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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⑭ 시몽제과 김 남 중

입력 : 2015-04-29 11:18:00
수정 : 0000-00-00 00:00:00

장애우들과 ‘빵도 굽고 꿈도 굽는’ 시몽제과



 





시몽제과를 운영하는 김남중, 김보경 부부



 



 



토요일 아침(4월 18일), 적성터미날 건너편에 자리잡은 시몽제과는 빵을 팔지 않는다. 휴일이어서 휴가 나온 군인들과 여행객들이 들락날락 빵을 찾는데도 빵 판매를 하지 않는다. 이날 오전은 ‘파주교육지원청 특수교육’사업으로 발달장애아들에게 제빵 기술을 가르치는 날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시끌벅적 떠들며 반죽을 두들긴다. 오늘의 과제는 피자 만들기이다. 커다란 나무 판 위에 반죽을 내리치며 탕탕 소리를 내야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은 지 연신 선생님을 찾는다. 그 선생님이 바로 김남중씨(만 40세)이다.



 





파주교육지원청 프로그램 '빵도 굽고, 꿈도 굽고'에서 피자를 만든 아이들



 



 



제빵 배우고 싶다던 아이 군대서 사망



그가 이렇게 장애인을 위한 제빵 교육을 시작하게 된 것은 가슴에 묻은 한 아이 때문이다.



그는 파리에서 큰 아이를 낳고 귀국했다. 수석으로 입사한 롯데백화점 포숑제과점과 조선호텔 베이커리라는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4년만에 고향을 찾아 시몽제과를 차렸다. 빵 만드는 것보다 판매실적을 더 고민하기보다 자유롭게 빵을 만들고 싶기 때문이기도 했고, 고향에서 사업을 일궈보겠다는 생각도 있었다. 아이들도 자유롭게 키우고 싶었다. 그래서 고향 파주 적성으로 들어와 8평짜리 작은 빵집을 시작했다. 그게 시몽제과이다.



어느날부터인가 어떤 아이가 매일 오더니 ‘빵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어눌한 말투였지만 장애등급은 없었다. 알고보니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집을 떠나버려 할아버지와 단 둘이 살고 있어 등급판정도 못받은 것 같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빵 만드는 법을 조금씩 가르쳐주었다. 그 아이는 “군대 안 가면 바보다”라는 친구들의 얘기를 듣고 군대에 자원했다. 판정을 받으면 면제를 받을 수 있었을 것 같았는데....그렇게 아이는 졸업하자마자 군대로 갔고, 몇 달 지나 그 아이가 전화를 했다. “사장님, 면회 한 번 오세요.” 그래서 “지금 바쁘니 보름 있다가 가겠다”고 답했는데, 일주일 후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슴이 막혀버렸다. 앞이 깜깜해졌다. 내가 면회를 갔더라면...그 때 그 아이의 청을 들어줬다면...뛰다가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사인을 들으니 더 자신의 죄인 것 같았다.



그 이후 관심병사를 위해 빵과 케익을 전달하는 봉사를 시작하고, 부인은 미술심리치료 봉사를 했다. 그리고, 장애인을 위한 제빵교육을 구준히 7년째 하게 된 것이다.



 



금촌서 아이들이 버스 타고 배우러 와



동네 아이(발달 장애아)에게 2008년부터 제빵기술을 가르쳐주기 시작한 것이 아이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는지 발달장애아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하나 둘씩 시몽제과를 찾아왔다. 김남중 씨는 제빵 기술을 가르쳐주고, 부인 김보경 씨는 미술심리치료를 해주었다.



아이들이 금촌에서 1시간 반 걸려 버스를 타고 왔다. 파주 제일 북단에 있으니 오는 아이들도 쉽지 않을 터인데...2010년부터는 아이들이 만든 빵을 지역 독거노인들에게 직접 찾아가서 전달하는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아이들이 늘어나 교육하기에 마땅하지 않자 ‘사회적 기업’ 등록도 애써 보았으나, 행정의 문턱은 높았다.



그래도 2012년부터 파주교육지원청 토요제빵프로그램과 경기문화재단 공모사업 ‘소보루가 간다’라는 프로그램을 지원해주어 힘이 났다. 시몽제과의 소보루는 그냥 소보루가 아니다. ‘소중한 보석같은 루키들이 간다’는 뜻이다. 여기 오는 아이들이 소중한 보석이고, 사람들이 소보루를 좋아하듯이 이 아이들도 사랑받았으면 하는 바람이 담긴 이름이다.



