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0) ‘혁신학교’의 교육사적 의미
수정 : 0000-00-00 00:00:00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30) ‘혁신학교’의 교육사적 의미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2009년 2학기에 경기도 13개 학교에서 처음 시작된 ‘혁신학교’는 이제 지역을 넘어 전국적인 학교개혁 모델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전국 각 지방 교육청에서 시행하고 있는 행복더학기학교, 행복학교, 빛고을혁신학교, 서울형혁신학교, 세종혁신학교, 창의인재씨앗학교, 부산다행복학교, 서로나눔학교, 행복배움학교, 무지개학교, 다혼디배움학교, 행복나눔학교, 행복씨앗학교들은 이름만 다른 ‘혁신학교’들이다.
김상곤 경기도교육감 공약으로 시작된 ‘혁신학교’는 출발 당시 교육과정 다양화·특성화, 전문적 학습공동체 형성, 교수학습공동체 중심의 운영 시스템 구축, 생산적인 학교문화 형성, 대외협력 참여확대, 권한위임체제 구축을 6대 중점 추진과제로 설정하였다. 그 후 10여 년 동안 몇 차례 변경과정을 거쳐 민주적인 학교운영체제, 윤리적 생활공동체, 전문적 학습공동체, 창의적 교육과정을 4대 중점과제로 추구하고 있다.
혁신학교 정책은 우리 현대 교육사에서 매우 보기 드문 특징적이고 의미 있는 정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첫째, 혁신학교 정책은 대한민국 역사 최초로 공공성公共性에 기초한 개혁조치이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 교육의 성격은 국가주의에서 시장주의로 전환되었지만, ‘잘 살아보세’라는 경제주의가 핵심이었다. 국가 주도 개발경제에서 민간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로 이양되었을 뿐 교육의 기본은 개인성의 소멸에 바탕을 둔 경제주의적 국가 동원체제라고 할 수 있었다. 일반 국민들도 인간 형성이라는 교육의 기본적인 목적보다는 자녀의 입신출세라는 목적에 집중하다 보니 민주시민 양성이라는 교육의 공공성은 자리 잡을 수 없게 되었다. 혁신학교는 이러한 국가와 국민 개인의 비교육적 목적을 바로 잡고 교육의 목적을 공공성에 둔 정책이다. 둘째, 혁신학교는 모든 국민과 학생을 품고 보듬으려는 포용적 교육정책이다. 90년대 후반 이후 등장한 ‘학교붕괴현상’에 대해서 이명박 정부는 다수의 학생을 포기하고, “똑똑한 놈 한 명이 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이건희식 신자유주의 인재관에 바탕을 둔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와 같은 교육 수월성 정책을 시행하게 된다. 이후 정부는 똑똑한 한 명을 키우기 위해 자사고와 자공고를 설립하여 예산을 집중 투자하여 육성하게 되지만, 혁신학교 정책은 특별한 소수를 위한 수월성 정책에 반대하며 모두를 위한 공공성의 원리에 의하여 학교가 운영되어야 할 것을 천명한다. 2009년 초기 13개의 혁신학교는 교육환경이 열악한 지역의 학교에서 시작되었다. 셋째, 혁신학교 정책은 지금까지의 교육개혁 방식과는 달리, 중앙정부가 아니라 지방교육자치단체에 의한 교육개혁 조치라는 특징이 있다. 지금까지 모든 교육개혁은 교육부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부 산하에 교육개혁 관련 위원회를 만들고 이 위원회의 주도로 여러 가지 교육개혁 조치가 이루어져 왔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문민정부 산하의 교육개혁위원회에 의한 5·31교육개혁안으로 지금까지도 각종의 교육정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혁신학교 정책은 지금까지의 탑다운top down 방식에서 바톰업bottom up 또는 바톰투바톰bottom to bottom 방식으로 경기도의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경기도교육청에서 다른 지방 교육청으로 퍼져가고 있다. 넷째. 혁신학교 정책이 자생적이라는 것도 또 하나의 중요한 특징이다. 혁신학교 정책은 외국의 개혁학교 모델이나 외국학자의 이론에 모방하지 않고, 경기도 일부 초등학교와 대안학교에서 축적된 성공적인 교육경험이 전파되어 일반화되고 다시 이것들이 정책으로 형성되어 도내의 여러 학교로 다시 전파되는 방식의 발전 경향을 보이고 있다. 미국의 차터스쿨charter school과 비교하는 일부의 소리가 있지만, 혁신학교는 그것과는 성격이 아주 다르다. 다섯째, 한 교육자치단체의 성과가 다른 지자체로 자연스럽게 퍼져나간 전국적 정책이라는 점도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서울시교육청에서 새물결운동이라는 것이 있었고 전국적인 열린교육정책도 있었지만 한 지역에서 또는 한 동안만 유행하다 끝났지만, 10년이 넘게, 그리고 전국적인 단위로 이루어지는 혁신학교 정책은 매우 드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여섯째, 혁신학교 정책은 정책과 운동이 결합된 독특한 성격을 띄고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이른바 학교붕괴현상이라고 일컫는 전대미문의 교육위기 상황에서 교육을 되살리려는 선생님들이 전국에 있었고, 그들의 노력으로 성공한 작은 학교들과 대안학교들이 있었다. 이 선생님들과 작은 학교들이 공교육의 혁신학교 모델이 되었으며, 마침 자리 잡은 지방자치제와 성숙한 정치의식의 신장으로 생각 있는 교육감들의 당선되면서 현실적인 힘을 가지게 되었다.
혁신학교에서 수고하는 선생님들은 단순히 정책 수행자라는 입장에서 벗어나 내 학생과 내 학교를 변화시키고 교육을 개혁하려는 운동가의 입장에서 오늘도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있다. 박토에 씨를 뿌리며 남모르는 눈물을 흘리고 헌신했던 소수의 교육경험이 경기도에서 정책적인 현실체가 되어 지금은 전국으로 도도한 강물처럼 흐르고 있다.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