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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다윈의 실수, 그리고 범생설

입력 : 2022-10-05 02: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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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다윈의 실수, 그리고 범생설

 

핏줄은 통상적으로 가족을 뜻하며 혈통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말은 피를 통해서 유전이 이루어진다는 강한 믿음을 보여주며 현대사회에서도 부연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확고하다. 다윈의 시대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윈의 진화론은 우아할 정도로 단순했다. 동물과 식물은 환경이 부양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자손을 낳는다. 그 결과, 한정된 먹이와 생활 공간을 놓고 개체들 사이에 경쟁이 일어난다. 개체들 사이에는 유전 가능한 작은 차이가 있기 때문에 어떤 개체는 다른 개체보다 살아남는 데 더 유리하다. 세대가 지날 때마다 자연 선택은 경쟁자들 중에서 부적응자를 도태시키고, 환경에 잘 적응하는 개체들이 잘 번식하게 한다. 이것은 아주 그럴듯한 이론이었지만 다윈 자신도 인정했듯이 완벽한 이론은 아니었다.” - 초파리, 생물학과 유전학의 역사를 바꾼 숨은 주인공, 마틴부룩스, 갈매나무 출간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1809 ~ 1882)이 진화론을 출간한 해는 1859년이다. 연구 성과에 비해 발표가 자꾸만 늦어진 것은 종교적인 이유로 알려졌다. 창조론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진화론은 위험한 이론이었던 것이다. 다른 한편에선 발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기독교의 창조론이 아무리 무서워도 진화라는 팩트를 영원히 감출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진화가 이론이 되어 서서히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이 무렵 인류학자였던 앨프리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1823 ~ 1913)가 다윈에게 보낸 논문의 내용은 다윈과 같은 결론을 향하고 있었다. 결국 가장 정통한 진화에 대한 연구결과 발표를 미룰 수 없게 된 것이다. 18세기 박물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 진화에 대한 증거들이 쌓여 갔다. 당시의 학자들도 부모의 형질이 자녀에게서 나타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부모의 형질이 섞여서 자식에게 전달된다는 융합유전설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키 작은 부모에게서 키 큰 자식이 태어나는 사례도 왕왕 있어서 혼란스럽기도 했다. 그렇다. ‘염색체’, ‘유전자’, ‘DNA’라는 단어를 빼고 이 현상을 설명해야만 했기 때문에 발생한 현상이다. 다윈의 시대에 이 단어들은 아직 세상에 나오지 않았고, 그들은 너무나 자명해 보이는 진화를 이 단어들을 빼고 설명해야 하는 곤란한 상황에 처한 것이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탄생한 것이 범생설(汎生說, pangenesis)’이다. 피를 통해서 무언가가 유전된다는 것이 그때도 압도적인 상식이었던 것이다.

 

 

 

찰스 다윈의 범생설의 도표. 신체의 모든 부분들은 작은 입자들인 제뮬(gemmule)이 분비되는데, 이들이 생식샘으로 이동하여 수정란과 다음 세대에 기여한다. 이 이론은 용불용설에서 제안된 것처럼 생물체의 일생 동안 신체 변화가 유전될 것이라는 것을 암시했다.- 위키백과

 

 

다윈은 몸의 각 부분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작은 부분(이것을 제뮬 gemmule이라 부른다.)을 만들어 내며, 이것은 혈액에 실려 생식 기관으로 옮겨 간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유성 생식을 통해 양쪽 부모의 제뮬이 합쳐져 자식에게 전달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제뮬이 증식하면서 자신이 유래한 조직과 기관을 완전하게 만들어 낸다고 보았다.” _<초파리> 중에서

 

하지만 이 범생론은 진화를 설명하는 주류의 이론이 되지 못하고 염색체에게 그 자리를 물려줬다. 동료 과학자들의 치열한 검증 때문이다. 그 검증의 칼날을 휘두른 사람은 진화론을 우생학이라는 오욕으로 이끈 프랜시스 골턴이다. 다윈의 외사촌으로 당대의 존경받는 대학자이자 대표적인 인종차별주의자이다. 그때는 우생학, 골상학도 과학이었던 모양이다.

 

“(골턴의) 더욱 놀라운 특징은 강박에 가까울 정도로 거의 모든 것을 계량화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그는 만찬에 초대한 손님들의 의자 밑에 압력 감지기를 설치해 놓고 몸의 움직임을 기록했다. 또한 기도의 효험에 대한 통계적 분석을 시도한 적도 있는데, 기도 횟수가 수명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조사했다.(그는 신앙심이 독실한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일찍 죽는다는 결론을 내려 많은 이들을 안심시켰다) 또한 여러 영국 도시들의 거리에서 자신이 목격한 미인과 보통 여자, 못생긴 여자의 수를 바탕으로 영국 제도의 미인 지도를 만들었다. 그 결과, "미인 점수는 런던이 가장 높고, 애버딘이 가장 낮은 것으로 나왔다.“ _<초파리> 중에서

 

골턴의 기행이 주제가 아니므로 그의 연구 내용만 말하겠다. 대학자인 골턴이 다윈의 범생설을 검증한 방법은 아주 심플했다. 갈색 토끼의 피를 은백색 토끼에게 수혈한 것이다. 다윈의 주장이 맞다면 갈색 토끼의 제뮬이 은백색 토끼에게 전달이 되었으므로 다음 세대의 은백색 토끼들은 갈색 토끼가 나와야 마땅했다. 그러나 실험 결과 골턴의 앞마당에는 은백색 토끼만 넘쳐난 것이다. 서운하게도 다윈의 범생설은 인종차별주의자이자 우생학자였던 골턴에 의해서 무너졌다.

과학과 생물학의 역사는 다윈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혁명적인 이론이다. 지금은 그 누구도 토를 달 수 없으며 생명의 진화는 물론 물질의 진화도 다윈의 진화론을 통해서 설명하려고 하고 있다. 또 인간의 심리마저도 진화를 통해서 설명하는 진화심리학도 태어났다. 그런 혁신의 주인공도 시대의 한계에 발목이 잡히면 범생설 같은 피를 통한 유전을 주장할 수도 있다. 팩트는 언제나 간결, 명확하다, 부모의 형질은 피가 아니라 DNA, 유전자, 염색체에 의해 유전된다. 요즘도 가문이나 백두혈족 같은 핏줄 타령에 연연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한다.

 

 

문발동 쩜오책방 독서클럽 평회원 허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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