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51) 세월호진상규명을 위한 파주주민모임 강소희, 임미경

입력 : 2017-01-25 15:30:00
수정 : 0000-00-00 00:00:00

 

부모가 되니 하나도 안걸리는 것이 없었다


▲ 임미경, 강소희

 

지난 1월 7일 11차 범국민행동은 세월호 참사 1,000일을 기려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주제를 내걸고, “박근혜 즉각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청산!”을 외쳤다.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참사가 난 당일 대통령의 7시간은 아직도 밝히지 못하고 있고, 세월호는 인양되지 못한 채 속수무책으로 바닷속에서 부식되고 있다.

 

1,000일을 지나 참사 3년이 다 되어가도록 진상규명조차 하지 못한 죄책감과 설움이 국민을 울리고 있지만, 2차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재개를 위한 ‘세월호 특별법’은 아직도 개정하지 못하고 있다.

 

이번호에 파주의 아름다운 얼굴로 ‘세월호진상규명을 위한 파주주민모임(약칭 세파모)’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두 엄마를 모셨다. 두 분은 세파모를 비롯하여 파주 촛불 행진 등 여러 가지 지역활동과 교육문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그리고 지난 10월부터 휴먼빌 2단지아파트에서 리본공작소를 만들어 매주 토요일마다 아이들과 함께 세월호 리본만들기를 하고 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세월호 유가족의 육성기록, 창비출판사)」이란 책을 나눠 읽은 후 리본을 만들고 있다.


 강소희씨: 세파모와 한빛2단지 샘터도서관 봉사자들이 세월호희생자 안주현학생의 생일상을 준비하였다.


“우리 애들이 살아갈 세상이니까”

강소희씨는 딸 둘과 아들 하나를 둔 46세 전업주부이다.

 

막내를 낳고 돌이 지난 2005년에 파주로 이사왔다. 교하 연다산리 전원주택에 살다가 검산동으로, 이후 운정 한빛 2단지로 이사해 살고 있다.

 

한빛초등학교와 한빛 중학교 운영위원을 했다. 세월호 활동하기 전부터 사회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광장이나 광화문 집회에 쫒아가고, 한진중공업 김진숙 위원장의 크레인 농성때도 아이들 셋을 데리고 부산에 갔었다. 어린 아이들 데리고 움직이기 쉽지 않았을텐데. 왜 갔을까?

 

“가야할 것 같았어요. 우리 애들이 살아갈 세상이니까 불합리하고 부조리한 것을 그냥 보고 있으면 안될 것 같았어요. 그냥 못본 채 넘어가는 것은 부모로서 의무가 아닌 것 같아요. 자식을 낳고 키우다보니 환경, 생태, 교육, 인권 등등, 부모라는 직업에 하나도 안걸리는 것이 없더라구요. 가만이 있으면 안되겠다 싶었어요. 그래도 누군가는 가야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부터 시작해야하지 않을까? 힘이 되지는 않겠지만...조금이라도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개인적으로 ‘작은 실천’(본인은 극구 이렇게 표현했다)을 하던 강소희씨가 세파모라는 단체에 들어가고, 운영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큰 변화이다.

 

“아이들이 연관되어 있으므로 엄마로서... 이 세월호만은 잡고 가자. 그래서 단체로 들어갔어요.” 그는 개인으로 있었다면 이렇게 끈기있게 운동하지 못했을 것이라 말했다.


▲ 강소희씨: 2014년 9월 세월호특별법 제정을 위한 작은음악회에서(교하중앙공원)

 

“아이들 생명의 문제여서...소명이라 생각해요.”

임미경씨는 고3 아들을 둔 47세 직업여성이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초등학교에 특수계약직으로 일하고 있다.

 

임미경씨는 2006년 2월에 파주로 이사와서 12년째 살고 있다. 이전에는 양천구 목동에 살다가 아들 아토피 때문에 파주로 이사왔다. 약도 먹이고, 유기농 식단으로 신경쓰고, 친환경식단 유치원에 보내고... 여러가지 다 했지만 안되어 공기좋은 곳으로 이사하자해서 파주 교하로 이사온 것이다.

 

이후 아토피가 점점 나아지고 지금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우리는 환경 난민이예요. 아들 때문에 남편은 매일 출근시간 1시간 40분을 희생하고 있어요. 12년 동안” 남편 자랑도 슬쩍 끼어넣는다.

 

세월호 참사 당시 임미경씨 아들은 중학교 2학년이었다. 아이가 하나밖에 없으니 더 절실하게 다가왔다고 했다.

 

당일날은 모르고 있다가,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모바일에서 접하고 눈물이 왈칵 터졌다.

 

그 이후 교하분향소를 찾고, 그 때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한 파주주민모임(약칭 세파모)’을 알고 가입하였다. 그후 회의에서 “광화문에 가끔 나가겠다”고 해서 대외협력팀장이 되었다. 그래서 풀뿌리시민네트워크에 들어가서 더 폭넓게 활동하게 되었다.

 

“아이 키우면서 그런 것 잘 모르다가, 슬금슬금 사회가 부정해지고 살기 힘들어졌던 것 같아요. 광우병 집회 때는 ‘소고기 안먹으면 된다’는 생각으로 안나왔었죠. 그때는 그냥 지나갔어요. 그런데 이 세월호는 선택하고 안하고 하는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 생명의 문제여서... 소명이라는 느낌을 가졌어요.”


