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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매년 1조원 먹는 괴물, 우리가 키웠다

입력 : 2015-07-23 11:22:00
수정 : 0000-00-00 00:00:00


매년 1조원 먹는 괴물, 우리가 키웠다



 



국가정보원이 이탈리아 해킹업체 해킹팀에게 나랏돈을 주고 프로그램을 사서 사이버사찰을 했다. 민간인 사찰용이 아니라고 하지만, 떡볶이 집, 대학동창 명단, ‘메르스’란 단어가 들어간 메일을 통해 해킹프로그램을 사찰대상에게 감염시켰다면 누가 봐도 민간인 사찰용이다.



 



2012년 대선전 국가정보원 여론조작 사건이 있었다. 원세훈 전국정원장은 내부 인트라넷을 통해 직원들에게 수년 동안 정치에 개입하는 인터넷 활동을 지시한 것으로 확인되어 구속된 상태이다. 그 때도 국내정치 개입이 아니라 대북 정보전이라고 말했다. 국정원은 이번에도 국내사찰용이 아니라, 대북감시용이니 해외정보전에 이용했다고 변명을 했다(사실 대북 감시용이라 해도 불법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국방비는 북한의 10배가 넘고, 북한의 1년 GDP총액 크기이다. 우리나라의 무역규모는 북한의 40배가 넘고, 1인당 GDP는 북한의 18배가 넘는다. 이런 격차가 20여년간 지속되어 왔으니, 이제 ‘북한 짓이다’라는 타령을 그만 할 때도 되지 않았나?



 



그런데도 아직도 북한을 빌미로 인권도, 민주주의도, 노동3권도 모두 유예하고 있다(일부 언론이 부추긴다). 이번 국정원의 해킹프로그램 도입과 민간인 사찰도 넘어가려한다. 국정원의 조직과 업무와 예산이 공개되지 않은 것도 용인된다. 특수활동비 명목의 올해 국정원 예산은 5,000억여원(예비비 3,000억 원가량은 별도)이며 알려지지 않은 예산까지 포함하면 1조 원을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다. 우리가 세금을 내서 국정원을 키워주고 있다는 셈이다.



 



이런 국정원에라도 취직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이 줄을 섰다. 세금을 공제한 연봉이 4,800만원이라 하니 백수생활을 마감할 수 있다면 그까짓 오명이야 무슨 문제랴? 하는 마음이다.



 



지난 주에 청소년 독서캠프에 멘토로 참가했다. 조별 발표를 하는데 아이들이 자신에게 물었다. “언제 제일 행복하세요.” “잠 잘때요.”“저도 잠 잘 때 제일 행복해요.” 한 조에 6명이었는데, 4명이 같은 대답을 했다. 이 말에 충격을 먹었다. 잠잘 때 행복하다니... 자신이 하고 싶은 걸 하거나, 무슨 일을 성취하거나, 놀거나 여행할 때가 아니라 잠 잘 때가 가장 행복하다? 며칠동안 그 아이들이 한 말이 머리에 맴돌았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잠’조차도 행복하다고 느낄만큼 생존바닥에 있는 건 아닌가? 이렇게 아이들이 살고 있으니, 국정원에 취직하겠다 하고, 국민의 돈으로 국민을 사찰해도 아무 거리낌없이 일하러 다니는 건 아닐까?



 



문득 돌아본다. 미래를 위해 현재를 고통스럽게 사는 것을 당연시 하는 태도가 국정원을 키운 것은 아닌지?



 



당장 내 인권이 짓밟혀져도 그냥 참았던 태도, 옆 사람이 몰매를 맞아도 피했던 태도, 아이들이 못된 짓해도 공부만 잘하면 박수쳤던 태도. 당장 내게 메르스 감염균이 안오면 안심이고, 당장 내 핸드폰이 사찰당하지 않으면 안심이라는 생각. 이 생각이 우리 돈을 1조를 먹는 괴물 국정원을 키우고 있는 것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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