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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㉛ ‘욱채정육점’ 사장 정욱채씨

입력 : 2016-02-03 12:52:00
수정 : 0000-00-00 00:00:00

“고향 적성도 살리고, 봉사도 하면서 살고 싶어요”

 

 

“어서오세요. 어머니” 경쾌한 목소리로 손님을 맞는다.

70대 넘어선 듯한 할머니가 뒷짐지고 들어오신다.

“간 고기 줘. 만두속 할 거야.”

“이거 한근에 3,000원이에요.” 정사장은 미리 갈아놓은 돼지고기를 펼쳐보이며 말했다.

“맛있는 거로 해야지.”

“그럼 앞다리로 해드릴까? 목살로 해드릴까?”

“그건 얼만데?”

“앞다리 6,900원, 목살은 9,900원. 얼마나 갈아드릴까?”

“근 반만 해.”

 

설을 앞 둔 장날 적성 오일장을 찾았다. ‘내고향 적성’을 살리겠다고, 적성장터에 정육점을 낸 젊은이가 있다고 해서 그를 만나러 왔다. 장날이어서, 가게 앞에 테이블을 갖다놓고 몇가지 포장육을 차려놓고는, 무선마이크로 소리치고 있었다. 뽕짝 노래도 크게 틀어놓고.

 

욱채정육점, 이름 걸고 정직하게 하겠다는 뜻

[욱채정육점] 사장 정욱채씨. 75년생이니 마흔이 넘었다. 고등학교까지 적성면에서 나온 진짜배기 적성 사람이다. 올해로 정육 경력만 15년째인 정 사장은 여러 마트에서 수입육 담당, 정육 담당, 한우 담당을 두루 거친 정육 전문가다. 그래서 고기만 봐도 ‘딱 보면 알수 있다’고 큰소리를 친다.

작년에 적성장터에 정육점을 차렸는데, 가게 이름이 [욱채정육점]이다.

 

“작은 밴드 페스티벌로 적성장 특성화시키고 싶어”

“제 이름을 건 이유는 제 이름 걸고 정직하게 하겠다는 뜻입니다.” 적성은 과거엔 한우마을로 유명했다. 그래서 정육을 겸한 식당이 많다. 욱채정육점은 식당에 납품하지 않고 소매만 전문으로 한다. 그러니, 오는 손님들 한 분 한 분 소중히 대하고, 단골로 만들려고 노력한다.

 

40대면 이 적성 동네에서는 아주 젊은 사람에 속한다. 손님의 80%가 노인들이고, 상인들도 오래 장사를 한 나이드신 분들이 많다. 그런데 젊은 그가 적성에 정육점을 차린 이유는 뭘까?

“죽어가는 고향 살리려고 왔지요. 고향도 살리고, 봉사도 하면서 살고 싶어요.” 그는 지금도 적십자 활동을 하면서 독거노인을 돕고 있다.

 

적성은 89km2의 면적에 인구가 8,300여명에 불과하다. 면적은 문산의 2배, 운정 1동의 10배나 되는데, 인구는 문산의 17%, 운정1동의 22%이다. 더구나 1년 전과 비교해보니 인구가 300명이나 줄었다. 점점 인구가 줄어들고 있는데, 이런 곳에 젊은이가 고향을 살리자고 왔으니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정욱채 씨가 설을 맞아 장을 보러 온 손님에게 고기를 썰어주고 있다.

  

내 고향을 살리는 일 “작은 그림이 필요해요”

적성 시장에는 상인이 200여명 쯤 되는데 자신처럼 적성으로 돌아와 장사를 시작한 젊은 사람이 네 명이라 한다. 돈장군(식당), 떡뽀이(분식집), 풍화(주점), 욱채정육점. 넷이 의기투합 할 계획이다.

 

파주시가 커지고 개발되면서 적성면은 오히려 사람들이 나가고 있는 형편이다. 더구나 산업단지로 길이 뚫려서 여기 산업단지 사람들이 곧장 문산으로 빠져버린다. 도로를 만들면 좋아질거라 논리는 맞는 게 아니었다. 여기 시장도 장날 하루 괜찮은 편이고, 평일은 사람이 없다.

“전통시장은 쉬운 게 아니예요. 뭔가 메리트가 있어야해요. 기존에 한우마을이 있었고. 그런데, 한우마을이 전국 각지에 생겼잖아요. 그러니 적성시장의 특성이 없어졌지요. 뭔가 메리트가 있어야 해요.”

 

요새 선거 때문에 오시는 분들에게 많이 말한다고 했다. 감악산, 임진강을 살려달라고, 그러면 외부인들이 많이 오지 않겠냐고. “정치인들이 적성 발전, 지역 개발이라는 말을 많이 해요. 그러면 제가 말하죠. ‘구체적으로 애기해달라’고 해요. 개발되면 와서 먹고 잘 것이다. 그런 큰 그림 말고 작은 그림이 필요해요.”

