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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8> n번방의 비밀

입력 : 2020-05-01 10:35:14
수정 : 2020-05-01 10:38:13

전종호의 교육칼럼 풀씨 <8> n번방의 비밀

 

전종호(작가)

 

처음 들었을 때 ‘7번방의 선물같은 영화 이야기인줄 알았다. 1부터 시작해서 증가하는 미지수의 숫자를 상징하는 n. 사이버 상의 수없이 많은 방에서 성 착취물이 제작되고 판매되고 유통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사례의 광범위성에 놀랐고, 보도된 바, 범죄의 잔인함과 대담성에 또 놀랐다. 얼굴이 공개된 후 또 하나의 충격은 범죄자의 어린 나이와 평범한 얼굴 때문이었다. 악의 평범성이라고나 할까 그는 악마도 아니고 괴물도 아니고 특별한 존재도 아니었다. 피해자들이나 공범들 중에 어린 학생들이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라의 성문화는 철저히 이중적이다. 앞으로는 쉬쉬하면서 뒤로는 무질서할 정도로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변하지 않았다. 성에 대한 이중성은 이중규범주의에서 비롯되었다. 이중규범주의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윤리의식이며, 상황에 따라 다른 윤리 기준을 적용하는 한국인의 문화적 문법이다(정수복, 2007). 이중규범주의는 절대적 가치판단 기준을 보편적으로 적용하기 보다는 겉으로는 보편적 기준을 내세우고 뒤로는 개별적 사적 기준을 적용하는 문화적 풍토를 말한다.

성에 대한 이중성과 남성들의 일방적 쾌락주의는 세대를 거치면서 청소년 세대에 학습된 것으로 보인다. 잡지나 화보를 훔쳐보던 청소년들의 관음증은 인터넷상의 동영상을 시청하는 소극적 수준으로 이행되고, 일부는 음란물을 넘어 성 착취물을 제작하여 유포하는 범죄 수준으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서 어른들은 무서운 요즘 10에 혀를 끌끌 차고 있지만, 청소년들은 기성세대에 만연한 남성연대와 강간문화가 교실에서 일상화되면서 벌어진 결과라고 주장한다(한겨레, 2020. 4.13.). 기성세대가 원인을 제공해 놓고 청소년을 나무란다고 서로 삿대질하고 있지만, 남성 중심 성문화와 여성성에 대한 일방주의는 공유하고 있다.

 

 

성교육이 학교의 공식적 교육과정에서 배제되는 동안, 그리고 성교육이 학교 교육과정 안에서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하는 동안 학교는 그리고 교실은 폭력을 내면화하는 공간이었다. 다 그렇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남학생들은 성적 욕망을 분출할 수 있지만 여학생들은 숨기고 쉬쉬해야만 했다. 성에 대해 말하는 것조차 남학생들은 허용되지만 여학생들에게는 금기가 되었다. 남학생들의 짓궂은 장난은 통크게 이해되었지만 여학생들의 항의는 몰이해로 치부되고, 여교사까지 포함하여 여성의 외모에 대한 품평은 남학생들에게는 그 나이에 그럴 수도 있는 일로 관대하게 용서되었다. 여학생들 얼굴이 누드와 합성된 딥페이크가 은근히 단톡방에서 유통되고 학교의 울타리를 넘어 돌아다니다가 문제가 되는 일이 빈번하게 벌어졌다.

이러한 한국의 성문화의 이중성을 혁파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올바른 성교육임에도 불구하고 학교의 성교육은 체계적이기 보다는 대증적이고 분절적으로 이루어졌다. 체험활동에서 이수해야 하는 필수 단위요 통과의례였다. 2015년 교육부가 마련한 <국가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교육내용의 종합성에도 불구하고 생식중심, 금욕주의 강조, 성적 권리 침해, 성 차별 및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수준으로 퇴보했다는 평가를 받고 중단된 상태다. 국제 인권법 사회규약권은 제13조 교육권 조항에 기반한 포괄적 성교육을 권고하고 있다. 2018 유네스코 성교육 가이드인 포괄적 성교육(CSE, Comprehensive Sexuality Education)은 아동(청소년)들이 자신의 능력을 높일 수 있는 지식, 기술, 태도, 가치를 갖추도록 섹슈얼리티에 대한 인지적, 정서적, 신체적 사회적 측면에서 배우는 커리큘럼 기반 교육과정으로, 8가지 핵심개념을 중심의 분야별, 연령별, 가치별로 구성되어 있다. 사회의 만연한 성범죄와 지도적 인물들의 계속적인 성폭력 문제는 성에 대한 소극적이고 방어적인 전통적 관점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 성교육을 교육이 아니라 전쟁처럼 치러야 하는 이 나라에서 성인지 감수성과 성별 혐오를 극복하는 인권교육을 함께 다루는 포괄적인 성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루어져야 고질적인 이중적인 성문화를 전복시킬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어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장소에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하면서 아이들이 놀고 있었고, 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어른들은 뻔히 눈을 뜨고도 아무 것도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참담하다. 우리가 인식하는 이상으로 학교는 자본주의에 물들어 있었다. 성적 음란물을 돌려보는 수준을 훨씬 넘어 학생이 기존의 음란물을 대여 유포하면서 비용을 청구·지불하거나, 성인들과 함께 성 착취 영상물을 교환하면서 경제적 이익추구 행위를 하고 있었다. 학교는 자본주의 체제에 편입할 준비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 생활공간에서 이미 자본주의적 경제 행위의 영업장인 되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또한 학교의 문화지체현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어른들은 정보기술 측면에서 청소년들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고 있는 텔레그램이나 다크웹 등의 sns, 거래 수단이 되는 암호 화폐 등의 기술이 아이들의 삶에서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2020.4.23.)을 발표하였다. 성 착취물의 제작행위 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고 판매 행위의 형량을 확대하며, 디지털 성 범죄물을 소지하거나 구매하는 행위도 처벌하고 온라인 그루밍 처벌을 신설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처벌에 대한 요구는 끝이 없고 목소리는 한 없이 높지만, 사후 처벌로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터널 출구에서의 엄격한 검열과 처벌보다는 입구에서의 올바른 교육이 훨씬 바람직하다. 투입 비용도 훨씬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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