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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7) 수능시험은 폐지되어야 한다

입력 : 2020-12-02 09:36:31
수정 : 2020-12-03 05:45:00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7) 수능시험은 폐지되어야 한다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오늘은 수능일이다. 수험생들과 학부모들은 지난 3년 동안의 긴장과 불안에 대항하고 총력 집중하여 하루를 견딜 것이다. 교육청의 주요 관계자들은 자기 업무를 제쳐 두고 시험지 보안으로 밤을 지새워 종일 쏟아지는 졸음과 하품에 시달릴 것이고, 전국의 시험장 학교는 행여 있을지 모르는 시험 과정의 오류와 아침까지 별 탈 없던 방송이 혹시라도 갑자기 꺼질지 몰라 전전긍긍할 것이다. 교사들이 감독으로 대거 차출된 중·고등학교들은 문을 닫을 것이고, 그 밖의 공공기관과 회사들은 출근 시간을 10시로 늦출 것이다.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소음을 유발하는 일체의 공사가 중단될 것이며, 심지어 비행기도 이착륙 시간을 조정할 것이다. 기도발이 세기로 유명한 전국의 명산대찰은 엎드린 인파로 넘치고, 교회와 성당의 촛불도 새벽부터 저녁 때까지 길게 이어질 것이다. 유명 사찰을 찾아갈 수 없는 필부필녀들의 소원은 엿가락이 되어 시험장 교문에 붙어 눈부시게 빛날지 모를 일이다. 시험이 끝났다고 해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오답 시비는 나타날 것이고 난이도에 대한 논쟁 또한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시험이 끝나고 나면 시험을 망친 학생들의 비극적인 소식을 또 들을까 학교는 노심초사할 것이고, 코로나 사태 속에서 수험표 마케팅 전략에 따른 소비 진작 후과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시험 결과에 실망한 학부모들은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해 파행된 학사운영에 대한 비난을 쏟아낼 것이고, 전국의 고3 교실은 수능 이후의 생활지도로 골머리를 앓게 될 것이다. 감독 교사들과 수험생들이 다 들어오면 교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교문 밖을 내다보는 심정은 착잡하다. 전국의 거의 모든 기관의 기능을 하루 동안 정지시키고 대학입학시험을 치르는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있을까? 이런 시험제도를 언제까지 계속 유지해야 할까? 대학교육에 대한 맹목성과 함께 수능시험은 수행하는 기능 이상으로 물신화되어 있다. ‘방 안의 코끼리.

 

수능시험은 원래 대학교육에 필요한 수학 능력의 측정으로 선발의 공정성과 객관성 확보 고등학교 교육과정의 내용과 수준에 맞는 출제로 고등학교 교육의 정상화 기여 개별 교과의 특성을 바탕으로 신뢰도와 타당도를 갖춘 시험으로 공정성과 객관성 높은 대입 전형자료 제공”(www.suneung.re.kr.)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과연 수능시험은 이러한 목적 가치를 충분히 실현하고 있는가? 선발의 변별력 말고 공정성을 담보하는가? 수능으로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되고 있는가?

 

<대한민국의 시험> 저자 이혜정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수능시험제도는 실패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첫째, 수능은 5지 선다형 문항이다. 이로 인해 본질은 단순 객관식이면서 암기형이라는 비판을 피하려다 보니 문제가 이중 삼중 사중으로 꼬이고 비틀려 있다. 선택지의 유사성 가운데 미묘한 차이를 찾아내는 것이 우수한 능력으로 평가받는다. 창의적 사고력과는 관계가 없다. 둘째, 적용할 공식이나 이론이 전제되고 특정한 조건이 주어져 있는 상황에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셋째, 시험 문제는 외부로부터 철저히 차단된 채 해결해야 한다. 넷째, 답이 하나로 정해져 있고 실수와 실패를 허용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수능은 상대적으로 공정한 시험제도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교육부는 여론의 지지로 2023년까지 서울 주요 16개 대학의 수능 비율을 40%까지 올리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른바 대입 공정성 확대 방안이다. 학생부종합전형(학종)의 비교과 영역에는 부모 등 외부 배경이 동원될 가능성이 있으나, 수능은 본인의 노력에 따라 성적이 나오는 것이므로 보다 객관적이고 공정하다는 것이 근거다. 이러한 여론은 60년대, 70년대 중반생인, 지금 입시생 부모들의 자수성가식 입시성공 경험에 기반한 것으로 볼 수 있으나, 중산층이 세습되고 있는 현재 상황에서 사교육을 포함한 입시생들의 학습 기회를 고려하면 수능성적이 탈계급적이고 공정하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성공한 부모들의 영향으로 특목고나 자사고에 진학한 자녀들은 수능 고득점자가 될 가능성이 높다. 엄격히 말하면 학종과 수능 사이의 공정성 시비는 일반 학생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상류층과 중상류층 간의 계급적 충돌로, 다분히 강남권 학부모를 의식한 것이다. 정시가 재수생의 리그라는 것, n수가 사교육의 토대 위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정시가 공정하다는 말을 할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허위의식에 빠져 있다.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 누구의 문제인지, 무엇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모른다.

