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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재의 디지털 성범죄 이야기(3) 그루밍 성범죄

입력 : 2021-12-21 06:31:24
수정 : 2021-12-21 06:35:22

정연재의 디지털 성범죄 이야기

세 번째 그루밍 성범죄

 

안녕.” “몇 살이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A에 대한 그루밍은 그렇게 시작됐다.

초등학생 A는 어려운 가정 형편에 돈을 벌어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했다.

학생, 돈 버는 방법이라는 트위터 일탈계정을 살폈다. 프로필에 나이와 닉네임이 적혀 있었다. 그대로 따라 했더니 팔로어가 한두 명씩 늘었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로 인기가 있었다.팔로워의 조언대로 계정을 운영하면 그들은 온갖 칭찬과 기프티콘을 보내 주며 기프티콘의 유효기간까지 알려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한 달가량 지나자 몸 사진을 올려보라는 메시지들이 왔다. 기프티콘도 받았으니 그 정도는 해야 할 것 같았다. 관심을 잃기 싫어서 그들이 올려달라고 하는 노출 사진을 올렸다. 거듭되는 요구에 사진을 올리면 칭찬과 함께 기프티콘을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노출 사진을 올리기 시작하자 팔로가 20명에서 1천 명 단위까지 늘었다. 이들 중 일부는 A에게 DM으로 연락을 하며 계정을 더 많이 만들 것을 요구했다. 그러면 더 예뻐해 준다는 명분이었다 본 계정이 차단되면 새로운 계정을 알리지 않았는데도 그들은 알아서 잘들 찾아왔다. 계정 하나를 만드는 데 30초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여성의 나체사진과 함께 날라 온 DMA는 멘붕이 왔다. 신상을 퍼뜨리겠다는 협박과 함께 몸 사진을 찍어 보내라는 거였다. 그 후로도 그는 답변제한 시간을 정해놓고 이를 어기면 모르는 남성들이 있는 곳으로 A를 보내 폭행하고 성범죄를 저질렀다.협박은 원치 않는 성행위로 이어졌다. 이 모든 과정은 사진이나 영상으로 촬영됐다. 그의 아이디를 차단해도 그는 남자들을 보냈다. 차단과 해제를 몇 차례 반복하자 그는 A의 이름과 나이, , 연락처와 사진과 영상을 한 인터넷 사이트에 퍼뜨렸다. 발신자 제한 번호로 전화가 폭주했다.

트위터 계정을 만든 뒤 4년 동안 낯선 이들은 협박과 미끼 던지기를 멈추지 않았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겪었을 때 자신을 외면했던 어른들을 경험한 A는 무조건 혼자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의 나이 11~14살에 일어났던 일들이다. 왕따와 디지털성착취, 자해, 가출, 조건만남. 끝날 것 같지 않은 지옥 같은 나날은 경찰이 부모에게 연락해 A의 휴대전화가

사라지면서 일단 막을 내렸다. A가 경험한 피해는 SNS나 채팅 앱 같은 온라인상에서 그루밍으로 시작해 성착취 사진·영상을 찍어 전송하도록 요구받고 그 사진·영상을 빌미로 개인정보 유포·협박으로 이어지는, 최근의 디지털성착취와 같은 구조를 띤다. n번방의 시초인 갓갓이 텔레그램을 통해 다른 남성에게 미성년자를 성폭행하도록 지시했던 것처럼, 온라인 성착취는 오프라인의 성폭행·성매매로 옮겨간다.

아동·청소년의 디지털성착취 구조에서 그루밍을 주목하는 건, 그것이 시작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아동과 신뢰관계를 쌓기 유리한 지위에 있는 면식 관계에서 주로 그루밍이 이뤄졌지만, 최근엔 비면식 관계에 있는 성인들이 온라인상에서 성적 목적을 품고 아동·청소년에게 접근하는 일이 늘어나고 있다. 과거엔 가해자가 그루밍 범죄를 저지르려면 집 밖으로 나가서 아동을 만나야 했다면, 최근엔 시간과 공간의 제약 없이 집 안에 앉아서 언제든지 손쉽게 아동에게 접근이 가능해졌다는 뜻이다. 온라인 그루밍을 당한 피해자들은 피해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는 경우가 많다. A도 만남을 거부하면 집에 불을 지르겠다는 협박을 당하고, 개인정보가 인터넷상에 뿌려지는 피해를 입었으면서도 자신을 피해자라고 규정하지 않는다. 트위터 앱을 깔았으니까, 계정을 만들었으니까, A는 이 모든 피해를 자신 탓으로 돌렸다.

언뜻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성착취에 응하는 것처럼 보이는데다, 피해자 스스로 자신이 학대당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탓이다.

A가 겪은 성착취 피해는 그 과정마다 미국의 법정신의학박사 마이클 웰너가 분석한 그루밍 6단계와 겹친다. 사전적 의미로 몸을 치장하는 것을 뜻하는 그루밍은, 성폭력 사건에서 아동·청소년에게 성착취 목적으로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가해자의 행위를 말한다. 마이클 웰너는 그루밍 과정을 아동의 취약성(경제적 이유, 관심 등)을 토대로 피해자를 골라(1단계) 신뢰를 쌓고(2단계), 그의 욕구를 충족해(3단계) 특별한 관계를 형성하며, 아동을 고립시켜(4단계) 관계를 성적으로 변환해(5단계) 통제를 유지(6단계)하는 것으로 설명한다. 피해자가 자발적으로 착취에 응하는 것처럼 보이기에 본인도 사회도 피해자라고 인식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동의한 것처럼 보이는 그루밍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까닭에 질타의 방향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에게 꽂히기 일쑤다. 2018년 가을, 경찰의 연락으로 A가 일탈계를 운영하고 성매매한 사실을 알게 된 부모는 어떻게 일탈계를 운영하게 됐는지, 온라인에서 어떤 피해를 당했는지 A에게 묻지 않았다. 딸이 자발적으로 온라인에 몸 사진을 올렸다는 것만을 부끄러워했다. 그저 동네에 소문이 나지 않도록 다른 지역 경찰서에서 조사받기 원했고, 이 사건을 묻어두기 바랐다. 경찰 조사를 받은 뒤 가족 누구도 이 사건을 언급하지 않았다.

A의 가족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살고 있다.

 

한국사이버대응센터의 ‘2020년 피해상담통계에 따르면, 온라인 그루밍 피해자 10명 중 8(78.6%)10대였다. ‘메신저가 온라인 그루밍의 주요 통로다. 메신저의 비중은 201926.8%에서 202061.1%로 크게 늘었다.

온라인 그루밍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상당 부분 예방할 수 있다. 각 포털의 최소한의 모니터링과 규제 조치와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10대 청소년들이 온라인 그루밍을 알고, 이를 범죄로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큰 예방 효과를 낼 수 있다.

 

 

디지털성범죄예방전문가 정연재

 

#131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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