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종호 교육칼럼 풀씨> (7) 슬픔을 아우르는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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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호 교육칼럼 풀씨> (7) 슬픔을 아우르는 교육
전종호(작가)
4월에서 6월까지 슬픈 날이 참 많다. 4·3부터 6·25까지. 그 사이에 4·9, 4·16, 4·19, 5·16, 5·18, 6·10이 끼어 있다. 국가폭력, 국가무능, 민주화, 이념갈등, 전쟁 등의 이유로 발단한 사건들이다. 그로 인하여 대한민국은 한 발 뒤로 물러나거나 한 발 더 나아가면서 지금까지 오고 있으나, 우리는 이 굵직한 사건의 이면에서 눈물 흘리며 슬퍼하는 개인들의 존재를 잊거나, 관심을 가지고 이들을 지켜보며 따뜻하게 보듬는 일을 등한시하며 살아왔다.
슬픔은 고통, 상실에서 오는 감정이다. 고통과 상실은 개인적인 것도 있고, 집단적이고 국가적인 것도 있다. 어떤 측면에서든지 고통과 상실을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없고, 따라서 살면서 슬픔을 가지지 않고 사는 사람은 없는 법이어서 각자의 슬픔을 잘 다루고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고 공감해 주는 일이야말로 삶을 잘 살아가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국가적 재난과 폭력이나 희생에서 발생한 일은 더욱 그러하다.
그런데 고통과 슬픔을 심리학이 아니라 사회학적으로 보면 생각해 볼 일이 더 많다. 우선 사람들의 집단적 고통에 대한 반응방식이다.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피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하고 고통이 자신을 피해 가는 경우 안심하고 더 이상 개입하지 않으려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느끼고 자기 책임인 것처럼 함께 울며 고통을 분담하려 한다. 드물지만 또 어떤 사람들은 남의 고통을 자신과 철저히 분리하고 나아가 남의 고통으로부터 이익이나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도 있다. 국가적인 재난으로 고통과 슬픔을 당하고 있는 사람의 상처를 후벼 파면서 소금을 뿌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다음으로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수용하는 방식의 문제이다. 슬픔의 이해는 선천적인 것인가, 사회화 또는 교육의 영향으로 후천적 것인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타인의 고통과 슬픔을 선천적으로 수용하고 함께 아파한다고 믿지만, 폭력성과 의도성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만한 사건의 슬픔은 문학이나 예술의 범주를 넘어 제도적인 틀 속에서 교육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홀로코스트의 야만성을 잊지 않고 국가교육의 틀 안에서 기억하려는 독일의 정치교육에서 배워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정치교육(민주시민교육)은 민주시민을 양성하는 교육이다. 민주시민은 단순히 민주주의 제도를 이해하거나 선거에 참여하는 인간 이상의 사람이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하거나 나아가 그것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편취하려는 사람이 아니라, 공동의 목적을 협동적인 방식으로 인간적 예의, 공정성, 존중, 공감과 관용 등의 가치를 내면화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으려 노력하고, 그럼에도 발생한 공동의 고통과 슬픔을 나누고 해결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민주시민교육은 사회 구성원의 고통과 슬픔을 이해하고 아우르는 교육이다.
4월에서 6월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아프고 쓰라린 사건들이 일어난 날들이 많은 달이다. 미군정 지배 하에서 일어난 이념갈등 속에서 이념과 관계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한라산 동굴 속에서 주검으로 바뀐 끔찍한 사건들을 민주화된 제 나라 제 정부가 지배하는 백주대낮에도 꺼내놓고 말할 수 없는 부모자식이 있었다는 사실을 역사 앞에 직면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시커멓게 탄 슬픔을 위로해 주어야 한다. 군사독재와 사법살인의 역사를 기억하고 희생된 가족들의 피울음을 들어야 한다. 권력 찬탈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부역했던 사람들의 얼굴과, 그에 저항했던 사람들의 눌린 마음과 그 가운데 폭도로 몰렸던 사람들의 억울함도 풀어 주어야 한다. 독재에 저항하고 민주화에 참여했다가 다치거나 죽은 사람들과 가족들의 눈물을 닦아 주어야 한다. 전쟁과 국가수호의 전선에서 희생된 사람들, 이념갈등의 와중에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과 가족들의 슬픔을 충분히 위로하는 것도 살아남은 자의 의무이다. 구조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무능으로 인하여 가족의 품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사람들, 어린 학생들과 교사들과 그 부모와 가족의 슬픔을 아울러야 한다. 적어도 그들 앞에서 슬픔을 조롱하고 슬픔을 이용하여 편 가르는 일을 멈춰야 하고 멈추게 해야 한다.
민주시민교육은 우리 슬픈 역사를 국민 앞에 직면화하여 있었던 역사 그대로 드러내고, 숨겨진 역사의 뒤안길에서 희생된 개인과 가족들의 슬픔을 기억하고 이해하는 교육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슬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만이 남의 고통과 슬픔을 악용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슬픔도 슬픔끼리 어깨를 걸면 새로운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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