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33) 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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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는 10년 전에 돌아가셨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할머니의 부재에 따른 먹먹함은 여전하다. 할머니와 함께 한 인생이 길기 때문에.
친언니와 돌아가신 할머니를 뵈러 납골당에 갔다. 언니는 물빠진 파란 장미를, 난 노랑 후리지아를 골라 대칭으로 납골함에 붙였드렸다. 할머니는 여전하리만큼 환하게 웃고 계셨다. 엄마의 엄마지만 내겐 또다른 엄마였다. 내가 유치원생일 때 자주 입으시던 발목까지 오는 감색 원피스를 입은 사진. 할머니의 미소를 보고 있으면 심장이 데워진다.
넋을 기리는 기도를 드리고 나서 보니 언니가 울고 있다. 가족사진 한장 못 찍었던 게 서럽단다. 나도 잠금이 해제되어 눈물이 줄줄 흘렀다. 할머니를 자주 목욕시켜드리지 못했던 것, 앉아서 생활하셨는데 바깥 구경 모시고 가지 못했던 것, 임종에서 내 이름을 애타게 부르실 때 찾아뵙지 못했던 것... 못해드린 것만 무한대로 떠오른다.
할머니와 난 20년 넘는 룸메이트였고 방을 함께 썼다. 밤낮으로 나를 보듬어 주시고 뒷바라지 해주셨다. 할머니가 안계셨더라면 난... 이라는 생각을 지금도 하니까.
마당을 쓸다가 사다리가 넘어져 다리를 다치시고, 서서히 귀가 어두워 지시면서 우리는 흰색 작은 보드에 글씨를 써서 소통하곤 했다. 할머니께 “(어디) 아파?”라고 쓰면 할머니는 검지 손가락으로 획을 일일이 쓰다듬으면서 천천히 글자를 파악하셨다. 그리곤 “안 아파”하고 활짝 웃으셨다. 요리할 줄 몰랐던 내가 가끔 끓여드리는 라면 국물을 참 맛잇게 드셨었다. 늘 하얗고 깔끔하고 고우셨다. 잘 웃으셨다. 참 잘 웃으셨다.
할머니와의 추억은 방대하고 그것들은 아직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나는 할머니의 손길과 사랑으로 따스함을 지닌 어른이 되었다. ‘참 따뜻한 사람이다’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아직도 너무나 생각이 많이 나는 할머니께서 부디 아픈 곳 없는 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소망한다.
할머니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밤이다. 보여줄 수 있는 사랑은 아주 작다. 할머니의 높고 넓고 깊고 아름다웠던 사랑에 비하면.
(김유진, 아멜)
#6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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