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㉕ ‘안녕, 전우치’ 하민석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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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메이션으로 왔다 '안녕, 전우치'
이 달 8일, ‘안녕, 전우치! 도술로봇대결전" 애니메이션이 개봉된다. 이 애니메이션은 하민석 작가의 [안녕, 전우치]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1974년 경남 김해생. 지금은 파주 탄현에 살면서, 헤이리 작가공방에서 작가 4명과 함께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외모는 전우치처럼 동글했으나, 말씨는 조용한 석이 같았다.
명랑 히어로 전우치의 대모험이 시작된다.
애니메이션 ‘안녕, 전우치! 도술로봇대결전"은 이런 줄거리를 갖고 있다.
‘조선시대에 백성을 괴롭히는 왕을 혼내준 뒤 입술 엘리베이터를 타고 500년의 시간을 훌쩍 넘어 2015년 현재로 오게 된 전우치는 서울 부암동으로 이사 온 초등학생 석이와, 무술 신동 산초를 만나게 되고 셋은 친구가 된다. 그사이 조선시대에서는 전우치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우당탕과 왕이 손잡고 전우치 복수를 계획하며 도술로봇을 만들고...."
이 애니메이션의 원작은 2007년부터 [개똥이네 놀이터]에 연재한 만화를 엮어 만든 만화책 [안녕, 전우치]이다. 이 만화는 출간 당시, 기발한 상상력과 재치있는 스토리와 캐릭터로 2009년 한국콘텐츠진흥원의 기획 지원작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애니를 만든 제작사 ‘얼리버드픽처스"는 해외의 우수 애니매이션을 수입해온 전문 수입사이다. 명탐정 코난, 원피스 등을 수입해왔으나, 해외 작품들이 우리의 정서를 온전히 담아내기에 한계가 있다는 생각에 직접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게 되었다 한다.
특히 이 영화에서 인상적이었던 음악은 ‘술탄 오브 더 디스코"의 프로듀서이자 보컬인 ‘나잠수"가 감독을 맡아 경쾌하고도 힘있는 OST를 완성했다.
▲보리출판사 발간 「안녕, 전우치」 ①②권
영역이 다르므로 원작을 얼마나 잘 살렸냐는 중요하지 않다
애니메이션은 만화와 다른 영역임이 확실하다. 원작이 주는 붓터치와 속도감 있는 전개, 과감한 생략과 집중 효과가 돋보이는 그림이 아쉬워서 물었다. 그러나, 하민석 작가는 간결하게 답했다. "영역이 다르므로 원작을 얼마나 잘 살렸냐는 중요하지 않다. 해석하는 것은 또 다른 영역이고, 존중되어야 한다." 맞는 말이다. 만화라는 장르가 주는 감동과 감성을 애니메이션에서 그대로 찾고자 하는 것부터가 잘못된 설정일 수 있다. 다만, 원작의 캐릭터나 스토리를 어떻게 잘 해석했는가에 초점을 맞춰야할 것이다.
"원작 속 캐릭터 디자인 컨셉을 유지하되 그림의 라인을 좀 더 명확히 하고 캐릭터 색감을 보완하는 방법을 택했습니다."
이것이 김대창 감독의 답이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을 비교하며 보는 것도 감상의 독특한 맛이 될 것이다.
2012년 개봉 예정이었는데 투자자를 모으느라 늦어졌다. 안타까운 일이다.
또 한 사람이 하는 만화 작업과 달리 공동작업이므로 시스템으로 해결해야하므로, 만화에서 주는 붓터치 느낌을 살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감독이 원작의 느낌을 살리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봅니다."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다른 영역이다. 소설과 영화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가장 좋은 학교
그에게 만화는 무엇일까?
하민석 작가는 3형제의 막내아들이다. 작가가 5살도 되기 전 일이었는데, 그 때 어머니가 만화방을 했다. 고무줄에 만화가 걸려있고, 어묵이랑 쫀쫀이 같은 간식거리를 같이 팔던 만화방이었다. 그 때는 글도 모른 채 만화를 보았다. 그것도 잠깐. 잊혀졌는데, 8살 때 입학 선물로 6살 위 큰 형이 독고탁 캐릭터를 노트에 그려줬다. 너무 좋아서 어디가서 볼 수 있냐고 물었다. 만화방이라는 대답에 그날부터 만화방을 매일 다녔다. 그리고 캐릭터 따라 그리고 구성도 해보았다. 그냥 재미있고 좋아서 했다.
