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사든 고장이 보장됩니다.’

세르주 라투슈의 『낭비사회를 넘어서』를 읽으면서 ‘무엇을 사든 고장이 보장됩니다.’라는 의미에 당혹스러웠다. 자본주의는 제품이 소비되어야 성장이 가능한 사회다. 그러므로 제품이 소비되는 것을 계획적으로 해야 한다. 이것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차원의 문제이다. 성장 경제의 논리는 제품의 생산이 멈추거나 느려진다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제품을 점점 더 많이 생산함과 동시에 제품을 점점 더 많이 소비해야 한다.

프랑스의 대표적인 성장반대론자, 탈성장주의자인 저자는 이런 현상을 ‘계획적 진부화(planned obsolescence)’ 라고 진단한다. 진부화에는 세 종류가 있다. 하나, 기술적 진부화다. 기술적 진보에 따라 제품이 구식이 되는 것이다. 둘, 심리적 진부화다. 기술의 혁신과는 상관없는 유행이나 광고에 의해서 제품이 구식이 되는 것이다. 셋, 계획적 진부화다. 계획적 진부화는 말 그대로 인위적으로 제품의 수명을 위조하고 단축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는데도 불구화고 제품이 빨리 고장나도록 하는 것이다. 사업이 성장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하더라도 계획적 진부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우리들로 하여금 소비를 자극하여 낭비를 확산시킨다는 것이다.

성장 사회에서 소비는 절대적이다. 그런데 소비를 하기 위해서는 제품을 '고장이 보장되게' 반(反) 영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계획적 진부화는 소비를 촉진시켜 산업을 성장하게 하는 아주 매력적이며 진보적인 계획으로 포장된다. 소비하는 사람에게도 계획적 진부화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믿게 하려고 쓰레기마저 ‘진보적 폐기’ 혹은 ‘창조적 쓰레기’라고 부를 정도다.

하지만 저자는 계획적 진부화를 멈추지 않는다면 우리 사회가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비정상적으로 파국을 맞이할 것이라고 하였다. 쓰레기에서 쏟아져 나는 각종 유해물질로 인해 지구의 생태계가 치명적으로 위협을 받고 있다. 또한 저자는 우리가 낭비 사회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검약과 자기 통제(autolimitation)’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검약이라고 해서 굳이 기술적 편리함을 거부할 필요는 없다. 에너지의 사용량을 줄이기 위해 촛불을 사용하는 것은 시대착오적이다. 그보다는 에너지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 더 중요하다. 생태 발자국(ecological footprint)을 줄이거나 계획적 재활용을 하거나 제품을 오래 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계획적 진부화로 제품을 마모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인간마저 기계처럼 버려질 지 모른다. 이러한 ‘인간의 진부화’를 걱정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나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