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⑳ 웹툰작가 주호민 씨 웹툰작가 주호민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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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여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여름 휴가를 맞는 방법은 여러 가지 일 것이다. 어린 시절, 집 뒷 마당 평상에 드러누워 만화책을 보며 지내던 여름방학의 그 맛은 잊혀지지 않는다. 만화를 보던 맛에는 햇볕의 기운과 바람도 있었고, 찐 감자와 쫍쪼름한 소금도 있었지만, 이야기에 푹 빠져서 정말이지 ‘시간 가는 줄 모르는’ 맛이 있었다.
그 맛을 올 여름에 찾아볼까?
한국 만화 명작 [신과 함께]
여기 파주 운정에 우리나라 웹툰의 대표작가중 한 사람인 주호민 작가가 살고 있다.
1981년 서울태생인 그는 직업전문학교에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하다가 중간에 그만 두고 군대로 입대했다. 파주시 탄현면 101여단, 북한 땅이 마주보이는 임진강 하구 초소에서 찬 바람을 맞으며 군생활을 마쳤다. 그는 제대하자마자 군대에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짬>이란 웹툰을 인터넷에 연재했는데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이 작품으로 2006년 독자만화대상 신인작가상을 수상하고, 단행본으로 출판되어 2만부가 팔렸다. 이어 [짬 시즌2], 88만원 세대의 꿈과 현실을 다룬 [무한동력] 등을 연재했다.
그리고 2010년 [신과 함께] 저승편을 시작으로 3년 동안 이승편, 신화편까지 3부작을 완성하여, 신세대들의 웹툰 작가에서 대한민국 대표작가로 자리매김하였다.
[신과함께-저승편]은 2010년, 2011년 독자만화대상 온라인만화상, 부천만화대상 우수이야기만화상, 대한민국 컨텐츠어워드 만화대상(대통령상), 독자만화대상 대상을 수상했다. 더불어 이 작품은 서울신문과 한국만화영상진흥원이 주최해서 만화가, 학계, 출판계, 평론계 전문가 100명이 선정한 ‘한국 만화 명작 100선’에 뽑히기도 했다.
[신과 함께]가 연재되고 있을 당시부터 영화 가상캐스팅 논쟁을 벌이거나, ‘진기한’ 변호사에게 저승 변호를 의뢰하겠다는 독자들의 댓글이 줄을 이었다. 댓글과 별점을 주는 독자만도 회당 2~3만을 넘으니 그의 작품이 얼마나 사랑을 받았는지(지금도 별점은 늘고있다)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이 작품은 뮤지컬(서울예술단 정기공연)로 재탄생하여 지난 7월 12일까지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었다. 단행본으로 30만부가 팔렸고, 일본 수출 라이선스 계약도 맺어 [신과 함께 리메이크]가 일본에서 나오고 있다. ‘국가대표’를 제작했던 김용화 감독이 영화화하며 드라마 제작까지 예정되어 있다. [무한동력]도 9월부터 대학로에서 뮤지컬로 공연된다. 콘텐츠의 힘을 본다.
▲주호민은 육아에 충실한 작가이다.
3살 아들 키우는 ‘파주스님’ 주호민
그의 별명은 파주스님이다. 친구 이말년 작가가 붙여준 별명이다. 머리를 스님처럼 깎고 다닌 지 10년이 되었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머리숱이 적어서 그냥 밀었는데 편해서 계속 이렇게 살아요.” 동글게 민 머리 아래 웃는 눈매는 3살 아이를 둔 아빠 같지 않고, 순박한 청년의 눈이었다.
요새는 작업을 모두 컴퓨터와 테블릿으로 한다. “제가 웹하드에 원고를 올리면, 어시스턴트가 채색하고 배경을 그려서 웹에 올리고, 그럼 제가 확인해요. 제 어시는 부산에 있어요.” 예전에 있던 문하생 개념의 작가들은 없어졌다. 요새는 처음부터 실력 좋은 사람을 어시스턴트로 뽑아서 보수를 주는 방식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작품을 완성할 때까지 작가와 어시스턴트가 얼굴도 못보는 경우가 다반사라 했다.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일하는 시대가 되었다.
그는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구상하고 콘티를 짜고, 목요일과 금요일에 그림 그리는 일을 한다. 수요일과 토요일, 일요일은 당연히 육아시간이다(그가 아빠가 된 이야기는 <셋이서 쑥> 작품에 담겨있다). 아이와는 놀이터에서, 일러스트레이터인 부인과는 출판단지 ‘지혜의 숲’ 도서관에서 자주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임신, 출산, 육아 이야기를 담은 '셋이서 쑥'
“낙서쟁이들이 결국 만화가가 되더라”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이 만화가였다. 명랑만화를 좋아해서 ‘아기공룡둘리’, ‘심슨 가족’, ‘맹꽁이 서당’, ‘로봇 찌빠’를 즐겨보았다.
