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세월호 진상 규명을 위한 20일간의 도보순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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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와 화해’ 사람의 길을 만들고자
글•사진 | 최석진 성공회 신부
저는 문발동에 살고 있는 파주를 사랑하는 성공회 신부입니다.
지난 9월 29일 성공회 정의평화 사제단의 일원으로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애쓰는 시민들에게 힘을 보태기 위해 진도 팽목항에서 광화문까지 도보순례를 떠났습니다. 총 19박 20일, 약 560km의 일정이었습니다. 예전에 3박 4일 도보 행사를 위해서도 6개월 전부터 준비를 했었지만 이번 도보순례는 준비기간이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과거 어떤 도보순례 체험에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은혜로운 시간이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을 위해 왜 하필 도보순례를 선택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그에 대한 제 대답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부이신 예수는 메시아로서의 역할을 본격적으로 수행했던 3년을 온전히 길 위에서 보냈고 생의 마지막도 십자가의 길을 걸음으로써 마쳤습니다. 그분은 자신을 가리켜 ‘길’이라고 까지 하였습니다. 이런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길을 걷는다는 것은 예수를 걷는 것이고 걸음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저희는 매일 묵상과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걷고 마무리하고 그 내용들을 기사로 쓰고 영어와 일어로 번역하여 메일로 보내면서 20일을 지냈습니다.
동학혁명, 3.1운동, 6.25 전후 양민 학살사건, 5.18민주화운동을 되새기고 세월호 안산분향소를 지나 광화문까지, 저희가 지나온 곳 중에 단 한 곳만 빼고 모든 지역에 권력에 의한 양민 학살의 아픔이 깃들어 있었습니다. 60여 년 전 이승만 정권부터 권력에 의해 희생된 국민들의 수가 100만을 넘습니다. 제 아버지 세대가 청춘이었을 때 일어났고 이어왔던 이 땅의 홀로코스트, 킬링필드의 역사는 지금까지 한 번도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나라의 슬프고 처절한 학살의 역사가 세월호 참사 사건으로 이어졌음을 온 몸과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앞선 세대의 정보, 특히 생존에 위협이 되는 정보는 DNA를 통해 전달
진실이 은폐되고 왜곡된, 100만이 넘는 무고한 사람들의 학살 사건과 같은 경험은 두려움, 분노, 회의적 감정, 무기력, 회피 등의 형태로 유전되고 DNA를 통해 전달되며 개인의 안전에 지나치게 집착하고 타인을 외면하는 사회분위기를 형성하게 됩니다. 한 마디로 병든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병든 역사와 사회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용서와 화해가 일어나야하고 인간됨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이 사회적 차원에서 지속되어야 합니다. 용서와 화해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먼저 용서를 구하는 자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수많은 양민들의 시신이 산을 이루고 온 강을 붉게 물들였어도 아무도 용서를 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진상규명은 우리 민족의 치유와 회복을 위해 우리가 꼭 함께 가야할 순례의 길입니다.
다행히 우리의 DNA에는 사회의 진정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긍정적인 의식과 갈망도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동학혁명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사회를 개혁한 에너지는 권력자들이 아니라 민중으로부터 발생했으며 그 내면에는 ‘인간됨’을 회복하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과 실존적인 사상이 있었습니다.
사람이 다니는 길은 사람만이 만들 수 있습니다.
이 사회의 인간됨을 회복하는 길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고 그 길은 사람인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팽목항에서 한 걸음씩 옮겼을 뿐인데 어느덧 광화문이었습니다. 방향만 잃지 않고 함께 간다면 우리도 언젠가는 치유와 회복이라는 목적지에 도달할 날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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