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㉞ 두우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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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우(穀雨)는 24절기 중에 하나다.
입춘을 시작으로 하면 여섯 번째 절기다. 곡우에 비가 내리면 백곡을 기름지게 한다는 말이 있다. 지금은 농법이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곡우에 볍씨를 담갔다고 한다. 이 때 농부들 일손이 바쁘다. 요 몇 년 동안 텃밭 농사에 푹 빠져 있다. 내게도 요즘 봄비는 참 귀하다. 씨를 뿌리고 모종을 가꾸어 심으면서 최대한 자연농법에 가깝게 농사를 짓는다. 씨앗이 가진 생명력을 믿고, 해와 달, 땅에게 고맙다. 마음은 그렇고 농사는 덜렁덜렁! 꾀부릴 생각으로 자연을 믿는다고 큰 소리를 자주 친다.
곡우에 내리는 봄비는 물고기들에게도 귀하다. 민물고기든 바닷물고기든 봄에 알을 많이 낳는다. 물고기들은 대개 물을 차고 오르는 성질이 있는데, 산란기인 봄에 강을 거슬러 올라서 알을 낳는다. 우리가 흔히 보는 붕어와 잉어도 이런 습성이 있다.
오늘 들려줄 물고기 이야기는 12년 전, 4월 곡우 즈음에 비 내리던 날 만난 두우쟁이! “곡우쯤 비가 오는 날을 기다려야 해! 두우쟁이가 임진강 상류로 올라오니까. 꼭 취재를 가야 한다고? 곡우 때만 볼 수 있어. 놓치면 일 년을 또 기다려야 한다구. 하하!”라며 민물고기 취재를 도와주고 감수도 해주는 선생님께서 신신당부를 했다. 두우쟁이는 가을에 강하류 깊은 곳에서 겨울을 나고 이듬해 곡우에 알을 낳으러 상류로 올라온다 했다.
임진강은 물이 좋아서 물고기가 많다.
그래서 이 강을 삶터로 삼아 사는 어부도 많다. 두우쟁이를 보러 연천어촌계에 갔다. 어부들은 잡은 물고기를 어촌계에 낸다. 어촌계에 들어서자 비린내가 확 끼친다. 이곳 어부들은 두우쟁이를 ‘미수개미’라고 한다. “미수개미 올라왔나요?” “한참 올라오고 있어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정말 커다란 수조 안에 두우쟁이가 바글바글하다. 알 낳으려고 임진강 하류 강화도 근처에서 연천까지 올라온 것이다. 그놈, 꼭 모래무지처럼 생겼는데 훨씬 크고 몸이 길다. 몸매가 미끈하게 잘 빠졌다. 모래 속에 숨어 눈만 내놓고 눈치만 살피는 모래무지는 좀 둔해 보이는 데, 두우쟁이는 긴 몸뚱이로 헤엄도 잘 칠 것 같고 몸빛깔도 예쁘다. 큰 강, 모래가 깔린 바닥에서 헤엄치며 산다. 작은 게와 새우, 물벌레를 잡아먹고 돌에 붙은 물이끼도 먹는다.
허목(1595~1682)은 조선시대 유학자인데, 그가 임진강 지역에서 자주 낚시하여 두우쟁이를 맛있게 먹었다고 한다. 그래서 임진강 주변에서 사는 사람들이 ‘미수감미어’라 불렀다고 한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기에 이런 이름이 붙었는지 궁금하다. 매운탕을 끓여 먹는다. 모래무지처럼 하얀 속살에 담백한 살맛일 것 같다.
어촌계 수조 한쪽에는 꺽정이가 몇 마리 있다. 뜰채로 건져서 손바닥 위에 올려놓으니까 녀석이 기지개를 켜는지 입을 찢어지게 벌리고 지느러미를 꼿꼿이 세운다. 조그마한 게 우락부락 심통 잘 부리게 생겼다. 매운탕을 끓이면 국물이 시원하고 맛있다고 한다. 꺽정이는 바닷물고기 삼세기(삼식이)와 닮았다. 꺽정이, 삼세기, 아귀 이런 우락부락한 물고기들은 대개 매운탕으로 먹는다. 꺽정이는 바다와 민물을 왔다갔다하며 산다. 서울시 보호종이다.
두우쟁이는 우리나라 서해로 흐르는 한강, 금강, 임진강에서 사는데, 한강과 금강에서는 보기가 어려워졌다.
한강은 물이 더러워졌고, 금강은 하구에 둑을 쌓아 물길이 막혔다. 우리 파주의 자랑 임진강은 강어귀에 하구둑이 없고, 물이 맑아서 아직 흔하다. 북녘에 있는 압록강과 대동강, 청천강, 예성강에도 산다. 북한에서는 ‘생새미’라고도 하고 ‘두루치’라고도 한다. 중국, 베트남, 러시아 시베리아에도 분포한다.
생김새로 치면 모래무지 닮았는데 몸이 훨씬 길다. 몸길이 20~25센티미터로, 등지느러미 뒤부터 몸이 아주 날씬하다. 등은 푸른 갈색, 배는 은백색이다. 옆구리에 거무스름한 반점이 여러 개 줄지어 나있다. 수컷이 암컷보다 아가미 아래쪽 보라색 줄무늬가 강하다. 아가미뚜껑에 세모진 검은 점무늬가 있고 옆줄을 따라서 검은 반점이 있다. 몸 옆에 눈알만한 검은 반점이 여러 개 나있다. 주둥이는 길고 끝이 뭉툭하다. 입가에 수염이 한 쌍 있다.
추운 겨울에는 강어귀에서 지낸다.
임진강에서 사는 두우쟁이는 강화도까지 가서 겨울을 난다. 알을 낳는 4월, 곡우 때쯤 강을 거슬러 올라온다. 떼를 지어 올라오는데 냇물에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강화도에서 전곡까지 올라오기도 한다. 임진강에 사는 어부들은 “두우쟁이가 어느 해에는 잡히기도 하고 어느 해에는 덜 잡히기도 한다. 성질이 급해서 잡아 놓으면 빨리 죽는다”고 말한다.
내년에는 꼭 두우쟁이를 다시 만나고 싶다. 기회가 된다면 꼭꼭꼭 감사하는 마음으로 맛도 보고 싶다. 사실 두우쟁이보다 더 맛보고 싶은 물고기가 있다. 임진강시민대책위에서 일하는 노현기 국장께서 요즘 참 맛난 웅어회와 구이 맛을 봤다는 자랑을 어찌나 하시던지. 임진강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일을 하면서 만난 어부가 맛보여 주셨다는데, 너무 부러웠다. 두우쟁이와 함께 귀한 웅어도 지금이 철이다!
#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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