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철책선 안을 흐르는 임진강에서 온갖 새들은 즐거웠다
시민에세이
분단 철책선 안을 흐르는 임진강에서 온갖 새들은 즐거웠다
- 추수가 시작되자 찾아드는 겨울철새
- 민통선 농민들이 재두루미 소식 전해
노현기 시민기자
▲초평도 앞 임진강둑에서 본 낙조임진강에 있는 초평도는 정전협정이후 사람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 하천위의 섬입니다. 그 뒤로 초평도는 동물들의 천국이 됐습니다. ⓒ 노현기
임진강변에 추수가 시작되면 기러기부터 겨울새들이 오기 시작한다. 10월 중순이 되면 재두루미가 오고 두루미는 가장 늦게 오고 일찍 북쪽으로 떠난다.
장마 수준이었던 10월 중순 비에 추수를 못하는 농부만 발을 동동거린 게 아니었다. 머나먼 남쪽 나라로 가기전 추수하는 논을 따라다니며 메뚜기로 배를 충분히 채우고 가야하는 제비는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갔을 거다. 추수가 끝난 논에서 낙곡을 먹는 새들도 충분히 먹지 못했다.
파주 민간인통제구역으로 오는 두루미류는 연천, 철원과 먹이 활동하는 습관이 다르다. 논이 적은 연천에서 재두루미들을 많이 보기 어려웠다. 두루미들은 두 개의 임진강 여울과 율무를 먹었다. 그런데 2021년 ‘평화경작지’를 조성해 경작한 이후 달라졌다. 평화경작지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제안으로 한탄강지키기운동본부와 경기도가 MOU를 체결해 만들었다. 경작, 관리는 전국농민회총연맹 연천농민회가 경작, 관리한다. 원래 이곳은 논이었는데 군남홍수조절지를 만들고 홍수대비 범람원으로 논을 수용했다. 이후 농사를 짓지않자 단풍잎돼지풀이 군락을 이루고 사이사이 쓰레기 범벅이 됐는데 논으로 만든 이후 두루미들의 먹이터가 됐고, 겨울에 무논을 조성에 잠자리 터도 하나 더 생겼다. 농부들이 ‘공룡알’이라 부르는 곤포싸일리지도 말지 않는다. 철원은 새들에게 볍씨를 나눠주는 농민들이 있고, 무논으로 놔둔 곳도 있는데 그곳을 중심으로 모여있다. ‘두루미와 농사짓는 농부들’ 덕이다.
▲하늘을 나는 재두루미들재두루미가 임진강변 하늘을 납니다. 수백마리 재두루미들이 남쪽을 향해 날아간다고 민통선안에서 농사짓는 농부들이 말합니다. ⓒ 노현기
이에 비해 파주에서 월동하는 두루미들은 농부들과 공동으로 소유한 논이 있다. 가족 단위로 정해진 곳에서 먹이 활동을 하고, 다음 해에도 그 가족이 다시 온다. 늦게 온 두루미들은 먼저 온 재두루미와 같은 논을 쓰기도 하다. 간혹 두루미 가족이 여유롭게 낙곡을 먹는데 뒤에 독수리 10여 마리가 병풍처럼 앉아 있기도 한다. 정해진 논에서 먹이활동을 하기 때문에 봄에 고향으로 떠났던 부부가 가을에 새끼를 키워 데려오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같은 민통선이지만 파주는 판문점과 개성으로 연결되는 도로가 있기에 출입이 훨씬 까다롭다. 사람이 먹이를 주기 어렵기에 두루미류가 갖고 있는 본래 생활을 볼 수 있는 것 같다. 물론 볏짚 존치 지원을 받은 논에 재두루미 백여마리가 모여서 겨우내 모여있는 모습도 볼 수는 있다.
논에서 먹이활동을 하다 임진강에 물이 빠지면 강뻘로 와서 콩게 같은 동물성 먹이를 먹는다. 밤에는 임진강 초평도 앞 막개여울, 반정리 강뻘, DMZ안에 있는 습지 같은 곳에 모여서 잔다.
신기한 것은 농부들과 직통전화라도 있는 것처럼 먼저 추수하는 논에서 겨울을 보내는 가족부터 온다. 이 시기에 황금벌판을 뒤에 둔 재두루미 가족을 볼 수 있는데 추수가 늦은 파주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이다.
그런데 올해는 10월 중순까지 비가 왔다. 비가 그치고 본격적인 추수가 시작됐을 때 파주농민회 단체대화방에 문자를 띄웠다.
‘추수를 하니 재두루미가 오기 시작했을 겁니다. 재두루미 보시면 사진 좀 찍어 올려주세요. 장소를 알려주시고요. 농사를 지어야 사는 두루미류는 파주 민통선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아주 중요해요. 올려주신 사진은 국립생태원에서 운영하는 홈페이지에 올리려합니다.’
▲독수리가 오기시작했다. 젊고 건강해 먼저 온 세마리다. ⓒ 노현기
메시지를 올리고 첫 소식은 UN사 허락을 받아야만 갈 수 있는 DMZ내 대성동에 사는 농부가 하늘을 나는 재두루미 4마리 한가족 사진을 보내왔다. 한 분이 올리니 읍내리, 서곡리, 정자리, 동파리 재두루미 가족들이 줄줄이 올라왔다. 특히 블루베리 재배 농민은 정자리 임진강변 논에서 상당히 많은 재두루미들이 낙곡을 먹는 사진과 동영상을 보내줬다. 민통선 농부들이 중요한 시민생태조사원임이 확실하다. 겨울이면 ‘하얀 기러기’(흰기러기), 못 보던 두루미 등의 새소식을 전해준다.
