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나눔이다> 이상권, 우리네 삶과 시대를 통찰해 표현하는 작가 - 90년대 민중작가로 출발 현재는 다양한 스펙트럼 보여줘
수정 : 2021-12-21 01:41:31
<예술은 나눔이다>
우리네 삶과 시대를 통찰해 표현하는 작가
90년대 민중작가로 출발 현재는 다양한 스펙트럼 보여줘
▲ 생활 260.4×162.2cmacrylic on canvas 2014
그는 춘천출신이다. 그는 홍대미대 회화과를 나왔고 오랫동안 일러스트 작가로 어린이 그림책, 신문 소설 삽화, 광고, 월간지, 교과서등에 그림을 기고해 왔다. 그래서 그를 일러스트 작가로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제 그는 엄연한 중견화가로 화단에서 주목받고 있다.
1995년 인사동 21세기 화랑서 연 그의 첫 전시부터 그의 관심은 민중들과 그들이 사는 시대였다. 그는 1990년대의 거대담론이었던 민중미술의 흐름에 힘을 보탠 충실한 화가였다. 사실적 묘사와 일러스트의 분방한 표현력이 잘 결합된 첫 전시회에 미술계의 관심이 쏟아졌다.
하지만 그는 첫 개인전 이후 무려 17년 동안 침묵했다. “난 내가 늘 작업을 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실구석에 캔버스가 쌓인 것을 보고 이젠 내가 원하는 그림을 그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2009년부터 두 번째 전시를 준비했다”고 긴 전시 간격의 이유를 밝힌다.
▲ 행복한 출근
이제 민중을 넘어선, 그의 일상이야기는 다르다
첫 번째 전시가 우리네 삶을 치열하게 묘사했다면 2012년 이즈 화랑서 열린 두 번째 전시는 그 묘사 속에 해학적인 요소가 가미됐다. 예를 들어 ‘행복한 출근ll’를 보자. 이 그림에선 화려한 벚꽃이 만개한 거리 밑을 어둔 표정들의 사람들이 출근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또 ‘내말은 그게 아니고’란 작품에선 흔히 우리가 술집에서 상대방이 잘 듣지 않아 엉뚱한 답변을 할 때 나오는 대사가 떠오른다. 이렇듯 그의 작품은 보통사람들의 삶을 일상적 현실에서 공감 가는 통찰력으로 묘사하고 있다. 2016년 희수갤러리서 열린 ‘근시·가까이보다’에선 인물을 둘러싼 배경이 넓어지고 인물을 원경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보다 두드러진다.
이 작품의 평론을 쓴 이준기는 “이상권의 일상이야기는 남달랐다, 민중의 시대를 관통한 이상권의 그림에는 민중너머의 민중을 다시 만나고자 하는 열망이 담겨있다”고 적었다. ‘기다리는 사람들3’은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며 하나같이 고개를 떨어뜨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현대군상들이 보이고, ‘성북동 오후 7시’에선 사람들의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거리 곳곳에 인물로 펼쳐져 있는 우리 일상이 롱테이크 기법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2020년 아트파크서 열린 ‘불완전한 풍경’ 전에는 도시와 거리가 사라진 대신 자연풍경으로 대체되어 마치 무릉도원도와 같은 느낌을 연출한다. 원근법이 거의 사라진 이 그림들은 그래서 모든 부분들이 중심이 되는 시각적 낯섦 을 선사한다. 그 낯섬이 유쾌하다. 또 풍부한 계조와 다채로운 컬러, 부드러운 형상미도 조화롭다. 이 작품들에서 가장 중시되는 요소는 길이다. 길로 표현된 작은 소로 이외에도 나무나 바위 산 같은 요소들이 마치 또 다른 길의 표현으로 존재한다.
▲ 숨은 길 찾기 1
▲ 기다리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어떤 길을 가고 있다. 아니라고 했던 것도 길이 될 수 있다.
작가는 “우리는 모두 어떤 길을 걷고 있다. 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곳도 지나고 보면 그게 길이었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많다”고 말한다. 화가 30년 연륜 속에 연금된 그의 깨달음을 느끼게 해주는 말이다. 그는 이제 그의 일부 이미지를 디지털화시켜 SNS시대에 걸맞은 형태로 재생산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이상권은 “나의 관심은 늘 인간이었다. 굳이 구분 해 말하자면 민중시대를 지나 이젠 우리 주변사람들의 이야기와 생각, 그리고 내가 살면서 체득한 어떤 삶의 철학을 담으려고 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늘 진지하게 인간탐구를 게을리 하지 않는 그에게 사진을 찍을 때 웃어보라 했지만 결국 그는 제대로 웃는 흉내를 내지 못했다. 과연 그 답다.
김석종 기자
▲ 이상권 작가
#1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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