▲ 임미경씨: 혜화동. 10/1일 백남기 추모대회 때 풀.넷(풀뿌리 시민 네트워크)팀과 함께

 

활동 과정을 통해서 변화 없었나?

강소희 : “그전에는 행동을 하기는 했었지만, 개별화되고 지속적이지 않았던 것 같다. 지금은 단체에 소속되어 길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단체에 소속되지 않았다면 지속성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 같다.”

 

임미경 : “남에게 미루던 일, 누군가가 해주겠지. 정치인이 해주겠지 하는 생각이었다가. 지금은 내가 나서야겠다고 생각이 바뀌었다. 처음엔 따라가는 입장이었는데 지금은 주축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발언도 안하다가, 지금은 미루다보면 안될 것 같아서 하라면 무조건 한다.”

 

남편은 잘 도와 주나요?

강소희 : “남편은 싫어해요. 내가 나가서 하는 걸 남편은 잘 모르고 있었는데, 지금은 알아도 지지하지 않아요. 예전에 남편이 잔소리를 해도 제 뜻대로 그냥 했더니, 지금은 잔소리를 안해요.”

 

임미경 : “남편이 잘 도와줘요. 광화문에 갔다가 파주 사람들 태워오기도 하고, 전단지 갖다주고, 티셔츠 맡겨놓아두면 배달 해주고... ”


▲ 임미경씨: 12/3일 6차 범국민대회. 232만 시민이 모인 날. 청와대 100m 앞

 

같은 세대 엄마들에게 “작은 행동이 큰 물결이 될텐데...”

임미경 : “노란 뱃지랑 리본을 달고 다니다가 혼자여서 안하게도 되고...그럴 때 다들 거인인데 나만 난장이인 듯 기분, 아님 나만 거인이고 다들 난장이인 듯 한 기분이 들어요. 그래서 노란 세월호옷 입고, 글씨가 새겨진 티를 당당히 입고 다니는 강소희님이 항상 부러웠어요. 그래서 한풀이 하듯 토요일 일요일날은 노란옷을 입고 여기저기 다녔어요.”

 

강소희 : “엄마들을 만나보면, 다른 문제와 달리 공감은 똑같아요. 해결되기를 바라죠. 그런데 그에 따른 행동이 따르지 않아요. ‘행동’이라는 것은 거창한게 아니예요. 집회에 나가거나, 광장에 나가지 않아도, 내 가방에 내 옷에 리본 하나 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으로 행동으로 연결되는 것인데.... 내 가방에 리본을 달고, 목걸이를 하는 것 이 표시 하나만으로도 기득권 세력에 대한 저항이므로. 마음이 있다면 그것 하나만이라도 했으면 해요. '일상의 작은 움직임, 작은 행동이 큰 것이 된다.' 는 것이죠”

 

아이들 교육에서 가장 중점으로 생각하는 것은?

강소희 : "인성과 토론하는 문화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방과 후 학원으로 가고있어 아이들이 쉴 시간이 없다."

임미경 : "인성과 함께 행복도 중요하다. 자기가 행복하면 친구에게 행복을 전파시킬 수 있는데... 자신이 행복하지 않으니, 행복하지 않는 감정으로 사소한 것에 짜증내고 못참고 전염시키는 것이라 생각한다."

 

2017년에 바라는 것은?

강소희 : “세월호 특별법을 재개정해서. 진상이 규명되는 것이 소원이예요. 덧붙이자면 삶의 관점이 변했으면 합니다. 많이 벌고 많이 쓰는 삶에 대해 반성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요. 옆에 있는 친구와 함께 것이 더 중요하지, 나만 먼저 도달하겠다는 교육은 지양을 해야합니다. 모둠수업의 의미가 못하는 사람과 잘 어울려 같이 가자는 것이 취지였는데, 오히려 모둠수업으로 오히려 못하는 사람이 낙인찍혀버리고 있지요. 모둠 수업의 의미처럼 교육도 삶도 같이 갔으면.... 교육은 같이 갈 수 있도록 하는 것.

임미경 : “나라가 바뀌어야죠. 국정원과 청와대, 사법부가 다 연결되어 있어서 건드리기 쉽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요.

안산에서 이사오신 분이 있어요. 그 분이 정토회활동을 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위해 서명운동을 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힘들었대요. 그런데 세월호 부모와 가족들을 보며 힘을 얻었대요. 그 유가족분들은 딱 보면 안대요. 애간장이 타서 새까맣고... 우리가 유가족이었다면 평소의 삶과 일상이 모두 파괴되었겠죠. 우리는 일상을 유지하면서 1/10만 시간을 내면,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사회를 만들 수 있으니까. 그래서... 같이 움직였으면 해요.”

 

더 큰 엄마가 되어가는 두 아줌마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지역 활동을 시작하고, 스스로 변하며 ‘더 큰 엄마’가 되어가는 두 아줌마야말로 우리 시대의 거울이 아닐까? 두 분을 보면서 ‘도깨비를 빨아버린 엄마’란 책이 떠올랐다. 더러운 도깨비들을 퉁탕퉁탕 빨아서 깨끗하게 해주는 씩씩한 엄마 이야기이다.

엄마들은 강하다. 그리고 끈질기다.



 

임현주 기자

 

#57호

 


신문협동조합「파주에서」 모든 컨텐츠를 무단복제 사용할 경우에는 저작권법에 의해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