본격적으로 만화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하고 들어간 대학교에서 떠돌면서이다. 학교는 안 가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거나, 만화방을 다녔다. 그때 "내가 만화를 좋아하는구나"라는 자각을 했다. 1학기 성적표가 몽땅 F였다. 큰 형님에게 말했더니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하라고 용기를 주어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학교를 정리했다. 다음해에 부산에 ‘부산만화예술전문대학교"가 생겨서 입학했다. 이때 동기들과 친구 어머니 식당 위 다락방에 작업실을 만들어 만화를 그리다 헤어졌다. 그리고, 다시 한국예술종합학교 애니매이션학과를 1년 다니다 그만두었다. 그리고 97년에 한겨레문화센터의 만화전문반 과정을 이수했다.
"학교라는 시스템이 제게는 안 맞았어요." 작가의 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기관이나 학교에서 배워야 한다는 관성이 있어요. 학교에서는 의지나 열정이 안 느껴져요. 작업하면서 스스로 배우고, 깨우치는 것이 가장 좋은 학교라 생각해요."
그는 ‘왜 만화를 하는가? 나는 누구인가?" 하는 고민을 20~30대에 많이 했다. 책을 보면서 탐구도 했지만, 작업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았다. 작가의 정체성도 작업하면서 만들어진다는 게 그의 신념이다.
웹툰과 게임에 몰두하는 것도 문화
졸업하고 났더니 만화가가 많아졌다. 웹툰이 활성화되어 다양한 소재, 다양한 작품들이 나오고 있고, 모바일로 넘어가면서 시장이 커지고 있다. 예전에는 스토리, 구성, 작화 등 모든 작업을 개인이 연마하기에 오랜 시간이 걸려 작가가 되었다면, 지금은 그림을 못 그려도 소재가 되거나, 스토리, 독특한 개성을 갖고 만화시장에 들어온다. 그만큼 진입장벽도 낮아졌고, 질적 편차도 무척 크다. "그렇지만 독자가 거르기 때문에 좋게본다." 고 했다.
아이들이 웹툰이나 컴에 매달려 있는 것은 문제가 아닐까해서 물었더니 단호히 대답한다. "웹툰과 피시게임에 몰두하는 것도 문화로 보아야한다. 애들이 책을 많이 보면 걱정 안 하면서, 만화나 웹툰을 많이 보면 걱정한다. 걱정으로만 보는 것이 문제이다. 아이들 입장에서 부모님이 좋다고 해주면 제대로 보고 즐기고 평가할 수 있는데, 나쁘다 하지 마라 하면 혼란스럽게 된다. 문화로 즐길 수 있도록 해야한다."
그는 즐기면서 자라나는 세대가 만화를 제대로 평가하고 평론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큰 서점 어린이 코너에 가면 계급이 느껴져요. 맨 앞줄에 유명 해외작가 그림책, 그 다음 한국작가 그림책, 동화책, 맨 끝 구석에 만화책이 배열되어 있지요." 만화를 제대로 즐길 수 있는 문화가 되기를...
상상을 펼쳐 문화영토를 넓히자!!
그는 지금 헤이리 작가공방에서 만화를 그리고 있다. 김흥모 작가가 제주도로 가게 되면서 그가 운영하던 <뜬금없이 만화방>을 맡게 되었는데, 이제는 네 명이 함께 쓰는 작업실이 되었다. 작업실 앞마당에서 가을 햇살을 받으며 작업실 동무들과 ‘애니메이션 전우치" 시사회 뒷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작가공방 동료인 신명환 작가와 류창창 작가와 환담을 나누고 있다.
우리나라 극장판 애니메이션 역사는 1976년 ‘홍길동전"과, ‘로버트 태권브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이후 매년 작품이 한 두 개씩 나오고 있으나, 아직도 투자자를 모으기 어려울 정도로 시장이 탄탄하지 않다. 불안정한 수익 구조 및 이와 대비되는 하청 애니메이션 시스템, 90년대 중반부터 정부 차원에서 애니메이션 산업 지원이 시작되었으나, 먹튀 작품 논란, 애니메이션 쿼터제 부작용 등등 적지 않은 문제를 갖고 있다. 그러나 2007년 ‘여우비"가 70만, 2011년 ‘마당을 나온 암탉"이 220만 관객이 영화관을 찾은 데서 볼 수 있듯이 그래도 희망은 계속되고 있다. (나무위키의 ‘한국 애니메이션" 참고)
만화를 문화의 영역으로 존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좋은 만화 원작이 나오고, 이를 바탕으로 한 좋은 애니메이션이 줄을 잇는다면 서점 어린이코너 뒷켠에 숨어있는 만화가 서점가판 앞자리로 옮겨올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우리의 문화 영토를 넓히는 길이 아닐까?
나뭇잎과 길바닥에 흩어지는 저 햇살들처럼 끝없는 상상력이 우리 품으로 들어오는 것을 상상해보았다.
글 · 사진 임현주 기자
#26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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