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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과 착오의 학교 ⑱ 할미손은 약손

입력 : 2015-12-04 19:51:00
수정 : 0000-00-00 00:00:00

시행과 착오의 학교 

볼 시(視), 다닐 행(行), 어그러질 착(錯), 깨달을 오(悟)라고 해서 각자의 행동을 관찰하고 삶의 어그러진 곳을 깨닫기 위한 배움터라는 의미입니다. 생활하면서 발생하는 시행착오를 발판삼아 좀 더 건강한 삶을 만들어가는데 도움이 되는 글을 나누고자 합니다.

 

할미손은 약손

 

어릴 적 무더운 여름엔 찬 음식을 많이 먹어서 배가 싸르르 아플 때가 종종 있었다. 그 때마다 나는 할머니께 달려가 배를 만져달라고 칭얼거렸고, 할머니는 까슬한 손으로 "할미 손은 약손." 하시면서 부드럽게 배를 어루만져주셨다. 항시 손발이 차다고 하셨지만 이 순간만은 손주의 아픈 배를 녹일 만큼 손은 따뜻했고, 그 온기에 저절로 잠이 들곤 했다. 손주를 걱정하고 아끼는 할머니의 마음이 거칠고 차가운 손도 부드럽고 따뜻하게 할 수 있었으리라.

 

이렇듯 우리가 모성이라고 느끼는 감정은 ‘촉각"과 많은 연관이 있다. 살과 살이 맞닿는 접촉은 관계를 형성하고 의사소통을 학습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모유수유를 하지 않았던 아이들이 자라서 사회성이 부족해지기 쉽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반증한다. 반대로 새로운 것을 학습할 때도 촉각은 중요하다. 아기들이 무엇이든지 잡고 입에 넣어보는 것은 맛 때문이 아니라, 입술과 혀 등 촉각이 예민한 부분을 통해 새로움 한껏 받아들이기 위해서이며, 고개를 가누고, 몸을 뒤집고, 걸음마를 뗄 때도 촉각을 활용해 새로운 몸의 균형을 학습해간다.

 

촉각은 오감 중 하나로 받아들여지긴 하지만, 촉각이라는 것은 실제론 다양한 감각이 섞여있다. 이를 ‘몸 감각" 혹은 ‘체성 감각(somatic senses)"이라고 한다. 보통 촉각하면 겉으로 보이는 살갗만 생각하기 쉽지만, 피부와 상피, 뼈, 관절, 근육, 내부 장기, 심혈관 등 전신에도 촉각은 두루 퍼져있다. 바깥 피부로 압력과 온도, 통증을 감각하듯이, 몸 안에서도 신체 조직끼리 밀치고 마찰하면서 서로 관계한다. 특히 체성 감각의 하나인 ‘고유감각"은 신체의 위치, 자세, 움직임을 감지하여 내부 장기와 뼈, 근육이 제 위치를 유지하게 한다. 이처럼 촉각은 다른 감각에 비해 미세하지만, 가장 넓게 분포하며 가장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그런데 이 촉각이 점점 무뎌지고 있다. 동의학에서 이런 증상을 불인(不仁)이라고 하는데, 인(仁)은 두 사람이 함께 있다는 뜻으로 서로 배려하고 교감하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반대로 불인(不仁)은 서로 교감되는 바가 없다는 의미이며 자기 몸조차도 반응하지 않음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보통 체표피부감각의 이상을 뜻하지만, 나아가 어깨 높이가 맞지 않거나 허리가 굽는 등 체형이 틀어지는 것 또한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자기 몸이 바른 자세가 아닌 것을 스스로 감지해내는 촉각(고유감각)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하루에도 수백 번 스마트폰을 ‘터치"한다. 그런데 주변사람과 살갗을 스치고 자신의 몸을 만져보고 자세를 관찰하는 건 하루에 몇 번이나 될까? 소셜네트워크라는 가상의 관계에 취해 타인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과도 교감하는 방법을 잊어버린 건 아닐까? 우리가 갈구하는 진정한 소통은 어쩌면 딱딱한 액정화면이 아니라 우리 주변의 보드라운 살결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글 카페 방하 봄동한의원 유창석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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