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찾기 (36) 갈수록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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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수록 어려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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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끄적끄적했던 대다수의 나의 그림들이 낙서에 그치지 못했으므로, 스케치북 째로 사라지거나 어쩌다 실수로 폴더 채 삭제가 된다 해도 놀라거나 아까워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냥 스케치인데 뭐... 라면서 말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스스로에게 너무나 무심했다. 그러다 예전에 2주간 실크스크린(판화) 수업을 듣게 되어서 너무나 설레고 기대되고 막 엄청난 걸 알게될 것 같고 떨렸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때 매우 고통스러웠다. 그림이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하는 자괴감도 느꼈다. 그림이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미지를 도출해내는 과정이 힘들었던 것 같다.
어떤 이야기가 고기 한덩이라면 실크스크린은 그 단면 하나를 썰어서 끄집어내 보여주는 것과 같다. 늘 할 얘기가 많고 보여주고 싶은 것도 여러가지인데 그걸 상징적으로 끄집어 내는 사고훈련은 익숙치가 않았다. 횡설수설하는 것이 습관이 되어서 요점이 흐려진다는 것과 같다. 물론 판을 그려 필름을 뽑고 감광을 하고 수세를 하고 찍고 탈막(씻어내는 것)을 하는 일련의 과정들도 육체적으로 중노동에 가깝고 힘들었지만... 거의 실크판을 씻는다는 것은 사람 한명을 목욕시키는 노동과 같다. 그보다도 힘들었던 것이 지금까지 해왔던 사고 방법을 깨고 한단계 나아가는 것이었다.
시간이 꽤 흘렀지만 그 고민과 괴로움은 현재도 계속된다. 내 안에 칭찬받고자 하는 인정의 욕구가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이다. 칭찬 못받을 것에 대한 두려움. 혼나면 에잇 안하고 던져버리거나 혼남을 무시하면서 마이웨이를 가는 것도 방법인데, 나는 양쪽 다 정확히 선택하지 못했다. 아니 오히려 칭찬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때 수업에서 근거있는 충고를 많이 들었는데, 그런 것들은 근거가 있기 때문에 매번 맥없이 설득당하곤 했다.
그냥 괴로울 땐... 그냥 괴로워하기로 한다. 괴롭기로 마음 먹으니 요상하게 마음 한구석 방이 정리되는 기분이다. 괴로움의 방이다. 그 방은 내가 오랫동안 들여다보지 않고 외면했던 방이다. 부러 문을 안에서 잠그고 열쇠를 버렸던 방이다. 그래 이왕 괴로울 거 적극적으로 괴로워하자. 고민과 싸워 이기려고 하지 말고 그냥 고민과 친해지자. 인정하자. 때론 이런 마음가짐이 생각을 덜어준다는 걸 알기 때문에.
(김유진, 아멜)
#7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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