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고장 역사교실 제2부 ⑳ 찰리블록이라 불리우던 봉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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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블록이라 불리우던 봉서산
통일공원에 왔으니 봉서산에 올라 보자. 테니스장 왼쪽부터 등산로가 시작된다. 떨어진 솔잎을 밟으면서 천천히 걷다 보면 중간 중간에 쉼터도 나오고 작은 고개도 나온다. 약 30분 정도 걸으면 산의 8부쯤에서 약수터와 체육공원을 만날 수 있다. 정상에는 군부대가 있어서 오를 수 없다. 봉서산의 역사를 살펴보자.
백제가 봉서산에 산성을 쌓다
봉서산은 약 210m로 그다지 높지 않다. 하지만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확 트여서 조망이 시원하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군사 요충지임을 단번에 알 수 있다. 지금도 군부대가 장악하고 있는 것은 그 방증이다. 조선 후기 김정호가 편찬한 『대동지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다.
“마산고성(馬山古城)이 주의 서쪽 2리에 있고, 백제 때 쌓았는데 조선 선조 때 중수하였으며, 둘레는 2,905척(약 870m)이다.”
마산은 지금의 주내 삼거리 서쪽을 일컫던 지명으로, 그곳에 백제 때 쌓은 옛 성이 있다는 것이다. 이곳의 산성이 탄현의 오두산성, 월롱의 월롱산성처럼 임진강 남안에 있으므로, 백제가 임진강을 경계로 북방의 고구려와 다투기 위해 쌓은 성으로 추정할 수 있다.
고려 시대에 봉명산성으로 불리다
고려 시대에 이르러서 이곳의 산성은 봉명산성(鳳鳴山城)이라고 불렸다. 고려의 국경선이 대동강 이북이었으므로 파주의 봉명산성은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기능이 약화되었다. 그러나 삼국시대 백제에서 쌓은 성이 그대로 유지되던 것으로 보인다. 조선 초기에 발행된 『세종실록지리지』과 『동국여지승람』에 봉서산이 성산(城山)으로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다. 성산 즉 ‘성이 있는 산’이라고 불린 것은 성곽이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임진왜란 때 권율이 주둔하다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군을 크게 격파한 권율은 유성룡의 명령에 따라 이곳 파주산성에 와서 진을 쳤다. 왜군이 행주산성의 패배를 복수하기 위해 재차 침입한다는 정보가 수집되었기 때문이다. 왜군들은 파주산성 가까이 접근하였다.
“오잉? 파주산성은 토산이네! 위에서 돌이 굴러오면 피할 수가 없구나. 공격을 했다간 우리만 손해다. 후퇴하라.”
10여만 명의 왜군이 파주산성 몇 리 밖까지 진출했으나 공격하지 않고 물러갔다. 이후 명나라와 왜군 사이에 강화 회담이 진행되면서 임진왜란은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파주산성의 보수에 대해 논의하다
임진왜란 이후 파주산성의 보수 및 개축에 대한 논의가 광해군부터 정조 때까지 이어졌다. 파주목사 이사렴이 정조에게 다음과 같이 아뢰고 있다.
“명나라 장수 조우는 ‘하늘에서 만든 뛰어난 지형이고 도성 서쪽의 중요한 관문이다(天設形勝國西重門)’라는 8자를 직접 써서 성의 현판으로 걸었습니다. 영조 임금께서 방어영을 이리로 옮겼으나 아직도 수리를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 대체로 이곳은 하늘이 만든 험준한 지형으로 근처에 마주 대한 산이 없어 그 안을 엿볼 수 없으며 위 둘레는 거의 1천 걸음에 가깝습니다. …… 꼭대기에는 큰 우물도 있고 그 아래 우물 두 군데가 더 있으며, 성 아래 사방에도 다 샘이 있으니, 금성탕지(金城湯池, 매우 견고한 성이라는 뜻)라고 할 만합니다.”
그러나 비용 문제 때문에 파주산성에 대한 보수는 이루어지지 못했다.
미군들에 의해 찰리블록으로 불리다
파주산성의 중요성은 6·25 전쟁 때 다시 한 번 부각되었다.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유엔군은 곧 이어 서울을 수복하고 공산군에 대한 반격을 시작하였다.
“이곳을 전초기지로 삼을 것이다. 암호명은 찰리블록이다.”
미 3사단과 한국 해병대는 파주 일대에서 3일 동안 피의 전투를 전개하여 공산군을 구축하고 찰리블록을 확보하였다. 전쟁이 끝나고 1955년 미군이 주둔하면서 봉서산은 미군들에 의해 찰리블록으로 불리게 되었고, 2007년 국군에게 반환되었다. 현재는 우리 국군이 봉서산 정상을 지키고 있다.
봉서산 정상은 6·26 전쟁 때부터 지금까지 군인들에 의해 관리되고 있어서 산성의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군사 시설 때문에 제대로 발굴 조사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군인들이 작전을 수행하면서 대부분 유적이 파괴되었을 것이다.
정헌호(역사교육 전문가)
#6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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