고 많은 국민의 관심을 받고 있다.

2023년에 임원경제지가 완간된다면, 30대부터 젊은 시절을 온통 이 번역 사업에 매달린 정명현 소장, 민철기(선임연구원), 정정기(번역1팀장) 등 연구원들은 총 21년만에 한글로 완역된 조선의 브리태니커를 대한민국에 선보이는 셈이다.

                                   
임원경제연구소 최시남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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