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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나눔이다 - 엄순미 작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을 보고

입력 : 2015-07-22 12: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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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순미 작가의 일곱 번째 개인전을 보고



 





▲4월이 올때면 170×82cm



 




한말 일본의 자본에 의해 대량생산 되어 조선반도에 등장한 광목천은 당시 집집마다 아낙네의 고달픈 노동으로 소량생산 되던 직조생산구조에 큰 타격을 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정과 상관없이 광목천은 광범위하게 민중에게 퍼져 나갔다. 바로 가격이 싼 까닭이었다. 사람들은 광목천을 홀대하기도 하고 천시하기도 했으나 싸다는 점 때문에 그 쓰임새는 날로 확대되었다. 어쨌거나 민중에게 널리 퍼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광목천은 이제 오랜 세월 동안 좋건 싫건 간에 우리 삶과 근대사를 함께 하여 왔다.





 





▲그리운 영숙언니 48×43cm 광목, 먹, 혼합



 



이 광목천은 무명천에 비하면 확실히 격이 낮아 보이긴 하다. 하지만 이 홀대받는 싸구려 천에 엄순미 작가가 수묵으로 구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거꾸로 말하면, 아무리 스스로 내세울 것 없는 존재라 하더라도 결국 강하게 움켜쥘 수밖에 없는 자신의 삶에 대한 지독한 애착과도 같은 숨길 수 없는 한 민초의 질긴 의식이며 주장으로 보인다.



 





▲봉기 씨 90×123cm



 



보통의 경우 수묵과 한지는 표현재료로써 불가분의 관계(?)를 맺어 오랜 세월 동안 예인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이 둘 간의 관계는 현대에 이르러 반드시 하나의 관계로 일치하지만은 않는다. 특히 회화의 재료로써 볼 때 각자가 반드시 서로를 필요로 할 이유가 성립하지 않음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점에서 엄순미 작가의 작업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내 마음 속 부적 127×102cm



 



엄순미 작가는 오랜 기간 동안 주로 광목천에 작업을 하여 왔다. 그가 취한 광목천은 수묵의 흡수력과 고임과 뱉어냄과 멈춤의 고요성에서 한지의 그것과 매우 유사성을 보이나 실오라기의 집합체라는 특성 때문에 한지의 미려함과는 사뭇 다른 질감을 선사한다.



 



작가는 여기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았다. 그가 본 사회의 현상과 몸 안에 꿈틀대는 생명의 이야기와 희망을 까칠칠한 광목천에 구사한다.



 



바로 이 점이다. 그는 여기에 떠나간 이를 그렸고 자신의 무의식 세계를 표현하고자 했으며 이 시대를 살아가는 작가로서 외면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과 질곡을 내면화하여 드러냈다. 여기에는 이성으로 판단하여 그린다기보다는 몸에서 분출하고자 하는 내적 에너지의 자연스러운 발로로 보이는 그 무엇이 있다. 작가는 까칠까칠한 광목천에 자신의 내면을 주문과도 같은 문자로 새겼다. 거칠면서도 섬세한 붓질로 긁어대는 목소리와 형상은 또 다른 언어성을 내포한다. 그리하여 무속의 제의의식이나 토템과도 같은 그 어떤 심연의 세계로 이끌어 가는 이것은 엄순미 작가의 비논리가 던져주는 강한 설득논리이이며 카타르시스인 것이다. 바로 이 점에서 작가가 쏟아 내는 다음 화행의 여정이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화가 김종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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