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아름다운 얼굴 ㉓ 여성민우회 이정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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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아닌 ‛나"로 살때 우리는 행복하다"
동그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 옆집 언니처럼 푸근한 미소의 고양파주여성민우회 이정아 대표를 만났다. 고양파주여성민우회에서 올해로 8년째 상근활동을 하고 있다. 6년 전부터는 사무국장을 맡아 김민문정 대표와 함께 활동하다가, 김대표가 중앙 일을 하게 되면서 주변의 추천을 받아 작년에 대표직을 맡게 됐다. 사실 몸 상태가 좋지 않아 거절할까도 생각하다 그간 함께 해왔던 사업을 마무리 짓고 싶어서 대표직을 맡았다고 했다.
‘더불어 살기", ‘다른 생명들과 함께 살기", 모든 사람들이 편견 없이 차별 없이 함께 사는 세상을 그녀는 꿈꾸고 있다.
‘그림자 노동"에서 진짜 ‘나"를 찾아서
2014년에 고양파주여성민우회 대표로 선출된 이정아 씨는 가난한 종가집 7남매 중 맏딸이었다. 같은 또래 대부분이 경험했던 가난에다 종가집이어서 다달이 돌아오는 제사와 온갖 규율과 규제라는 덤까지 보태진 어린 시절이었다. 그래서 제사도 없고 가족도 단촐하니 남매만 있는 남자를 만났다. 하지만 결혼이 변화를 가져다주진 않았다. 동갑내기 남편은 말 잘 통하는 ‘친구"인 줄 알았더니 ‘남자"였고, 어느새 자신은 여전히 남편과 시댁을 돌보는 종가집 맏딸 같은 신세가 되어 있었다. "표 나지 않으면서 힘들고 지쳐가는 ‘그림자 노동" 딱 그만큼의 나였죠." 그 때를 이정아 대표는 이렇게 표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내가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맞추기만 하는 것은 내 삶이 아니다"라는 것을 여성민우회 활동을 통해 알게 되었다.
"큰 아이 한 살 때니까, 26년 전이네요. 당시 즐겨 읽던 ‘샘이 깊은 물"이라는 잡지를 통해 도ㆍ농 연결 순환 고리의 필요성 등에 대해 어느 정도 관심을 지니고 있을 때였죠. 베란다 밖을 내다보다 발견한 소비자생활협동조합 배송 트럭을 발견하고는 냉큼 조합원으로 가입 했어요. 이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하면서 사회공부를 조금씩 시작했죠. 소모임에 들어가 같은 책을 읽는 것도 재미 있었고, 농약 유해성을 조목조목 적은 피켓을 들고 거리에 나서기도 했어요. 홈페이지에 좋아하는 음식 만들기 팁을 올리면서 조금씩 동화되어 갔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 즐기면서, 나와 조금은 다른 사람들을 만나 감동도 받으며 그렇게 시작되었던 거죠."
이렇게 ‘나"를 존중하고, ‘나" 없이 주변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세상은 새롭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런 자각으로 자신의 힘을 깨달았을 때의 첫 감동이 그를 지금 고양파주여성민우회의 대표로 끌고온 원동력이 되었다.
‘부엌에서 세상을 보자"
그는 자신의 삶 속에서 운동의 힘을 찾은 사람이었다. 주부에서 활동가로 변신한 가장 큰 기본은 자신의 일상에 대해 고민을 해왔기 때문이다. 부엌, 주부, 가족이라는 여러 존재에서 실천하는 여성활동가로의 변신. 이정아대표는 그래서 ‘부엌에서 세상을 보자"고 한다. 여성이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부엌을 무심코 보지 말고, 꼼꼼이 보자는 것이다.
"당장 식자재가 생산되는 과정, 조리하는 과정, 그리고 식탁에 올리기까지 어느 하나 정치적이지 않은 게 없죠. 그 속에서 환경의 문제, 아이들의 급식문제, 생산과 유통과정에 발생하는 불합리한 구조, 소비의 주체로서 나와 소비당하는 나의 위치, 가족 내 평등한 관계 등등 부엌에는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가 들어있죠. 여성에게 가장 친근한 공간인 부엌을 통해 사회를 다시 보자는 의미로 부엌을 이슈의 출발지로 삼았지요."
이것이 일상이 운동이 되는 여성민우회의 큰 힘이다. 그렇게 시작된 이슈는 ‘기꺼이 불편해지기" ‘작게 적게 천천히" ‘웃어라 명절" 등의 슬로건으로 전체 여성들에게 퍼져가기 시작했다. 보통의 주부들이 소소한 일상 속에서 차별과 소외를 발견하고, 스스로 극복하고, 조금씩 ‘참여하는 여성"이 되어가면서 오늘날의 여성민우회가 된 것이다.