서울에서 태어나고 중학교 때 일산으로 이사왔다. 당시 고양시는 비평준화지역이어서 고등학교도 시험을 봐서 들어갔다. 고교시절에도 열심히 공부했다.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돌아볼 때 가장 아쉬운 것을 물었다. 연애를 못해본 것이 가장 아쉽단다. 그리고 “너무 많은 시간을 공부에게 허비한 것 같아요.... 학원을 안다녔다면 뭐라도 하지 않았을까요? 잉여시간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국에서는, 창고에서 음악 만들고... 그러다가 회사를 만들기도 하고... 무엇을 해봐야지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알텐데. 그것을 해볼 시간도 없었으니...” 지금의 청소년들도 너무 많은 시간을 공부에만 쏟고 있으니 안타깝다는 말이다.
그는 교실에서 무엇이든 끄적이는 낙서쟁이였다. 그는 “한 반에 한 두 명 있는 낙서쟁이가 결국 만화가가 되더라”라고 말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걸 계속 하다보면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닐까?
“남녀노소 모두 웹툰을 좋아하게 될 거예요.”
우리나라 만화계는 역사가 짧다. 1982년에 최초의 만화잡지 ‘보물섬’이 등장하고, 이어서 ‘아이큐 점프’가 주간 만화 잡지로 등장하고, 영챔프, 빅점프 등 만화전문 잡지가 계속 나왔다. 우리나라는 만화를 문화가 아니라 빌려보는 문화여서 만화방과 대여점을 통해 만화가 보급되었다. 이때부터 일본 만화가 본격 수입되었다. 역사와 전통이 오랜 일본만화는 한국만화보다 많은 인기를 끌어 한국만화계를 잠식했다. 2000년대 초반은 만화계의 암흑기라 한다.
그러다가 2003년 다음 포털에 ‘만화속세상’이라는 웹툰 코너가 만들어지고, 2004년 ‘네이버 웹툰’이 생기면서 웹툰 시장 성장하기 시작했다. 지금은 웹툰 서비스 플랫폼이 35개가 생겼고, 만화학과 출신의 작가들도 많이 배출되어 다양한 장르의 웹툰이 연재되고 있다. ‘크리틱엠’이나 ‘에이코믹스’같은 만화평론 웹진도 생겨 만화계가 질적으로 발전할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주호민 작가는 아직도 웹툰이 젊은 세대의 문화로 인식되는 것에 대해 아쉬워했다.
“웹툰의 역사가 짧아서 만화가도 독자도 20~30대예요. 독자와 만화가가 같이 커가고 있고, 어렸을 때 웹툰을 보던 사람들은 커서도 볼 것이므로 앞으로는 웹툰의 소재나 주제도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도록 깊어져갈 거예요. 제 작품도 남녀노소 모두 좋아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파주에 사니까, 임진각 삐라 풍선이 작품 소재가 되어
그는 요새 [만화전쟁]이라는 웹툰을 ‘피키캐스트’에 연재하고 있다. 파주에 사니까 파주 관련 뉴스는 더 관심을 갖고 보게 되고, 그래서 임진각 대북전단 살포 뉴스를 보다가 구상을 하게 되었다.
▲현재 피키캐스트에 연재중인 '만화전쟁'
보수단체 회원인 할아버지가 주인공 만화가의 만화를 대북전단 풍선에 넣어 날려보냈는데, 그 만화가 북한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급기야 다음 호 만화가 궁금해서 노크 귀순을 하는 사람까지 나타난다. 이에 국정원과 북한의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이 만화를 이용하여 체제심리작전을 펼치려한다는 전쟁을 은유와 풍자로 재미있게 그려내고 있다. 지금 5화까지 연재되었는데, 회당 조회수가 벌써 21만이 넘는다. 다음 회가 무척 궁금해지는 만화이다.
신문 기사와 잡지, 책과 뉴스를 보면서 작품 구상을 하고, 실제로 임진각에도 나가보고, 새터민도 만나보면서 작품을 세부적으로 구상했다고 한다.
‘다른 작가에 비해 작가 주호민의 강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오래 생각하더니 웃으며 답을 한다. “모르겠는데요. 진짜로.”
무엇일까? 주호민 작가의 작품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나는 한 마디로 ‘내공’, 다른 말로 하면 ‘탄탄한 스토리’라 생각한다. 그에게는 무거운 주제를 일상의 감성으로 잘 버무려 내는 재주가 있다. 그래서 그에게 열광하는 것 아닐까? “사람이 있다. 과정이 있다. 감동이 있다.” 이 삼박자가 그의 작품에 살아있다. 아마도 그것은 화가이자 굉장한 독서가였던 아버지가 만든 환경에서 주호민 작가가 피어낸 꽃이 아닐까?
파주 시민 주호민의 대한민국 명작 만화 [신과 함께]가 곧 영화로도 나온다한다. 올 여름 [신과 함께]을 읽으며 우리나라 신들과 여름을 함께 보내시길 온국민에게 강추한다.
글 임현주 기자
사진 주호민 작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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