 

‘작은 밴드 페스티벌’로 적성장 특성화시키고 싶어

정욱채 사장은 15년간 인디밴드 활동을 했다. 홍대앞에서 2년간 공연도 했다. 말하자면 낮에는 정육점에서 일하고, 밤에는 매일 매일 기타를 치면서 음악에 빠져살았던 셈이다. ‘언더그라운드 락 밴드’활동을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여기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밴드활동으로 적성장을 특성화하고싶어한다.

 

“동두천에서는 락페스티발을 20년간 열었다고 하더라고요. 제가 지역사회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작은 밴드 페스티발하는 것 밖에 없어요. 외국의 유명한 우드락 페스티발도 작은 규모에서 시작했잖아요.” 그는 맨날 ‘개발’이니 ‘발전’이니 하는 큰 그림을 그만 그리고,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그림’을 실천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저는 여기 적성에서도 문화생활 할 수 있는 곳이 생겼으면 해요. 같은 파주인데도, 적성은 외져있죠. 주민자치센터는 한계가 있죠.... 공연보려고 금촌 문산까지 가지 않거든요. 금촌에 가려면 1시간 걸려요. 그러니, 여기서 문화 생활을 할 수 있도록 했으면 좋겠어요. 연극 공연도 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지금 밴드를 조직하는 중이다. 드럼, 베이스기타 등 할 만한 친구들을 모았고, 장비도 준비되어 있다했다. 모이고 연습할 장소만 있으면 되는데... “올해는 여기 적성에서 밴드를 만들고, 아는 밴드들도 많이 있으니 불러서 오라하고, 이 근방에 젊은 사람들 모으고... 형님들 중 하신다는 광탄밴드 같은 분들도 모실 거예요.”

 

▲언더그라운드 락밴드 공연 당시 모습.

 

지역 특성 살리려고 노력해야

적성에는 문화재도 많다. 국가지정문화재로 가월리 주월리 구석기 유적(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389호),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물푸레나무인 200년 넘은 ‘무건리 물푸레나무’(천연기념물 제286호)가 있다. 삼국시대 치열한 영토분쟁의 현장으로 칠중성(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제437호)이 구읍리 중성산 능선에 있다. 경기도지정문화재로 무건리에 ‘김덕함 묘 및 신도비’, 백제의 평지토성이었던 육계토성이 있다.

 

파주시 지정 문화재로는 감악산비, 미수 허목선생 친필 암각문이 장좌리 임진강 암벽에 새겨져 있고, 구읍리에 적성향교가 있다.

 

무건리 물푸레나무를 제외하고는 역사적 유물이다. 그만큼 이 지역의 역사도 깊고 연구할 가치도 많다. 그런 문화재들이 방치되고 있다. 이 많은 유적들이 지역연구를 통해 구슬꿰듯 꿰어진다면 적성이 문화 탐사, 역사 탐방지가 되지 않을까?

 

감악산에는 영국군 전적비가 있다. 마가렛 대처도, 영국여왕도 방문했다. 이 곳에 영군 사람들도 들릴 수 있도록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정사장의 의문이다.

 

다섯이 모여 빈집을 빌리겠대요

“지인들 다섯 명이 밭 달린 시골 빈집을 빌려달래요. 여기저기 놀러 다니는데 지쳐서 이제 한 곳에서 텃밭을 가꾸고 여유롭게 주말을 보내고 싶은 거죠. 여기 빈집이 얼마나 많아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빈집을 재정비해서, 도시인들에게 대여해주는 것도 지역 활성화 방안으로 생각하고 있다. 
 

적성에 행복마을이라는 군인아파트가 생겨서 지역 경제에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했다. 그런데, 행복마을 안에 군인 복지 차원에서 비룡회관이 생겼다. 면세 혜택을 받아서, 삼겹살 한 근에 6,000원, 소주 1,500원, 커피숍도 있고, 회도 판다. 그러니 군인 가족들이 적성 시장으로 나오지 않고, 젊은 주부들은 문산으로 마트장 보러 간다.

 

“지역에서 서로 융화가 되어야하는데...배달도 해드린다 하는데도, 안돼요.” 이제 곧 문산에도 군인아파트 입주가 시작될 텐데, 여기처럼 지역과 융화가 되지 않는다면, 적성처럼 군인 따로, 주민 따로인 지역이 될런지도 모른다. 이런 정책은 없는 게 낫지 않을까?

 

정사장은 어울려 사는 세상을 꿈꾸고, 문화가 꽃피는 시장을 꿈꾸며, 오늘도 신나게 장사한다. “들어다 드릴까요?” 노인들이 많이 이용하니, 장날에는 알바생을 두어, 터미널까지 들어다 드린다한다. 이런 작은 데까지 정성을 들이는 걸 보니, 진짜로 여기 적성에 ‘작은 밴드 페스티발’이 시작될 거라는 믿음이 절도 생긴다.

 

15년간 정육일하면서, 밴드를 해서인지 그는 아직 총각이다. 자신은 성실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가족을 위해 최선을 다할 거라 한다. 그런데도, 그의 머리에는 여자가 아니라 적성시장이 꽉 차있다.

 

“적성이랑 결혼하게 될지도 몰라요.”

 

 

 

글 임현주 기자

사진 이우재 파주타이포그라피 배우미

 

 

#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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