여성의 벗 고양파주여성민우회
이정아 씨가 대표로 일하는 고양파주여성민우회는 15년 전 고양여성민우회에서 출발하여 2011년부터 고양과 파주지역을 활동대상으로 조직을 확장했다. 파주에 부설기구로서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하담"과 파주성폭력상담소를 운영하고 있고, 고양에는 성폭력상담소와 지역아동센터인 꿈틀이를 운영하고 있다.
파주운정행복센터에 입주한 파주성폭력상담소는 여성주의 상담을 바탕으로 성폭력·가정폭력피해자의 심리적, 법적, 의료적 지원과 치유회복 상담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주부를 대상으로 교육 문제 등에 대한 특강을 열어 지역주민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금릉역과 교하 중앙공원 등지에서 벌인 성폭력예방 캠페인은 참여형 교육프로그램을 곁들여 학생들에게 인기가 높은 편이다. 성폭력과 상담 인력을 꾸준히 양성하여 또래·학교성교육 등에 강사를 파견하고 있다.
이 외에도 공삼여행, 여적, 참스, 엄마만세 등 8개의 소모임이 있어 회원들의 일상적인 활동과 교류가 활발하다.
여성민우회는 무엇보다 이러한 사업과 활동의 근간이 되는 제도를 만들기 위한 활동에 노력을 기울여왔다. 여성정책조례 개선활동, 식당여성노동자 노동인권 실태조사 및 토론회, 고양시 보육커뮤니티공간 설치제안 등 시민 삶의 질 향상을 위한 활동을 주요 정책사업을 펼쳐왔다.
▲고양파주여성민우회 '여적' 소모임에서
경력단절 여성 ‘교육 유목민"으로 떠돌아
자신도 그러했듯이 여성들이 임신과 출산, 보육기를 거치며 자의반 타의반 사회 임금노동으로부터 단절된다. 그러다 몇 년, 혹은 십여 년이 지나 사회활동을 하려다 보면 현실은 그야말로 벼랑이다. 그래서 자격증을 갖고자 이런 저런 교육기관과 통신 교육에 돈과 정성을 쏟는다. 그러나, 손에 쥐게 된 자격증은 일자리로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다른 자격증을 따기 위해 시간을 쏟고...
"혹시나 하는 맘에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소문이 났다는 자격증을 따기 위해 매달리죠. 이러한 희망고문은 전업주부였던 여성들을 교육유목민으로 내몰고 있다고 봅니다, 파주 · 고양에는 이런 주부들이 유난히 많아요."
세상은 일과 가정 양립을 외치며 이제 여성들도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사회가 진짜 일과 가정 양립이 가능하도록 기능하고 있는지 물어야 한다고 이정아 대표는 말한다.
"사소함에서부터 삶과 사회는 변화"
"주부들이 16시간 이상 가사노동을 하면서 당당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왠지 스스로 위축되어 가죠. 이럴 때 ‘나" 를 찾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을 만들려는 나의 의지가 우선되어야 하고 이때 가족들의 배려와 양보가 필요한 거죠. 이렇게 진정한 나를 찾는 여행을 시작하면 어느새 나와 같이 걷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여성민우회와 함께 해도 참 좋아요!"
나를 찾는 사소한 시작에서부터 삶과 사회는 변한다. 이정아 대표가 바로 그 증표이다.
▲2015년 송년회에서 인사하는 이정아 대표.
[페미니즘은 여성이 인류를 구원하고 지구를 구하는 성모가 되려는 운동이 아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자기 자신을 구원하고 동등한 인간이 되고자 하는 것이다. 여성에게 아무런 권리도, 자원도 제공하지 않으면서 남성의 구원자가 되라고 요구하는 것은 바로, 그리고 항상, 가부장제의 요구였다. 여성은 늘 타인을 돌보도록 강제되었으며 자기 자신의 요구는 맨 마지막으로 돌려야만한다고, 아니 자신을 돌봐서는 안 된다고 교육받았다. 여성의 자기 돌봄은 가부장제에 대한 가장 근본적인 도전이다.] 이정아 대표가 소모임에서 발표한 발제문의 일부이다. 그는 이제 페미니즘으로 무장한 여성활동가로 우뚝 서있다.
이정아 대표는 여성공동체 활동을 통해 여성의 삶이 보다 나아지기를 바라고 있다. "파주ㆍ고양시 권역에 여성들의 일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기반이 되고 싶어요."인터뷰 시간중에도 여러 업무를 처리해야 하는 이정아 대표. 그녀를 누가 평범한 주부였다고 상상할 수 있을까. 활기찬 삶을 원하는, 세상의 변화를 바라는 누구라도 여성민우회에 손을 내밀어 보길 권하는 바이다. 남성도 대환영이란다. 전화를 걸어보고 어딘가 계속 두드리다 보면 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릴 지도 모르는 일이다.
전화 : 031-907-1003
http://goyang.womenlink.or.kr
글 편집부 / 사진 정영돈 사진작가, 고양파주여성민우회 제공
#2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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