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를 정의롭게 하는 사회적경제, 좋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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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진 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전북 장수군 하늘소마을 주민)
시골생활을 시작한 지 어느덧 6년이 되었습니다. 0동 0호에 사는 사람이 아니라 시골 마을 주민으로 살아온 지도 6년, 유기농 제철 농사를 지은 지도 6년이 되었습니다. 한 해 두 해가 쌓여 어느덧 세월이 되었네요. 여전히 초보농부이지만 이마에 잔주름, 검어진 피부색, 거칠거칠한 손마디가 부끄럽지 않은 지나온 6년 세월이 앞으로 살아갈 더 많은 시간들을 기둥처럼 든든히 받쳐주고 있습니다.
유기농 제철 농부의 삶을 선물한 하늘소마을
제가 가족들과 함께 시골생활을 시작한 곳은 전북 장수군 계남면 해발 520m 백화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하늘소마을입니다. 각기 다른 곳에서 시골생활과 농부의 꿈을 안고 모여든 열 두 가구 40여명의 주민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지요. 마을의 출발은 10여 년 전 장수군의 순환농법 마을 조성이었습니다.
순환농법시범단지 모집에 귀농자들이 모이게 되어 집터를 다듬어 집을 짓고, 마을이름도 스스로 짓고 밤샘 토론을 반복하며 생활의 원칙도 정하고 농사의 원칙도 정했다고 합니다. 유기농 제철 농사를 짓고 합성계면활성제가 포함된 세제 등은 사용하지 않고 생태화장실을 사용하며 임의 소각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은 지금까지도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처음 이 마을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아이들이 많은 마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살고 놀기에 함께 뛰어 놀 친구들이 많다는 건 참으로 매력적인 일이었기 때문이지요.
마을은 저희에게 유기농 제철 농의 삶을 선물로 주었지요. 마을도 사람들의 관계로 얽힌 곳이라 어쩌다 누군가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 때도 있고 또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주는 일도 있지만 같은 삶의 원칙과 태도를 견지하며 살아가는 이웃이 있다는 건 오래된 큰 나무 그늘 아래 있는 것처럼 두렵지 않게 내일을 또 기대해볼 수 있게 하는 힘입니다.
외지인이 아니라 지역주민으로...
초록누리협동조합으로 교육공동체 실현
저는 사실 귀농인이면서도 귀농이라는 말을 그닥 좋아하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농사를 시작한 우리들이 자랑스러워 대견하게 보아달라며 ‘귀농인입니다’ 하고 다녔지만 살수록 귀농이라는 단어가 시골사람과 다른 어떤 면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은근히 드러내는 말처럼 느껴져서 불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귀농인이라는 특별함이 농산물 판매의 스토리텔링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지요. 거기에 누군가가 하늘소마을을 외지인마을로 표현하는 것을 듣게 되면서 장수사람, 하늘소마을 사람으로 살기 위해 이사온 나, 우리, 마을에 대해 곱씹어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늘소마을은 장수군 유기농 농사 확대에 기여했습니다. 장수친환경영농조합을 만드는 견인차 역할도 했고, 갈평마을(하늘소마을은 행정리상 갈평마을 소속입니다) 우렁이농법 논 단지를 조성하는 일에도 중심 역할을 했습니다. 각기 다른 직업을 가졌던 마을 사람들이 했던 일과, 재능으로 우리 지역을 조금 더 풍요롭게 할 수 있는 교육에 관심이 모아졌습니다. 도시에서 사람을 불러오지 않아도 지역 안에서 다양한 교육이 가능하다면, 이 교육이 우리 지역 아이들의 행복한 교육으로 지역주민들의 행복한 삶으로 이어질 수 있고, 공동체를 강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지요. 지역희망교육공동체를 만들기에 뜻을 모았습니다. 마을 안과 밖의 사람들이 모여 장수군 최초의 협동조합인 초록누리협동조합을 만들었습니다. 2년째 농어촌희망재단의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마을주민, 지역사람이 강사가 되어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지역에서 주민들을 만납니다. 장수교육지원청의 토요방과후 학교도 위탁 받아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하며 우리 스스로 우리 지역 삶을 풍요롭게 하고 있습니다.
먹거리 정의운동 지니스테이블
먹거리 기본권, 먹거리 접근권 확대를
저는 하늘소마을주민, 초록누리협동조합 기획이사 말고도 소셜벤처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입니다. 먹거리(Food) 정의(Justice)를 표방하는 지니스테이블은 시골로 이사와 농사를 지으면서 제가 만든 회사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농사지은걸 누가 함께 먹는가에는 관심을 두지 못했고 농사 자체가 신기하고 재미있었습니다. 연초록의 새싹, 어느덧 무성해지는 잎사귀와 열매들, 생명이란 이런 거구나, 이토록 신비하구나, 우리가 농사지으니 다 맛있구나 하고 말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가 농사지은 것은 누가 먹는가 유기농은 누가 먹는가에 대해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소득에 관계없이 누구나 우리가 농사지은 걸 드실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자료를 찾고 공부를 했습니다. 먹거리가 기본인권이 되어 누구나 좋은 먹거리에 접근할 수 있고, 건강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먹거리 기본권, 먹거리 접근권을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몇 번의 프로젝트를 시행하면서 먹거리양극화를 해소하는데 기여하는 소셜벤처를 창업하게 되었습니다. 뜻을 같이하는 국제슬로푸드한국협회, 소셜벤처 오방놀이터와 함께 먹거리정의 기금도 모금하고, 더 많은 시민들과 먹거리를 정의롭게 하는 소셜다이닝(먹거리정의를 이야기하는 30인의 밥상)을 매달 열기도 하고, 대구신당종합사회복지관과 함께 좋은 먹거리 접근권 확대를 위한 유기농 채소 공급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좋은 생산자들과 함께 생산지를 돌아보며 공정하고 바람직한 생산과 소비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합니다. 로컬푸드 슬로푸드 레스토랑을 만들어가는 셰프들과 함께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합니다. 저소득층이 자연스럽게 이용할 수 있는 시민식당을 만드는 일을 준비하고 있기도 합니다.
시골마을 주민으로, 지역 교육활동가로, 먹거리 정의를 이야기하는 사회적 경제인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을 수 있는 원동력은 바로 농사이고 마을입니다. 유기농 농사를 짓는 하늘소마을에 살아서 선물처럼 받게 된 일들, 그래서 농사를 예술이라고 하나 봅니다. 그래서 마을공동체를 학교라고 하나 봅니다. 시골 마을에 살며 사회적 경제를 꾸리는 일, 참 좋습니다! 참 괜찮습니다.
박 진 희 (Food & Justice 지니스테이블 대표/전북 장수군 하늘소마을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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