이외에도 학교 명예교사로 제빵이나 쇼콜라티에(초콜렛요리사) 강의도 하고, 문산여고, 문산제일고, 금릉중학교에 진로콘서트 초빙강사로 나가면서 그의 소망인 장애인 제빵교육센터 건립을 위해 오늘도 뛰고 있다.



 





파주고 쇼콜라티에 강의 중인 김남중씨. 



 



 



파리에서 결혼하고 큰 아이도 낳아



김남중 씨가 장애우 제빵교육을 하게 된 것처럼 이 부부의 만남도 운명적이었다. 김남중 씨는 재즈피아노를 공부하러 프랑스에 갔다가 제빵일을 하게 되었다. 파주 적성 시골 출신이라 빵맛도 모르고, 많이 먹어보지도 못했는데, 우연히 파리의 빵 맛에 끌려 ‘파리 르 꼬르동블루’(제빵기술) 학교를 졸업했다. 당시 제빵공부를 하면서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역전으로 손님을 픽업하러 나갔다 만난 사람이 부인 김보경 씨이다. 당시 김보경 씨는 영국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렇게 만난 두 사람은 열애를 하고, 파리에서 큰 아이를 낳고 귀국했다. 김보경 씨 부모님은 반대가 극심했다. ‘돈도 없고, 빽도 없고, 학벌도 없다’며 한국에 들어왔는데도 인정해주지 않았다. 그래도 부인은 남편이 ‘중심이 있고 성실하다’는 믿음으로 결혼했고, 세 아들을 낳아 잘 키우고 있다. 김보경 씨가 “지금은 우리 부모님이 저보다 남편을 더 신뢰해요”라며 자랑한다.



 



그 어떤 시련도 막을 수 없는 부부의 열정



열심히 살고 있으나, 고난도 많았다.



2011년 웅담리 직천저수지 방둑이 무너져서 집들이 휩쓸려 갔다. 그 빗속에 김남중 씨 집이 수해를 당했다. 3개월 동안 아이 셋과 마을 회관에서 살면서도 독거노인 봉사를 계속 다녔다. 어느날 한 노인이 ‘짱구 과자 세 봉지와 바나나 우유 두 개, 요구르트 한 줄’을 사들고 와서 고마움을 전하는데, 그 선물을 받고 부인은 한참을 울었다고 한다. 이런 사랑으로 힘을 낸다.



2013년에는 부인 김보경 씨도 유방암에 걸려 수술하고 치료중이다. 이 일로 아이들 미술심리치료는 못하고 있지만, 옆에서 열심히 남편을 도와주고 있다.



 





장애인 제빵교육센터를 설립하기 위해 남경필 도지사를 만다다.



 



 



발달장애아가 제빵 전문가로 클 수 있다는 확신



올해는 파주교육지원청의 지원으로 ‘빵도 굽고 꿈도 굽고’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8년여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김남중 씨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발달장애아들이 뇌장애만이 아니라, 점점 커가면서 소근육 대근육도 굳어버리는데, 굳기 전에 직업 교육이 이루어진다면 충분히 전문적인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증표가 시몽제과에 4년째 다니고 있는 김민재(고3)와 2년차 윤민석이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계속 일할 수 있도록 일터도 만들 수 있다고 전망한다. 군부대에 납품하는 생일케잌이나 빵을 아이들이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확신으로 작년에 의정부 북부청사까지 쫓아가 남경필 도지사와 면담을 갖고 ‘발달장애인을 위한 제빵 직업 교육’에 대한 지원을 약속받았지만,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인근 고양시에는 장애인 보호작업장이 9개나 되지만 파주시에는 하나도 없는 실정이다. 그러니, 아이들 직업교육이나 취업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실정. 안타까운 마음에 여기저기 문을 두드려 보지만 쉽지않다. 당장 올해 시행될 ‘발달장애인 권리 보장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을 파주시는 어떻게 준비하고 있는지….



그래도 김남중씨는 오늘도 이 아이들의 희망을 위해 제빵기술을 가르치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다. 



 



 



글 임현주 기자



사진 정형돈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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