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진진 과학이야기 (72) 자아는 우리 안의 어디에 살고 있을까?(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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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과학이야기 (72)
자아는 우리 안의 어디에 살고 있을까?(1)
“왜 우리는 시간과 공간을 관통해 동일한 인격을 지속할 수 있는가?”
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실험실>이라는 책의 핵심적인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배움과 성장을 통해서 성숙하거나, 병들고 노쇠해지면서도 변함없이 ‘나’라고 불리는 인격은 지속된다. 그 변화 속에서도 나라는 인격을 지속시키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그 존재는 우리 안의 어디쯤에 존재하고 있을까? 우리는 이미 뇌에서 ‘브로카’라고 불리는 영역이 존재하고 이 영역이 무너지면 유창하게 말하는 능력이 상실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베르니케’라는 영역의 뇌가 무너지면 더 이상 언어를 이해할 수 없게 된다는 사실도 알고 있다. 이처럼 우리 뇌의 어딘가에 자아가 살고 있을 것이라는 상상은 당연하기도 하다. 이런 의심은 병리 현상을 연구하면서 자연스럽게 밝혀졌는데, ‘자아’와는 다르지만 일단 인격이 존재하는 영역 역시 우연한 사고를 통해서 밝혀진다. 그곳은 전전두엽이었다. 이곳은 자아가 있을 법한 가장 유력한 곳이기도 하다.
▲ 피니어스 게이지(Phineas Gage, 1823년~1860년), 철도감독관
1848년, 피어니스 게이지는 미국의 버몬트 주의 캐번디시 인근의 철도공사 감독관(십장)이어었다. 그해 어느 날, 화약 사고로 6Kg의 쇠못이 그의 왼쪽 전전두엽을 파괴했다. 기적적으로 살아난 그는 건강한 모습으로 12주 만에 퇴원한다. 다시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신체는 이상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회복된 게이지는 성격 뿐 아니라 사회적 행동을 통제하는 능력 면에서도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다. 사고가 나기 전에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사람이었던 그는 사고 뒤에는 전혀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앞으로의 일을 계획하지도 못했으며 혼자 알아서 적절히 무언가를 하지도 못했다. 그는 남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일에도 무책임했다. 또 행동 중에서 선택하라고 하면 어느 쪽이 가장 적절할지 결정을 할 수가 없었다.” -에릭 캔들, <통찰의 시대> 436쪽
다마지오 부부는 라마찬드란 박사와 함께 유명한 신경과학자로 피어니스 게이지의 사례와 비슷한 E.V.R.(인권을 위해 보통 약자로 부른다)이라는 환자를 연구했다. 그는 노련한 회계사인데 질병으로 인해 전전두엽의 배쪽 영역이 손상된 환자였다. 그는 수술 후에도 변함없이 지능지수가 높았지만 더 이상 예전처럼 유능하고 믿을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신뢰할 수 없는 사람이 되었고, 개인 생활도 엉망이 되었다. 게다가 놀랍도록 비정상적인 행동을 보이곤 했다. 피부의 전극을 부착하고 검사를 해보니, 무서운 사진이나 성적인 사진에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고 한다. 조리있게 추론을 할 수는 있었지만 인지적 추론과 감정을 적절하게 연결짓지 못한 것이다. 충격적이게도 감정과 인지는 한 몸으로 움직여야만 정상적인 사회적 판단이 가능했던 것이다. 이 연구의 결론은 전전두엽이 편도체와 원활하게 소통을 해야만 도덕적인 판단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E.V.R.과 피어니스 게이지는 사고를 통해서 편도체(변연계)와의 연결을 상실했다. 그 결과 인격의 심각한 변화를 가져왔던 것이다. 즉 전전두엽의 일부가 파괴되면서 인격의 파괴를 동반했다. 그렇다고 자아가 무너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자아는 어디에 있을까?
교하도서관 독서클럽 <책벗> 회원 허 심(독서클럽에 관한 문의 : 문발동 <발전소책방.5>. 이정은 010-2270-6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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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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