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29) 옷의 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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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와서 겨울 옷들을 정리했다. 최근 몇년 간 몸의 일부였던 옷들을 하나하나 개키고 있자니 애잔함이 몰려왔다. 옷마다 추억이 스며들어 저마다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스타일은 구식이지만 몸에 잘 맞아 아끼던 외투. 지난 겨울엔 무슨 연유에서인지 한번도 입지 못했다. 몇년 전 유난히 추웠던 날 돌돌 떨며 입고 있던 옷. 그 옷은 지금의 나를 있게 했다. 두 박스의 가을/겨울 옷 중 지난 2-3년 간 입지 않았고 앞으로도 입지 않을 법한 옷들을 추려 두 개의 쇼핑백에 담았다.
길가 초록색 재활용 박스 앞을 서성이며 뭔가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 가게에서마냥 손길이 떨어지지가 않았다. 입지도 않을 것이면서 그냥 버리면 되지 않는가? 라고 내 자신에게 물었다. 비록 낡았지만 외할머니께서 고쳐입고, 또 고쳐입고 하던 몸빼바지처럼 길들여진 것에는 그만큼의 값어치가 존재한다. 더 좋은데 쓰이렴-하면서 재활용 박스 위 뚫린 창문 같은 곳에 마치 편지를 부치듯 하나씩 넣었다. 고마웠고 잘 가렴. 버리는 마음이 아니라 보내주는 마음이었다. 그 두 가지는 분명 다르다.
그래서 옷에도 인연이 있다고 말하고 싶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청바지들도 수많은 청바지가 있지만 내 허리와 다리에 잘 맞고 편안한 옷은 한 두 개 뿐이다. 나와 인연이 되는 옷은 많지 않다. 그리고 서로 한 몸으로 함께 산다. 흰 옷과 어두운 옷을 굳이 구분해서 빨고 섬유유연제로 향을 살려 다시 한 번 빨고 쨍한 햇볕에 널어두었다가 다시 차곡차곡 개어두고, 아침에 눈을 뜨면 그 중에 골라 입는 이 모든 일련의 행위는 옷과의 관계 유지이다. 옷은 소중하다. 옷을 입고 맵시를 뽐낼 수 있어서도 소중하지만, 그들이 잊을 수 없는 추억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기에 더 소중하다.
(김유진, 아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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