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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5) 혁신학교와 학교자치

입력 : 2020-11-19 08:15:02
수정 : 2020-11-19 08:17:55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5) 혁신학교와 학교자치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혁신학교가 실험학교는 아니지만, 몇 가지 실험적 조건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학교인 것은 맞다. 바로 자율학교라는 법적 성격이며, 대표적인 것이 교육과정 구성권과 인사권의 제한적 자율성이다. 여기에 민주적 의사결정의 자율권을 포함하면 일반 학교에 비교해 소박한 수준이나마 학교자치의 조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학교자치라는 말은 최근에 와서 많이 쓰이는 대중적인 용어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그 개념과 범위에 대한 합의는 없는 실정이다. 교육행정을 지방자치단체의 하부 사무 기능으로 보는 다른 나라와 달리,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을 내세워 전문적 교육자치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지방교육청의 독립성을 보장할 뿐 교육자치의 본질인 교육에 대한 주민 통제와 학교와 교원의 자율성 보장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동시에 받고 있다.

교육을 지방자치단체의 하부 기능으로 보는 외국의 교육자치 이론을 세심하게 구별하지 않고 사용하다 보니 학교자치에 대한 학문적 개념의 혼란이 일어난다. 외국에서는 대부분 학교가 하나의 자치 단위로 인정되며 권한의 주체는 학교운영위원회다. 교사와 교장의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채용과 해고, 교육과정 결정을 주관한다. 다만 학교운영위원회의 구성과 운영을 어떻게 할지는 나라마다 주마다 학교마다 차이가 있다. 학교운영위원회는 교사와 학부모와 주민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구성의 비율과 운영의 방식은 학교마다 다르다. 교사 중심의 전문가주의로 갈 것인지 학부모나 납세자인 주민의 지역(또는 민중) 통제가 더 강화될 것인지는 나라와 지역마다 다르다. 우리처럼 지방교육청이 교사와 교장을 채용하고 몇 년 단위의 순환 근무를 하게 하는 학교체제와는 근본적으로 달라서 외국의 이론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미국에서 한때 학교책임경영제도(school based management, SBM)라는 것이 교육학에서 유행했던 때가 있다. 1990년대에 미국에서 크게 연구되고 2000년 전후로 우리나라에 소개되기 시작한 SBM은 교직원 인사, 학생행정 및 활동, 교육과정, 시설·설비, 재정관리의 영역 안에서 자치의 원리, 효과성의 원리, 개성화의 원리에 따라 학교를 경영하고 온전한 책무성을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 요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보다 한 발 더 나간 것이 헌장학교(charter school)인데, 미국식의 지방자치제도와 학교자치를 전제로 한 이러한 경영학 이론을 물적, 행정적 토대가 다른 우리나라에 도입하려고 한 시도는 크게 성공하지 못했다. SBM을 도입하려고 시도한 학자들과 교육연구기관의 기대와는 달리, 성공할 수 없었던 것은 이러한 경영기법을 우리 교장들이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그러한 것들을 실행할 수 있는 실질적인 권한도 없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학교문화도 형성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2019년부터 각 교육청은 앞다투어 학교자치 조례를 만들고 학교자치의 정신과 내용을 전파하기에 한창이다. 내용을 살펴보면 학교의 각종 문제에 대한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을 강조하는 것이 핵심이다. 법적, 제도적 정비와 확장 없이 지금까지 강조해 왔던 학교민주주의 정책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자치의 핵심이 분권이라면 학교가 분권의 주체가 되어야 하는 것은 맞다. 다만 분권이 정치적 수사修辭가 되지 않으려면 학교 단위의 자치권에 대한 법적 권리가 확보되어야 한다. 또한 지방자치가 단체자치의 의미를 넘어 시민적 참여의 통로가 확대되는 것이 옳다면, 시민이 참여하는 자치의 주체로서 지역주민, 학부모, 교사, 학생의 교육권에 대한 명확한 선언과 참여권을 보장하는 방법을 구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또한 학교자치의 영역과 범위를 명확히 해야 한다. 흔히 학교자치의 하위 영역으로 정치·행정의 자주성, 교육과정 결정의 자주성, 재정의 자주성, 인사의 자주성이 거론되고 있으나 범위와 정도에 대해서는 나라마다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 실정에 맞는 범위와 한계를 정하는 것이 필요한 것이다. 이념형과 현실태가 항상 같지는 않다. 학교자치의 이념형은 제시할 수 있으나,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구체적인 상황이 달라 나라마다 달리 반영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학교자치의 모습은 2009년 혁신학교가 도입되면서 나타나기 시작했다. 200913개로 시작한 혁신학교는 20202학기 현재 초등학교 468, 중학교 246, 고등학교 87, 801교가 되었고 이제 경기도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가고 있다. 지정된 혁신학교가 모두 성공적인 것은 아니다. 잘 되는 학교가 있고 더디게 진행되는 혁신학교가 있는데, 그 차이는 학교자치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구현해냈는가에 달려있다. 잘 되는 혁신학교는 법이 보장하는 20%범위 내에서 지역적 여건과 학교의 필요성과 구성원의 욕구에 따라 교육과정 편제를 편성하고 또 그 안에서 최대한으로 교과 교육과정을 재구성하여 그 학교만의 특색있는 교육과정을 구성하였다. 이 과정에서 때로는 이견과 갈등을 드러냈으나, 드러난 갈등을 해결하면서 큰 틀의 합의를 끌어내는 학교의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결과 중심의 총괄평가 체제에서 벗어나 성장 지향적인 과정 중심적 평가제도로 시험제도를 개혁했다. 혁신학교 성공의 원인으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제도가 교장공모제도이다. 교장공모제도가 완벽한 선이라는 것도 아니고 공모교장들이 모두 기대한 대로 업무를 수행했다고 볼 수도 없지만, 새로운 학교문화 조성과 민주적인 학교체제를 만들어가는데 크게 기여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성공한 대부분의 혁신학교에는 자격증 유무와 관계없이 개방된 공모교장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모교장제도는 교장의 임명권이 학교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교장의 선출권을 학교 구성원들에게 돌려줌으로써 부분적이나마 자치적 인사권을 어느 정도 실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도 학교자치 능력이 있는 학교는 학교 실정에 맞게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순발력 있게 대응함으로써 재난위기에 따른 중앙집권적 행정이 아니라 작은 단위의 자치의 필요성을 증명했다.

