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⑤ “사랑을 택하고, 사랑을 택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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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5
베로니카 안 수 영 하얀 초록 도서관장
오랜만에 하얀초록을 찾았다.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있고, 그 사람이 항상 거기에 있다는 건 정말 감사한 일이다.
하얀초록 도서관은 정종순씨(지금은 강화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다)가 2002년 금촌초등학교 앞에 조그맣게 시작하였다. 좁은 도서관에는 학교를 파한 아이들이 바글바글 와서 책 읽어주는 정종순 관장의 입을 쳐다보곤 했다. 그 도서관은 금촌시네마 뒤로 옮겨졌다가, 경제적 이유 때문에 닫게 된 것을 안수영씨가 자신의 집으로 다시 옮겼다. 베로니카 안수영(세례명 베로니카)씨는 2005년도부터 이 도서관을 맡아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살고 있다.
자기 집을 도서관으로 내놓고
오랜만에 찾았더니, 도서관 앞 마당 너른 집은 없고, 공구회사가 3층 건물로 크게 들어서 있어 어리둥절했다. 그 작은 집을 빌려 마당에서 작은 음악회도 하고, 마을 할머니들을 위한 음악방송도 했었는데...집주인이 집을 파는 바람에 그 공간이 없어졌지만, 그 자리에 들어선 공구회사가 측량을 하면서 땅 7평을 되찾아 도서관앞 마당이 넓어져 있었다. 그 마당에는 ‘홍조 전시회’ 팻말이 있었다. 하얀초록에 새로 같이 살게 된 홍조의 그림이 가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별 볼일 없는데 인터뷰 한다고 내저었지만, 신문을 보더니 “소시민을 주인공으로 하시네요.”라며 허락했다.
올해 나이 48세. 30대부터 그녀는 자기 집 한칸을 내놓고, 또 한 칸을 내놓으며 이 도서관을 꾸려왔다. 이 도서관의 모습은 안수영씨 역사라고 볼 수 있다. 지금은 대문옆 방 한칸에 부부가 살고, 햇살 가득 드는 방과 마루, 부엌은 아이들 차지이다.
행사 줄이고 아이들 하나 하나 살피고자...
“여기 오는 아이들이 힘든 아이들이잖아요. 그 아이들을 하나하나 감싸주고 살펴주어야하는데, 그동안 도서관 일만 한 것 아닌가 해요.” 작년부터 이런 생각이 들어 그녀는 행사도 줄이고, 아이들에게 집중하기로 각도를 잡았다. “에너지를 쓸모없는 곳에 쓸 필요가 없다. 공무원 비위 맞출 필요도 없고. 예산 적어도 좋다. 내가 보람되는 것만 하자.” 그래서 지금은 화요일 중국어, 금요일 북아트, 주말에는 임진강 걷기만을 한다 했다.
안수영 관장이 특별히 하는 활동 하나는 목요일마다 새터민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러 가는 것이다. 그녀는 아이들에게 한글을 가나다가 아니라 ‘책 읽어주기’로 가르친다. ‘요즘은 [이오덕 일기]를 읽으면서 선생님처럼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또 ‘아이들이 ‘시’를 좋아하고 읽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다시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가고 있어요”
하얀초록 애들 중 커서 시집가서 아기 낳은 애도 있는데, 다시 애를 키워야 할 처지가 되었다. 엄마 없는 5남매 아이들 중 어린아이 두아이를 보듬고 있다. “책으로 세상을 밝게 해보자 그랬는데, 또 다시 아이들을 돌보는 일로 가고 있어요. 아기들이 들어오니까.” 지금은 이 도서관에서 4살, 6살 어린 아이와 중3이 같이 살고 있고, 큰 세 여자아이들은 아랫집에 살고 있다. 내년에 고등학교 진학하는 갑돌이(가명)가 면접과 글쓰기 시험을 본 얘기, 도서관 봉사자 아이들의 꿈이 ‘세무공무원’이어서 놀랐던 얘기, 마음의 상처가 커서 사람들을 기피하는 아이 얘기. 대학을 나와도 50%가 비정규직이 되는 세상을 슬퍼하며 엄마의 마음을 나눴다.
제가 좋아하는 그림책은 [나무를 심는 사람]
“아이들이 돌아와요. 여기서 향수를 느끼는 것 같아요. 명수(가명)란 놈도 전화 와서 풀죽은 목소리로, ‘안녕히 계셔요. 그동안 돌봐줘서 고마웠어요’ 그래요. ‘너 죽을려고 그래?’ ‘네. 다리 위에요.’ ‘야~ 빨리 와라. 피자 사줄게.’ 그러더니 금방 오더라구요. 진짜 죽으려고 했겠어요. 그리고는 와서 혼자 놀다 가요.” 하얀초록은 이미 아이들이 돌아올 고향이 되어 있었다.
“아이들이 부모의 모습을 따라가잖아요. 어느 신부님이 말씀하셨어요. 사랑을 택하고 사랑을 택하라.” 안수영 관장이 아이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사랑’이었고, 아이들이 따라했으면 하는 것도 ‘사랑’이었다. 그는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그림책 [나무를 심는 사람]를 얘기를 하다가, 컵 두 개를 들고 왔다. 그림책까지 펼치며 말했다. 불모지에 나무를 심고 심으니 물이 생기고, 물이 생기니 새가 생기고, 새가 오니 사람이 찾아오고, 사람들이 춤추고. 그런데 사람들은 정작 누가 나무를 심었는지 모르고....“저는 사람들이 춤추는 이 장면이 좋아서 컵에 그렸어요.” 그의 손에 들린 컵에는 춤추는 사람과, 나무가 그려져 있었다.
[하얀초록도서관] 파주시 금월로 73-10번지
? 오후 2~8시 개관/ 매주 월, 일요일 휴관
? 후원계좌 농협 351-0575-6568-13
글·사진 | 임현주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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