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16>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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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16>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함의
작가 전종호
[가벼운 풀씨가 되어도 좋겠습니다] 저자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민주시민교육 분야에서 매우 중요한 참고자료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일반인은 물론 현장 교사들에게도 아직은 매우 생소한 내용이다. 합의의 전체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그 논의 과정과 정신을 이해하는 사람들이 매우 드문 상황이기 때문에 전문을 소개하고 내용에 대한 설명과 합의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 무엇인가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전문은 아래와 같다.
보이텔스바흐 전문가 토론회는 각각의 입장을 분명히 하며 합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이었다. 실제 어떤 합의를, 예를 들어 교육과정과 같은 형식으로 도출해야 한다는 의무가 주어졌던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여기에서는 저자 자신의 주관적인 인상에 따라 가능하다고 생각한 합의, 즉 롤프 슈미더러, 쿠르트 게르하르트 피셔, 헤르만 기제커, 디터 그로써, 베른하르트 주토 그리고 클라우스 호르눙에 이르는 다양한 학문 이론적, 정치적, 정치교수법적 입장들 간의 합의를 정리한 것이다, 이론의 여지가 없었던 것으로 보인 것은 정치교육의 세 가지 기본원칙이다.
1. 강압·교화 금지. 어떤 수단이든 학생에게 바람직한 견해라는 의미로 제압하여 자립적인 판단 획득을 방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 바로 여기에 정치교육과 교화간의 경계가 있다. 교화는 민주사회에서 교사가 할 일이 아니며, 일반적으로 수용되고 있는 학생의 성숙이라는 목표에도 부합하지 않는다.
2. 학문과 정치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나타나야 한다. 이 요청은 첫 번째 원칙과 밀접히 관련된다. 그 이유는 다양한 입장들이 무시되고, 선택 가능성이 은폐되며, 대안들이 논의되지 않는 것이 바로 교화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제기될 수 있는 문제는 교사가 교정기능을 가져야 하는가, 즉 교사가 학생들에게, 그리고 정치교육 행사의 다른 참여자들에게 그들의 정치적, 사회적 배경 측면에서 낮선 입장과 대안들을 특별히 강조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두 번째 기본원칙을 확인해보면, 교사의 개인적 입장이나 학문 이론적 근원 그리고 자신의 개인적 의견이 비교적 중요하지 않는 이유가 분명해진다. 앞서 언급한 예를 다시 생각해보면, 교사의 민주주의 이해가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그와 반대되는 다른 견해들도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3. 학생은 정치적 상황과 자신의 이해 상황을 분석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이해관계의 의미에서 현실 정치적 상황에 영향을 미치는 방법과 수단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한 목표 설정은 두 가지 원칙의 논리적 귀결로서 실제 활동적 능력에 대한 상당한 강조를 포함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간혹 헤르만 기제커와 롤프 슈미데러에 반대하며, 내용을 수정할 필요가 없는 형식으로 귀환이라는 비난은, 여기서 찾고자 하는 것이 최대합의가 아니라 최소합의라는 면에서 맞지 않다.
위의 문서 형식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것은 국가나 자치단체의 정책이나 협약이 아니다. 바덴-뷔르템베르그 주 정치교육원의 지그프리트 쉴레의 주재로 보이텔스바흐라는 작은 도시에서 1976년 11월 19∼20일 이틀 동안 좌우의 대표적인 정치교육학자를 초청하여 개최한 토론회의 내용을 한스 게오르크 뵐링이 1년 동안 숙고하고 검토하여 ‘짧고 쉽게, 개념적이고, 실용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 보이스텔바흐 합의에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정치적 무관심, 비관여 등 정치와의 분리와 배제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초당파적, 균형적’ 시각의 ‘포괄과 종합’이라는 적극적 의미로 해석한다(출처 : 머니투데이 그래픽)
우선 합의에서 규정된 첫 번째 원칙은 ‘강압·교화 금지 원칙’으로 세뇌화 금지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는 개인의 존엄을 유념해야 하고, 명백한 제압과 교화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세련된 형태의 제압도 금지하는 일종의 명령적 요청이다. “인간의 존엄은 침해될 수 없다. 이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이다”는 독일 헌법 제1조1항에 기초한 것으로서 주체로서의 학생에 대한 인정과 존중 그리고 자주적 판단 형성의 의미에서 학생의 성숙을 위해서 교사가 자신의 세계관적, 정치적 입장을 교화 및 세뇌화 목적에서 강제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 원칙은 ‘논쟁성 원칙’으로 ‘의견 불일치에 대한 합의’로 이해되며, 다양한 입장들이 무시되고 선택 가능성과 대안들이 논의되지 않으면 교화에 빠지게 된다고 본다. 즉 사실에 근거하여 본질적이고 중심적인 다양한 정치적 학문적 의견과 관점들을 제시하여 정치적, 사회적 사실과 결정들이 단순한 흑백논리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과정에 실제로는 다양한 갈등과 의견의 불일치가 존재하며, 학생들이 직접 이러한 이견들의 내용과 차이를 경험하고 분석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교사의 전문성과 자주성’과 ‘교육의 중립성’이다. 독일에서는 정치체제와 제도에 대한 지식의 전달자로의 소극적인 역할을 넘어 학생의 자주적 판단 형성의 촉진자로서의 교사의 역할을 강조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정치적 무관심, 비관여 등 정치와의 분리와 배제라는 소극적 의미가 아니라 ‘초당파적, 균형적’ 시각의 ‘포괄과 종합’이라는 적극적 의미로 해석한다. 정치·사회 현안에 대한 다중관점과 다원주의적 민주주의 사회의 정당성 의미들이 논쟁성 원칙에서 함께 이해될 수 있는, 교육방식과 관련된 원칙이다. 셋째, 학생이해 중심이라는 원칙은 교육의 목표와 결과와 관련된 것으로 성숙과 학생의 자주적 판단 형성에 집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 나치즘 체제하에서 교육이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동원된 것은 정치 상황에 대한 국민의 자주적 판단의 결핍으로 이해하기 때문에 이를 재현하지 않는 것이 교육의 임무라고 보고, 정치상황과 자신의 이해관계 상황 분석 능력과 자주적 참여 능력을 강조한다(김혜정, 2018).