혁신학교 10년의 성과는 이제 혁신학교를 넘어 전반적인 교육혁신을 위한 독립된 프로젝트로 성장해 나가고 있다. 지역사회와의 협업은 마을교육공동체로, 권한위임과 자율경영체제는 학교민주주의로, 창의적인 교육과정 운영은 교육과정 재구성과 과정 중심의 성장형 평가체제, 교육과정-수업-평가-기록(교수평기)의 일체화라는 순환적 교육과정 모형의 완성으로 진화해가고 있으며, 이런 교육 프로젝트는 전국화되어 가고 있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성과들은 제한적인 형태지만 학교자치의 공간이 열렸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혁신학교에서 이룬 이러한 성과를 일반 학교로 파급하기 위해서는 일반 학교에서 학교자치의 범위를 넓혀갈 필요가 있다. 점차 공모제도와 기회가 확대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선 학교에서 인식 부족과 업무 과잉, 이로 인한 몸사림으로 학교 인사권의 긍정적 확대로 볼 수 있는 교장공모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것은 아쉬움이 큰 부분이다. 자치제도가 관료적 행정지배를 막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면 평교사들에게도 기회를 주는 내부형 공모제의 문을 더 열어줄 필요도 있다. 학교자치가 교장자치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학교 안의 민주적 의사결정체제와 집단지성의 문화조성도 필요하다. 학교의 민주적 통제를 위해 도입된 학교운영위원회의 학부모와 교사, 지역주민의 구성 비율이 적절한지도 다시 검토되어야 하며, 그 기능과 권한의 확대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다. 학교자치가 민주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가져오는가에 대한 비판적 점검과 함께, 무엇보다 학교자치가 누구에게 이로울까 하는 개인별, 집단별 이해관계의 관점이 아니라, 공익과 교육적 정의의 차원에서 학교자치의 확대와 실현 방법을 논의하는 열린 자세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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