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 깃든 생명들 날 좀 봐요, 봐요! ㊲ 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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㊲ 개미
인간보다 앞선 농경사회, 작지만 위대한 개미
오랜 봄 가뭄에 모심은 논바닥이 갈라지고, 채소는 물론 길거리 풀조차 말라가던 즈음 시원하게 비가 쏟아졌다.
비가 그친 뒤 맑게 갠 날 아침 우리 집 마당에 내 손가락 두 마디쯤 크기의 ‘넓적사슴벌레’ 수컷이 몸이 뒤집어진 채 다리를 버둥거리고 있었다. 살아있는 넓적사슴벌레에는 작은 개미들 몇 마리가 붙어있었다. 넓적사슴벌레를 구해(?) 작은 개미들을 물로 털어낸 다음 텃밭 천막의 탁자에 올려주었다. 죽을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약 두 시간에 걸쳐 동네주변을 천천히 돌아다녔다. 큰허리노린재, 머리만 남은 톱사슴벌레 수컷, 먼지벌레류 등 비가 온 뒤라 온갖 곤충들이 죽어있었다. 자운서원 뒤편 언덕길에는 내 손가락 하나크기의 멧밭쥐(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설치동물)도 한 마리 죽어있었는데 거기에도 개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렇게 생태조사인지, 놀이인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와 넓적사슴벌레를 보러갔다. 그 자리에 그냥 있다면 사진이라도 한 컷 찍을 요량이었다. 넓적사슴벌레는 없었다. 살아서 날아갈 수 있는 상태는 아니었는데, 혹시나 하고 주변을 돌아봤다.
그런데! “오마나! 세상에~”
넓적사슴벌레는 근처 개미집에 개미들이 파놓은 흙에 덮인 채 큰 턱 만을 내놓고 있었다. 턱을 들어보니 또 한번 “오마나! 세상에”. 넓적사슴벌레의 배와 가슴은 온데간데없고 큰 턱이 달린 머리 부분만 남아있었다. 불과 5미리짜리 작은 개미들이 그 큰 넓적사슴벌레를 탁자위에서 아래로 끌고 내려와 자신들의 집까지 끌고 가는 것도 보통일이 아니었을 텐데, 한 마리를 작은 조각으로 만들어 몽땅 해치웠다. 심지어 딱지날개까지. 그러고 보니 톱사슴벌레 머리도 개미들이 식사를 하고 남긴 부산물인지 모르겠다. 멧밭쥐 역시 흔적 없이 사라졌을지 모른다.
연상을 해보면 먼저 먹이를 찾아 돌아다니던 정찰병 개미나 일개미가 넓적사슴벌레를 발견하고 먹잇감이 있음을 무리에 알렸을 거다. 그 거리를 움직이지 않고 패로몬 만으로 신호를 보냈는지, 집으로 가서 “저기 크고 훌륭한 먹잇감이 있다”고 알렸는지는 모른다. 어쨌든 연락을 받고 일개미들은 줄지어서 떼로 몰려와 넓적사슴벌레를 옮겼을 것이다. 살아있었으니까 개미보다 몇 백배 큰 넓적사슴벌레가 다리를 움직여 저항했을 테니 더욱 힘들었을 것이다. 개미집 입구까지 옮겨진 넓적사슴벌레는 이미 유명을 달리 했을 거고 개미집에서는 더 많은 일개미들이 몰려나와 멋잇감을 잘게 토막 내 집안으로 옮겼을 테다.
한 마리 한 마리는 작고 힘없는 곤충이지만 크고 작은 집단을 이루고 철저한 분업을 통해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개미 생태를 책이나 영상으로는 많이 봤지만 막상 개미떼의 위력을 내 집에서 눈으로 확인하고는 경이로움이 들었다.
사실 여왕개미를 중심으로 집단을 이루고 철저히 분화된 계급사회를 이루는 개미는 인간과 DNA도 전혀 다르고 분류 계통으로도 전혀 다른 생명이다. 그러나 생태적으로는 사람과 가장 많이 닮았다고 한다. 개미는 분류상으로는 벌목(Hymenoptera)에 속한다. 벌들을 모두 사회성 곤충으로 생각하지만 벌목 중에 말벌과와 꿀벌과 일부 그리고 개미과만 집단생활을 한다. 흰개미는 개미의 한 종류가 아니라 흰개미목(Isoptera)으로 별도 분류된다. 개미는 벌목의 한 과(Family)이다.
개미들은 사람보다 먼저 경작과 목축을 했다. 전쟁을 하고 심지어는 전쟁에서 이긴 다른 집단의 알이나 애벌레를 노예로 키우기도 한다. 또 인간을 제외하고는 아동노동을 시키는 유일한 동물이기도 하다. 베짜기개미인데, 이들은 아동노동에 참여한 애벌레를 평생 일을 안 해도 되도록 보살펴 그야말로 사회복지를 통해 아동노동에 참여한 개미들을 보상하고 있다.
서천의 국립생태원에 가면 아동노동을 시키는 베짜기개미와 버섯재배를 위해 잎을 절단해 집으로 옮기는 잎꾼개미의 실제 모습을 볼 수 있다. 실제보다 크게 확대한 영상과 달리 너무나도 작은 개미가 그렇게 큰 잎을 엮어서 큰 공모양의 집을 짓고, 잘게 자른 잎을 물고 먼 거리를 가는 모습에 감탄했다.
한 가지 더. 개미와 베짱이라는 이솝우화가 말하듯이 사람은 부지런한 동물의 상징으로 꿀벌과 함께 개미를 꼽는다. 그런데 최재천 교수에 따르면 실제 개미의 노동시간은 약 4시간에 불과하다고 한다. 개미는 잠자는 시간과 쉬는 시간을 다르게 치기 때문에 잠자는 시간을 빼고도 쉬는 시간이 많다는 것이다. 하루 8시간 노동으로도 모자라 잔업, 철야, 특근까지 하고, 연월차 휴가까지 반납하면서 일해야하는 인간이 불쌍하다.
우리는 개미하면 ‘개미투자자’를 많이 연상한다. 사실 주식시장에서 개미투자자들은 기관투자자에 의해 늘 손해(피해)만 보는 서민들이다.
그런데 눈으로 확인한 개미떼의 위력을 보면서 지난겨울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에 모여 박근혜 탄핵을 외치던 촛불시민들이 연상됐다. 한 명 한 명은 힘이 없지만 뭉치고 포기하지 않고 행동하니까 대통령도 탄핵시켰다. 단결된 힘으로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거대한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 역시 개미와 인간의 공통점인가 보다.
노현기
#6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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