사실 우리가 보이텔스바흐 합의에서 배워야 할 더 중요한 것은 천명된 원칙의 내용보다는 합의에 이르는 논의 과정과 학계와 교사, 국민에게 수용되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보이텔스바흐 토론회는 ‘초당파적’, ‘균형적’인 관점을 내세워 좌파에서 우파까지 대립적인 정치적 스펙트럼을 가진 학자인 롤프 슈미더러(좌파), 쿠르트 게르하르트 피셔(중도 좌파), 헤르만 기제커(중도 좌파), 디터 그로써(중도), 베른하르트 주토(중도 우파) 클라우스 호르눙(우파)이 참여하여 다양하고 다층적인 의견이 개진되고 토론되었다. 둘째, 여기에서 발제되고 토론한 내용을 뵐링이 참여관찰의 형식으로 기록하고 검토하여 토론자의 관점을 분석해서 ‘최대합의’가 아니라 ‘최소합의’ 수준으로 토론회 보고서를 정리하였다. 셋째, 뵐링에 의해 정리된 ‘정치교육 수업의 기본원칙’은 참가 교수들의 이견 제시 없이 ‘형식 없는 의견일치’를 이루었고 1980년 이후로 자발적이고 자생적인 경로를 통해 정치교육학자와 교사들 사이에 빠르게 수용되었으며, 현재 독일 정치교육 이론의 핵심으로, 모든 학교의 정치 및 역사교육의 기본 원칙으로 적용되고 있다. 넷째, 바덴-뷔르템베르그 주 정치교육원은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계기로 이후로 2∼4년마다 수업과 관련하여 보이텔스바흐 합의 원칙들을 구체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하는 ‘보이텔스바흐 대화’라는 후속 토론회를 계속적으로 조직해오고 있으며 2018년까지 총 15회 개최하였다. 다섯째, 국가 주도의 합의와 행정적인 명령이 아니라 관련 학계와 교사에 의해 자발적으로 수용되고 전파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가만히 있으라’라는 식의 체제 순응교육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2015년 역사 교과서 국정화 추진 과정에서의 대립과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프레임으로 학계와 언론을 중심으로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집중적인 주목을 받았다. 학생의 ‘자립적인 역사적 사유 능력의 획득’을 목표로 ‘다원적 관점’의 역사교육방법론과 ‘학생중심’의 독일 역사교육을 참고로 하여 보이텔스바흐 합의 원칙의 적용과 실천의 관련성을 탐색하는 등 노력을 하였으나 역사교육과 수업에 적용한 실천적 사례나 연구가 크게 진전되지는 못했다. 사드 배치를 계기로 ‘계기교육’의 방법론을 탐색하던 몇 개의 교원단체 토론회에서 보이텔스바흐 합의 원칙에 입각한 ‘논쟁식 교육’이 언급된 이후, 서울시, 경기도, 경남교육청에서 관련 학자들 중심의 정책연구가 진행되었고 그 결과 ‘논쟁수업’, ‘토론수업’의 수업모델이 현장에 보급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교육부가 아니라 교육청으로 주체만 바뀐 이러한 탑다운 방식의 수업모델 보급은 그 명분의 정당성을 떠나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정신과 방식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이해와 동의 없이는 학교현장에서의 수용가능성과 지속성에서도 효과를 의심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양한 관점을 가진 학자와 교사들이 참여하여 한국판 보이텔스바흐 합의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권의 반성과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정치권은 각성된 정치교육을 원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므로 난망한 일이긴 하다. 그다음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교사 양성 단계에서부터 정규 교육과정에 편성하여 보이텔스바흐 합의에 대한 학습과 교양을 넓히는 것이다. 그리고 교사 현직교육에서도 꾸준히 이 합의의 정신과 내용, 구체적인 실현 방법 등을 탐구하도록 하여 저변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가는 것이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학교민주주의를 통한 학교운영으로 학교 내 대립과 갈등을 민주적으로 해결하는 경험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행정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과 세련된 기술이 요구된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외국의 교육사조와 새로운 이론들이 충분한 사전 검토 없이 우리 학교를 실험실로 삼는 일이 되풀이 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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