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9) 사교육 대신 노후준비

---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9) 사교육 대신 노후준비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대학이 블랙홀이다. 대한민국에서 모든 길은 서울로 통하듯 대한민국 교육은 ‘인 서울 대학’으로 향하는 신작로 위에 있다. 초·중·고등학교 단계별 교육목적 같은 것은 이제 없다. 블랙홀 입구는 언제나 수많은 인파로 붐비는 병목이 되고 여러 가지 혁신적 교육활동은 여기서 멈춘다. 블랙홀은 대학의 서열을 따라 미로로 바뀐다. 수능이라는 병목을 통과하고 서열 높은 코스를 누가 먼저 잡느냐 하는 것이 생존의 비법이다. 좀 더 찬란한 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통행권을 확보해야 하고 우선통행권을 확보하는 우월전략이 사교육 활용법이다. 사교육은 국민 모두에게 주어지는 공통의 교육 기회에 ‘플러스 자구책’의 측면이 크지만, 국민 일반뿐 아니라 선택한 부모나 학생에게도 심각한 고통을 주고 있다. 개념도 명확하지 않은 사교육의 주술 속에 나라가 춤추고 있다. 오죽하면 입시경쟁과 사교육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을 꿈꾸는 시민단체까지 등장했겠는가?

 

 

사교육이란 공교육과 대치되는 개념으로 보통 학교교육을 제외한 모든 교육을 말한다. 대표적인 것이 가정교육과 사회교육이지만, 우리가 문제적 개념으로 사용하는 사교육은 입시 관련 과외 및 학원교육을 일컫는다. 정부가 해마다 작성하는 사교육비 통계도 학원, 개인과외, 그룹과외, 방문학습지, 인터넷 및 통신강좌 등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사교육과 관련하여 우리가 주목하는 문제는 크게 공교육과의 관계 또는 영향력, 사교육의 효과성, 사교육비 부담 세 가지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정부는 지금까지 사교육을 공교육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고 공교육을 보호하고 사교육을 규제하려는 정책을 집행해오고 있다. 1980년 7·30 교육개혁조치의 하나인 과외전면금지정책이 대표적인데, 이후에도 ‘학교교육 정상화’, ‘공교육 정상화’ 또는 ‘사교육비 경감대책’이라는 명목으로 EBS 수능강의 서비스(2004), 수시적 행정지도 등 사교육 팽창을 억제하려는 정책을 폈다. 그러나 국민들은 사교육을 공교육의 보완재 또는 대체제로 인식하고 이를 적극 활용함으로써 정부의 의도를 무력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참여하든 좀 더 유리한 기회를 포착하기 위해 능동적으로 참여하든 누구 할 것 없이 사교육은 국민의 일상생활의 한 조건이 되었다. 이제 사교육은 시장에서 수세적인 역할을 넘어 거대한 상장기업이 되었고, 입시제도가 어떻게 변하든지 학습코칭, 학습코디네이터, 생활기록부 기재 대응, 정시 및 수시 학종 등 대입전략 컨설팅을 주도하여 자기 시장을 키울 만큼 독자적인 세력이 되었다. ‘공교육 정상화법’(2014)에서 선행교육을 금지하자 학원은 오히려 선행교육을 파고듦으로써 공부는 학원에서 하고 잠은 학교에서 자는 행태를 만들어 내기도 하였다. 학교는 학원처럼 입시기관이 아니기 때문에 학원과 경쟁할 대상이 되지 못하며, 교육을 입시로만 생각하는 학부모가 존재하는 한 사교육 시장은 멈춰 세울 수 없다.

둘째로, 사교육의 효과성인데, 여기에는 정반대의 주장이 있다. 학원 보내는 부모가 바보냐며 성적향상에 도움이 된다는 입장과, 시간·비용 대비 효과가 없는 공포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있다. 경험적으로 보면 ‘학원발’을 받는 학생들이 있고 ‘학원발’이 오래 가지 않는 학생들도 있다. 초등학교나 중학교 때는 효과를 보다가 고등학교에 와서 빛을 잃는 학생들이 있다. 속칭 강남의 ‘돼지엄마’들은 사교육의 효과성을 입증한다. 반면, 학원을 참여관찰한 결과, 학교성적 향상에 초점을 맞춘 학원의 철저한 반복학습은 오히려 올바른 지식습득에 방해가 되며, 투자한 시간, 노력, 비용에 비해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김희삼(KDI, 2011)의 연구에 의하면, 학년이 올라갈수록 사교육 시간 및 비용 투자의 성적향상 효과는 줄어든다, 사교육 시간과 성적은 비례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과도한 사교육은 효과성이 낮으며, 있더라도 단기적이다, 받지 않아도 성적이 좋을 아이들이 사교육을 받아 성적이 좋아진 것으로 보이는 착시효과가 있다, 사교육보다 자기주도학습이 수능에 효과가 더 높다. ‘돼지엄마’들의 성공담이나, 주식시장에서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메가스터디 같은 교육기업에 몰려드는 인파들을 보면 사교육의 효과가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다만 사교육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 단순히 대신 읽고 대신 생각해 주고 ‘쌈빡하게’ 머리에 집어넣어 주기까지 하는 ‘일타강사’의 문제풀이식 공부를 넘어 자기 공부가 결합한 방식이 아니면 ‘배움’과 교육효과는 없을 것이다. ‘생각’ 없이 공부의 절대량에만 의존하는 반복학습이 아니라, 자발적 학습계획과 실행을 점검하고 스스로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기른다면 학교나 학원 어디에 있든 상관없이 학습에서 성공할 것이다.

