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전종호의 교육컬럼 풀씨 <12> 굴종의 삶의 떨치고

입력 : 2020-05-21 09:27:56
수정 : 2020-05-21 09:33:38

전종호의 교육컬럼 풀씨 <12>

굴종의 삶의 떨치고

 

전종호(작가)

 

80년대까지 교직의 중심적인 정서는 억압과 굴종이었다. 나치즘 이후 최고의 파시즘 체제라고 평가받는 박정희·전두환 시대는 사회와 함께 교육을 병영식으로 통치하였다. 교육부-교육청-교장으로 이어지는 국가명령체제가 구축되었고 교사는 교장의 명을 받아 교육하는 교육행정의 말단이었다.

 

5.31 교육개혁 실태 진단 토론회 <자료사진>  
 

교육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국가교육과정은 교육행정의 전유물로 교사의 참여도, 교사에 의한 교육과정의 재구성도 법률에 의하여 금지되었다. 군사과목과 이데올로기(비판) 교육이 도입되었고 학도호국단 같은 준군사조직이 편성되었다. 교사들은 유신과 정권 홍보를 위해 동원되었다.

교사들은 날마다 출근부에 도장을 찍고 아침마다 직원조회에 참여하여 대통령 지시사항과 정부시책을 받아 적어 교실의 학생에게 퍼 날라야 했으며, 교수학습과정 지도안은 정기적으로 점검을 받아야 했고 심지어 교사의 수첩도 때로는 점검의 대상이 되었다. 등교하는 아침마다 학생들의 두발과 복장은 점검되었고 어기는 학생들은 군대식의 제재를 받아야 했으며, 이렇게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강요된 강압적 권위주의적 행정체계와 훈육체계는 공식적인 학교문화가 되었다. 교사와 교육의 자율권이라는 말은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았다.

 

876월 시민혁명과 함께 시대와 정권에 반기를 들고 억압에 맞선 교사들은 굴종의 삶을 떨쳐 반교육의 벽 부수고 침묵의 교단을 딛고서교원노동조합을 설립하여 일어섰다. <참교육의 함성으로>의 첫 구절에 삽입된 교사들의 각오는 성적 지상주의와 입시교육, 권위주의로 대표되는 교육체계에 저항하였고, 무기력과 안일주의라는 교사문화를 개선하였으며, 교직과 공직에 일상화된 촌지문화를 혁파하였다. 교육민주화의 제단에 1527명의 해직교사와 십 수 명의 해직 사망자가 희생 제물로 받쳐졌다. 시인 이광웅의 절규처럼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목숨을 걸고>)’ 했던 시절이었다.

2000년대를 전후로 하여 불안의 광풍이 교육계에 휘몰아쳐 왔다.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권위주의 체제의 몰락 후유증과 IMF 사태, 그리고 세기말적 현상이었다. 이른바 학교붕괴현상이다. 아이들은 대놓고 교실에서 잠을 잤고, 수업시간에도 제 자리에 앉아 있지 않고 돌아다녔으며, 교사들의 지도에도 거리낌 없이 왜요?” 하고 덤비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교사와 학생의 교육적 관계는 단절되었고 번 아웃되는 교사들과 이로 인해 정신과 치료를 받는 교사들이 늘어났다.

 

이런 드러난 현상의 기저에는 5·31교육개혁이 있었다. 획기적인 조치들이 포함된 이 개혁안은 해방 이후 최대의 개혁안으로 긍정적 평가도 받았지만 한마디로 자본의 신자유주의적 교육재편이라고 할 수 있다. 현실사회주의 체제가 몰락하면서 전일적 세계지배를 확보한 자본주의는 지속적인 자본축적을 강화하고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위한 교육재편을 시도하였고, 이러한 세계적인 동향과 함께 권위주의 체제에서 양성된 인력들이 세계화, 정보화된 세계에서 기능하지 못하는 교육의 후진성을 노출하면서 우리나라에서도 국가와 자본의 상호 필요성에 따라 교육재편을 추진한 것이 531교육개혁이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교육의 언어는 시장의 언어로 대체되었다. 교사와 학생·학부모의 관계는 공급자와 수요자가 되었고 교육은 서비스로서 선택권과 바우처를 통해 거래할 수 있게 되었다. 교사의 정년은 과감히 잘라졌고 비정규직(기간제) 교사의 숫자가 거침없이 늘었으며, 성과급을 도입하여 교사들을 경쟁체제로 몰아넣었다. 자리를 잡아가던 평준화 정책을 깨고 고교 다양화 정책이라는 이름으로 자사고, 자공고, 영재고와 같은 인재선별정책을 추진했고 차별주의적 교육관을 가진 언론과 일부 학부모들은 환호했다. 시장자본주의에 맞지 않는 국정 국사 교과서 사건 같은 이념교육이 돌출적으로 시도되기도 하였다. 교사들은 약간의 교육적 자율성을 얻었으나 고용 불안과 학생 지도의 불안, 정체성의 혼란과 화난 소비자 학부모들의 민원에 시달리며 불안에 떠는 처지가 되었다.

광포한 국가주의교육과 냉철한 시장주의교육의 파고를 넘어 온 우리 교육계에는 현재 대표적인 지배 정서로 불신이 자리 잡고 있다. 언론과 야권은 교원노조의 정치성과 선명성을 끊임없이 흔들었고, 4·19 이후 여러 차례 실패한 끝에 어렵게 획득한 교원노조의 합법성은 팩스 한 장에 날아갔다. 한 편으로는 교육부재와 혼란의 시대에 참교육은 어디 갔느냐는 교사집단의 강력한 역할 부재에 대한 국민들의 강력한 비판도 동시에 존재한다. 교원들의 선도적 정치투쟁에 대한 기우와 견제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교육내용의 민주화 요구가 동시에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학교교육과정이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적합한가, 우리 학교는 변화하는 대학입시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있는가, 교사들은 왜 수요자인 학부모에게 이렇게 불친절하고 거만한가 등등 불신의 대상과 범위는 교육의 모든 영역에 널리 퍼지고 있다. 한 때 국가발전의 배경으로 칭송받던 우리 교육이 불신의 대상이 된 이유는 무엇일까? 민주화로 인한 학부모의 권리의식과 소비 주권자로서의 선택권 강화, 시대 변화에 대한 교육계의 비탄력적인 둔감성, 태권도 학원부터 각종 학원까지 친절하고 치밀한 교육 서비스에 익숙해진 소비자인 학부모들이 느끼는 학교와 교사의 불친절성, 전문가 권위 위기 시대에 <브리꼴레르>가 되지 못하는 교사의 게으름까지 열거되는 이유는 참으로 많기도 하다.

그러나 알고 보면 교사들은 학교붕괴시대를 넘어 우리 교육의 새로운 진로를 치열하게 고민해 왔다. 이러한 모색의 결과가 진보 교육감의 등장과 함께 2009년부터 시작되어 경기도를 넘어 전국으로 퍼지고 있는 혁신교육이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은 늘 아프고 힘들다. 교사들의 마음은 쓰레기통이 되어가고 닳고 닳아 너덜너덜 해지고 있다. 2020520, 대법원은 전교조의 노조 무력화의 적법성에 대한 공개변론을 시작했다. 국가의 불법행위가 바로 잡히기를 기대한다. 억압과 굴종과 불안을 넘어 교사의 자존감과 자부심을 지켜주고, 불신을 거두어 교사에 대한 신뢰 유지와 협력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육과 내 아이를 살리는 길이다.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