수험생의 시험 부담 경감을 위해 도입한 EBS 연계 70% 출제의 문제도 넌센스다. 수능이라는 국가시험제도를 유지하기 위한 고육책이며 고등학교 교육 정상화에 대한 역행일 뿐 아니라 결과적으로 전국의 고등학교를 EBS에 예속시키는 코메디 같은 제도이다. 이런 억지를 동원하면서까지 수능제도를 유지해야 할지 의문이다. 공정성 확보와 기회균등이라는 명분에 의해서 시험의 목적 타당성을 희생시킬 수는 없다.

 

무엇보다 수능시험을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는 수능을 통해서 대학에 입학하는 학생 수가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수능으로 대학을 가는 학생이 별로 많지 않다. 따라서 수능의 가성비를 따져보아야 한다. 전국 규모 시험의 실시로 인한 엄청난 경비, 시간, 수고, 시험 불안, 우울증 등 경제적, 정서적 소모에 비해 현실적인 쓸모가 얼마나 되는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요 대학의 입학정원의 40%를 수능성적으로 뽑는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수능으로 진학하는 비율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불합격자를 고려하더라도 이용률은 20% 남짓이다(도시는 이보다 다소 높고 농촌은 이보다 아주 낮다). 나머지 학생들은 성적 상위층 학생들의 등급 설정에 자신을 깔아주는 역할을 하고, 일반계 고등학교는 수능으로 진학하는 특목고나 자사고의 들러리 역할을 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2025년부터(경기도는 2022) 고교학점제가 실시된다. 고교학점제는 학생의 진로 적성을 고려한 과목 선택권 강화, 입시 중심에서 학생 성장 중심으로, 수직적 서열화 체계를 수평적 다양화된 체계로 전환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위해 수업, 평가의 개선, 대입제도의 개선 등을 연계 추진하고자 하나, 현행 수능시험 방식을 유지하게 된다면 학생의 교과 선택권은 점수 따기 좋은 과목의 선택으로, 수업과 평가는 기대와 달리 주입 암기식에 벗어날 수 없게 되어 고교학점제의 근본 취지를 한 번 더 왜곡 변질시킬 가능성이 있다. 시험제도 최상단의 수능시험이 교육 효과를 측정하는 본래 목적에서 벗어나 교육내용과 학습과 수업 방법을 규정하기 때문이다. 평가방식을 찔끔찔끔 개선하기보다 평가의 프레임을 다시 짜야 한다. 초등학교와 중학교까지 퍼진 수업 혁신은 고등학교 교문 앞에 멈춰있다. 일부 고등학교에서 이룬 수업 개선의 성과는 입시제도 앞에서 쭈뼛거리고 있다. 현행과 같은 수능시험제도로는 고등학교의 교수법과 교육과정과 교육내용을 혁신해낼 수 없다.

 

일본은 대학입시센터시험을 폐지하고 IB로 전환하고 있다. IB 교육과정으로 창의성과 집단과정 학습의 효용성을 도모하려는 것이다. IB 교육과정은 전체 교육의 과정을 리셋하는 것이기 때문에 적응과정에서 단기적인 혼란을 불러올 수 있다. 공정성 측면에서도 논란이 있을 수 있다. 수능을 대체할 시험제도가 꼭 IB이어야 한다고 하는 것은 아니다. 독일의 아비투어(Abitur) 같은 고등학교 졸업시험과, 대학별 입시 같은 단순 트랙도 고려해볼 필요가 있다. 입시는 원래 대학의 일이지 않은가? 대학을 못 믿겠다고? 자율성 보장과 함께 감사와 지원제도를 강화하면 된다. 입시가 어떻게 바뀌든 사교육의 영향은 약화되지 않을 것이다. 사교육을 활용하여 자녀의 입시를 기획하고 준비할 수 있는 계급의 존재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므로, 시험제도로 사교육을 잡겠다는 허망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은 사교육을 억제하기보다는 공적, 사적으로 교육 기회를 충분히 누릴 수 없는 계층에게 결손의 보완조치를 해주는 일이다. 통계청 조사에 의하면, 대학진학률은 200883.8%를 정점으로 201768.9%대로 하강하기 시작했다. 많은 돈을 들이고도 회수율이 낮은 생산성 없는 고등교육을 거부하고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학생 수도 급감하고 있다. 앉아서 학생 고객을 받을 수 없는 시대가 오면 대학이 변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대학의 문이 널리 열려 있으면 사교육 시장도 조정될 것이다. IB, 또는 전국의 혁신학교에서 시도하고 결실을 맺고 있는 혁신적인 수업 활동이 고등학교에 도입되고 일반화된다면 진학자뿐 아니라 비진학자, 등급이 낮은 대학의 학생들에게도 4차산업혁명 시대, 미래 시대의 삶의 방법과 기술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수능은 1994년에 도입되어 약 30년 동안 유지된 오래된 입시제도이다. 그동안 세상은 많이 변했고, 급변하는 시대가 대안을 요청하고 있다. 수능시험은 방 안의 코끼리인가? 아니면 집단적 허위의식인가? 어느 것이라도 드러내지 않으면 깨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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