셋째로, 사교육이 문제가 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는 국민의 경제적 부담 때문이다. 2001년 약 10조 정도 되던 사교육비 총규모가 2007년에 20조로 증가하고, 이후 20조 안팎을 오르내리고 있다. 통계청(2020. 3.10)에 의하면 2019년 사교육비 총액은 약 21조원이었다. 이는 대략 공교육비의 1/3수준으로 전년도 대비 7.8% 증가한 수치다. 사교육 참여율은 74.8%, 주당 참여 시간은 6.5시간, 전체 학생의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2만 1천원, 참여 학생 1인당 사교육비는 42만 9천원, 고등학교 참여 학생의 사교육비는 59만 9천원, 고등학교 3학년 참여 학생은 62만 9천원이었다. 일반교과에 참여하는 학생의 경우 영어 21만 3천원, 수학 19만 1천으로 영어, 수학의 비용이 높았다. 사교육의 목적은 일반교과의 경우, 학교수업보충(48.5%), 선행학습(22.9%), 진학준비(15.8%) 순이었고, 예체능의 경우 취미교양 및 재능계발(58.6%) 보육 및 기타(15.6%)순으로 비중이 높았다. 예체능의 경우 친구를 사귀거나 보육을 위해서라는 항목이 24.3%가 되는 것이 눈에 띈다. 사교육 참여율은 월평균 소득 700-800 만원대에서 87.0%로 가장 높고, 200만원 미만에서 47.0%로 가장 낮으며, 교육비는 각각 46만 4천원과 10만 4천원이었다. 참여율 85.1%인 800만원 이상 대에서는 53만 9천원으로 교육비가 가장 높았고, 사교육비 증가율은 소득 700-800만원 대 9.7%, 소득 800만원 대 이상 6.6%, 200만원 미만에서 0.5%로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교육비 금액과 참여율이 높아지고 소득이 낮을수록 금액과 비율이 낮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구의 소득수준이 높을수록, 학생의 성적이 높을수록, 자녀 수가 적을수록, 지역별로 보면 수도권일수록 참여율과 교육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소득이 낮은 계층에서도 반 이상이 사교육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학부모의 사교육 압박감의 강도를 느낄 수 있다. 다른 통계에 의하면,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의 사교육비는 일반계 고등학교의 거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종합해 보면 입시에 대한 사교육 효과는 경제적 상층부와 고성적군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 잉여를 가지고 사교육에 투자하는 사람들과 생활비를 쪼개어 사교육에 투자하는 사람들의 회수율은 명백하게 다른 것이다. 사교육에 대한 좀 더 중요한 질문은 입시에 대한 효과가 아니라, 급격한 기술변화에 따라 달라질 미래사회 준비에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것이어야 할 것이다. 인류의 존망이 걸려 있는 코로나 사태에서도 주식과 부동산 시장에 불붙은 머니게임과 마찬가지로, 영업이 금지된 상태에서도 숨을 곳을 찾아다니는 사교육 시장은 자본의 각축장이다. 사교육이 한국적 교육불평등을 부추기고 있다. 사교육을 받을 수 없는 학생들과, 받아도 별 효과를 얻지 못하는 부모들의 심리적 교육적 열패감을 돌아보아야 한다.

바야흐로 중간숙련 직업들이 소멸하게 되면서 서열이 높은 몇 개의 대학을 제외한 일반대학 졸업생의 실제 편익이 발생하지 않는 기술변화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가진 자들과의 머니게임에서 승산이 없다면 차라리 발을 빼라. 약자의 전략이다. 선수가 빠지면 게임은 성립하지 않는다. 대신 공교육 개선을 위해 투쟁하라. 입시에서 왜 공교육은 사교육을 이기지 못하냐고 다그칠 게 아니라, 학교는 ‘4차산업혁명 시대’ 급진적 기술변화에 대비하여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질문하라. 이를 위한 교육 인프라 구축을 위해 공교육비 증액과 학급당 학생 수 감축을 요구하라. 학습보충을 강화하고 입시제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개선하도록 학교와 정부에 압력을 가하라. 눈앞의 일자리는 흔들리고 노년 빈곤이 예정된 시대에 공연한 불안 심리로 사교육에 발목 잡히면 자칫 중년의 꿈은 도로徒勞가 되고 당신의 노후는 돌이킬 수 없다. 돈도 잃고 노후마저 잃을 수 있다. 자식에 대한 과잉 염려나 기대를 접고 자신의 노후를 위해 국민연금이나 퇴직연금에 사교육비를 투자하는 것이 오히려 자식들의 짐을 덜어주는 길이다. 춤판 한가운데 있으면 홀 안의 움직임을 알 수 없다. ‘발코니에 올라’ 거리를 두어야 판의 흐름을 바로 볼 수 있다.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