이쯤되자 직접 보고 싶어 몸이 근질거렸다. 임진강과 DMZ의 풍경과 생명들을 그리는 우리 동네 부부 화가 전용주, 김시하 작가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점심 무렵에 들어가 통일촌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 임진강변을 가기로 했다. 임진강은 역광이 비추고 석양까지 볼 수 있는 오후가 멋진 곳이기 때문이다. 통일촌 부녀회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마을아래 휴게소부터 들렀다. 기념품이나 특산품 뭐가 나왔는지도 살핀다는 핑계로 늦장을 폈다. 새로 개발했다는 민통선에서 재배한 쌀로 생산한 물에 타먹는 가루막걸리 시음회도 하고 있었다.
두 시가 넘어서야 정자리 임진강둑으로 향했다. 정자리 논에도 두가족이 있는데 농부가 추수를 하고 있어, 재두루미가 왔어도 사람을 피해 다른 곳으로 외출했을 것이다. 임진강이 밀물인데가 이미 상당히 물이 차 있어서 없을 수도 임진강쪽으로는 없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제방길 한 굽이, 두 굽이 지나 왼쪽 첫 번째 논에서 재두루미 부부가 낙곡을 먹다가 우리가 차를 세우자 머리를 곧추세웠다. 재두루미 부부의 긴장에 우리도 덩달아 숨죽이며 차안에서 사진을 찍어댔다. 조금 더 가니까 이번에는 마지막 남은 듯 좁은 강뻘에 부부가 있다. 이번엔 차에서 내렸다. 새들도 머리가 좋아서 우리가 임진강으로는 내려올 수 없다는 걸 안다. 해마루촌 농부이면서 ‘임진강 기행’을 쓴 이재석 작가는 ‘국제두루미심포지움’에 초대받아 순천을 갔을 때 새벽에 흑두루미떼를 보고 자드라 숙소에 있던 내게 투덜거렸다.
“많긴 많데요. 근데 너무 멀어서 새들 얼굴을 볼 수 없어요. 우리 동네는 애들은 눈동자까지 볼 수 있잖아요.”
뻘 위에 부부를 찍는데 재두루미 가족들이 마치 우리를 환영하듯 줄줄이 하늘을 날았다. 차를 몰아 더 안쪽으로 가는데도 강에서 논으로, 논에서 강으로 재두루미들이 날았다. 전용주 작가와 내가 차에서 내려 강둑을 걷는데 일군의 오리들이 시끄럽게 수다를 떨며 임진강으로 멋지게 착지했다.
여러 종류의 오리가 모두 모두 강물 위에 떠서 물속에 머리를 넣었다가 하늘 한번 보기를 반복하며 작은 물고기나 새우를 잡아먹었다. 강 건너 마정뻘에는 기러기떼 앉아 졸고 있다. 재두루미들은 줄줄이 하늘을 날았다. 카메라를 하늘로 강으로 바삐 움직이며 시하 작가는 연신 혼잣말을 했다.
“여기가 새들의 천국이네.”
어느 순간 졸던 기러기들이 화들짝 놀라 한꺼번에 날아오른다. 바닷물이 점점 치고 올라오니 기러기 떼가 앉아 졸던 뻘이 잠기기 시작했다. 막다른 길 임진강 위에 있는 섬 초평도 앞에까지 갔다. 초평도는 정전협정 이후 사람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했지만, 그 때문에 동물들의 천국이 됐다.
▲물은 차오르는데 좁게 남아 있는 강뻘위에서 재두루미들이 열심히 일하고 있다. 고개를 들고 있는 친구는 망을 보는 중이다. ⓒ 노현기
파주농민회가 해마다 ‘평화와 통일기원 해맞이’를 하는 덕진산성으로 가기 위해 되돌아 나오는데 들어올 때 못 본 아이를 둔 재두루미 부부 한 쌍 포함 일곱 마리가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우리는 단풍도 볼 겸 숲길로 덕진산성을 가기로 했다. 숲길로 접어들기 전 예사롭지 않은 맹금류 한 마리가 나무 뒤로 숨었다. 차를 세우고 숨은 곳이 어딘지를 찾는데 순간 시커먼 새가 하늘로 날았다.
독수리, 독수리가 왔다. 숨었던 독수리가 날자 산 꼭데기 뒤쪽 하늘에서 또 다른 독수리 두마리가 유유히 날아온다. 세 마리다. 건강한 독수리 셋이 선발대로 온 것 같다. 앞으로 몽골에서 머나먼 길을 줄줄이 날아 올 것이다. 독수리 밥을 주는 우리 동네 농부님들 추수 끝나는대로 쉴틈 없이 독수리 밥상 차리겠다.
이날 저녁 국밥집에서 만난 파주농민회 회원들께 재두루미 만난 얘기를 했더니 요즘 몇백마리씩 날아간다고 한다. 더 남쪽으로 가는 친구들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