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㉜ 제비꽃(ViolamandshuricaW.Beck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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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콘크리트길의 보라색 푸르름
이따금 도심의 길을 걷다보면 눈길을 끄는 녀석들이 있습니다. 콘크리트길이나 차가 많이 다니지 않는 아스팔트, 보도블록 등의 작은 틈새에 참으로 힘겹게도, 대견하게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가는 식물이 있습니다. 개미자리, 새포아풀, 서양민들레, 제비꽃이 그런 녀석들이죠.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도심에서도 잘 적응한 제비꽃입니다.
제비꽃이라는 이름의 최초 기재에서 ‘물 찬 제비와 같이 예쁜 꽃’이라고 기록 되어 있다고 합니다. ‘제비가 오는 시기에 피는 꽃’이어서 제비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실제로 제비꽃은 제비가 오기 전부터 피기 시작하고, 일부는 가을까지 꽃이 피기 때문에 그 견해는 맞지 않는 듯합니다.
과거 제비꽃은 오랑캐꽃, 병아리꽃, 장수꽃, 씨름꽃, 외나물 등으로 불렸다고 합니다. 오랑캐의 땅, 만주에 흔하게 분포하여 그렇게 부르지 않았나 하는 추측도 있습니다. 외나물이라는 이름도 있었고 식용이 가능하지만, 많이 이용하지 않은 듯합니다. 봄철 들판에서 더 향긋한 냉이의 채집이 더 쉬웠기 때문일까요? 그러나 제비꽃은 늘 나물바구니 한 켠에 있었다고 합니다. 먹기를 위해서가 아닌 꽃반지, 머리장식 등 어렵던 시절, 제비꽃은 어린 아가씨들의 화사한 장식품이었을테니 말입니다.
다양한 이름만큼 제비꽃의 종류도 많습니다. 흔히 볼 수 있는 제비꽃, 제비꽃과 비슷한 화단의 호제비꽃, 흰꽃이 피는 흰제비꽃, 산을 노랗게 물들이는 노랑제비꽃, 시골 길가의 키 작은 콩제비꽃 등 분류학자에 따라 50여종으로 나누기도 하고 100여종으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종이 나오는 것은 제비꽃이 환경에 따라 꽃의 색이나 잎의 변화가 다양하고 종간의 교잡도 심하기 때문입니다. 섣불리 말했다가 이름을 틀리는 경우가 많은 종입니다.
그렇게 구분하기 어려운 제비꽃이지만, 모든 제비꽃이 가지고 있는 공통점은 하나입니다. 닫힌 꽃(폐쇄화)를 만든다는 것이죠. 곤충이 꽃가루받이를 해주는 식물 입장에서 곤충을 만나지 못하는 것은 번식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종류의 식물은 자가수분의 방식을 취하는데, 꽃이 질 때 스스로의 꽃가루를 암술머리에 묻혀 수분하거나 제비꽃과 같이 꽃이 피지 않은 상태로 꽃봉오리 속에서 수분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 따로 길게 꽃대를 올릴 필요가 없어 낮은 곳에 폐쇄화가 달립니다. 심지어 고마리나 새콩은 폐쇄화를 뿌리에 만들기도 합니다. 변하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좋지 않지만, 종을 유지할 수 있는 좋은 방법입니다.
제비꽃은 곤충에게 대가 없이 꿀을 빼앗기지 않고 수분을 하기 위해 거(꿀주머니)를 꽃 뒤로 길게 빼 놓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기를 도와주는 곤충에게는 충분한 대가를 지불하죠. 개미에게 말입니다. 애기똥풀이나 제비꽃의 씨앗을 돋보기나 루페로 살펴보면 끝에 흰색 젤리가 붙어있는데, 엘라이오솜(elaiosome)이라 부르는 이 지방덩어리를 개미가 무척 좋아한다고 합니다. 개미는 씨앗을 굴로 가져가 이 부분을 떼어 먹고 남은 씨앗은 굴 밖으로 내다 버리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씨앗은 더 멀리 이동할 수 있게 되었고, 개미가 굴을 만드는 곳은 당연히 흙이 있는 곳이니 보도블록의 틈에서도 뿌리를 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제비꽃은 식용, 약용으로 활용은 적었지만 원예용으로 다양하게 개량되고 있습니다. 삼색제비꽃이나 팬지가 대표적이죠. 화사한 제비꽃 한송이를 시원한 음료에 넣을 얼음이나 봄나물 비빔밥에 얹어 보는 것은 어떨까요.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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