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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옛날이야기 ③ 1964년 겨울 파평면 임진강(3)

입력 : 2016-02-03 17:01:00
수정 : 0000-00-00 00:00:00

1964년 겨울 파평면 임진강(3)

 


1957년 눈내린 파주 문산시내

 

당시 한국에 파견되었다가 이 사진을 찍었던 미군은 엄청나게 추운 날이라고 했다. 지금도 파주 문산은 서울보다 평균 영하 3도가 더 춥다.


파주 파평면에서 60년대 태어나서 7~80년대 학교를 다닌 사람으로 기억하는 그 때의 겨울 아침은 몹시도 추웠고 다음 날은 전날보다 더 추웠고 그 다음날은 그 전날 이틀을 합친 것보다 더 추웠다는 기억뿐이다. 당시는 사흘은 춥고 나흘은 따뜻하던 삼한사온이 있던 시절인데도 고통스럽게 기억되는 이유는 겨울 아침 등굣길 때문이었다. 고향인 화석정 마을에서 두포리에 있는 초등학교까지 한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겨울아침 등굣길

집을 나서자 마자 손과 발이 시려워지기 시작하고 뺨은 얼음장을 비벼대는 듯이 추워지기 시작했다. 언몸을 덜덜 떨면서 10분쯤 더 가면 매네개울(율곡습지 공원)이 나오는데 동구밖을 나서기 전까지의 추위는 맛보기에 불과했다. 왼쪽은 임진강과 훤히 뚫려 강과 닿아 있고 오른쪽은 큰 산 때문에 그나마 비추는 아침햇살도 가려져버린 이곳은 아이들이 비명소리를 지를 정도로 거센 겨울강 바람이 불었다. 이때부터 십 여 명의 동네아이들이 한 둘씩 울기 시작했다. 발은 동동 구르고 손은 찢어질 듯이 아픈 뺨을 문지르면서 37번 국도를 따라 학교를 가는데 이 끔찍한 추위에도 집으로 되돌아가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다.

 

집으로 되돌아가봤자, “지게꾼 할테냐?”작대기 맞으니..

집으로 되돌아가봤자 그 시절에는 새마을 운동의 대대적인 계몽으로 가난을 벗어나려면 배워야 한다는 사상이 굳게 박혀 있는 부모들이 뺨을 후려치고 내쫓거나 지게 작대기를 휘둘러 학교가라고 내쫓았기 때문이었다. 그때는 동네의 어머니 아버지들은 유행어라도 외운 듯이 “공부안하면 나중에 커서 남대문시장 지게꾼이나 할테냐?”라고 야단을 쳤다.


그렇게 좀 더 가다보면 똑같이 울면서 가는 무리들을 만나게 되는데 앞 동네 아이들이었다. 37번 국도를 따라 20여명의 어린아이들이 그 나이에 지을 수 있는 표정중 가장 고통스런 표정으로 울면서 걸어가는데 마치 상여 나갈 때 뒤를 따르며 우는 모습 같았다.

 

두포리 전진대교 전 산 밑 응달길, 몸과 귀를 칼로 베는 것같이

이게 끝이 아니다. 가장 힘든곳이 남았다.

 

겨울 아침 등굣길중 가장 고통스러웠던 곳은 지금의 두포리 전진대교 가기전 산 밑의 응달진 길이었다. 이 곳의 임진강 겨울바람처럼 최선을 다해서 부는 독한 바람은 지금까지도 맞아본 적이 없다. 춥고 쓰리고 맵고 온몸과 귀를 칼로 베는 것 같이 아팠다. 참고 참았던 울음을 여기쯤 와서 터트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렇게 힘겹게 강추위와 싸우면서 겨우 학교에 도착하면 아직 난로에 불이 없어도, 교실에서는 바람이 없어서 온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6년간 다닌 파평면 두포리의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 중 하나가 저 빌어먹을 율곡리-두포리 사이의 응달진 등굣길을 걷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었다.

하지만 파주에 태어나 임진강 옆에 살면 겨울 칼바람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음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중학교는 문산시내로 가게 되었는데 똑같은 거리에 방향만 반대로 바뀌었고 이젠 산까지 넘어가야 했다.

 

다시 겨울 아침 임진강 옆으로 등교하라면 등교거부하리라.

만약 지금 다시 그 파주의 그 시절로 돌아가서 학생이 된다면 어떨까? 그 시절이 막 나가던 독재시절이라 혼식 분식을 강제해서 도시락에 보리밥 비율이 작다고 선생님이 10대씩 피멍 들게 때려도 참을 것이며, 봄이면 공부하는 학생들을 갑자기 군용트럭에 태워 자유다리 건너 통일촌으로 끌고가 논에 내려놓고 모내기 중노동을 시켜도 신나서 할 것이며, 민방위 훈련 연습한다고 학교뒷산에 토끼처럼 몰아넣고 싸이렌 울리는데 고개 들었다고 엉덩이에 빳따질을 해도 웃으면서 즐길 것이다.

 

하지만 겨울 아침 그 추위에 임진강 옆의 그길로 다시 등교하라고 한다면 맹세컨대, 대한민국 최초 자발적 등교거부 학생이자 최연소 학생인권 요구 투사가 될 것이며, 이 조차 뜻대로 되지 않는다면 가출해서 문산역에서 20분에 출발하던 기차를 타고 서울역 앞의 남대문 시장으로 곧장 가게 될 것이 틀림없다. 어린나이에도 산에서 나무를 하느라 지게질은 익숙하기에 남대문에서 지게꾼하는 것이 차라리 귀가 떨어져 나가는 그 겨울의 등굣길 추위보다 덜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파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춥지만 않으면. 지금도 파주 파평면의 임진강변은 아름답다. 겨울아침에 그길로 등교를 하지 않는다면….

 

<다음 호에 계속>

 

 

 

파주 파평면 율곡리 화석정 사람 김현국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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