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창수 칼럼 -담배를 피우는 곳에 세금을
정창수 칼럼 -담배를 피우는 곳에 세금을
담배를 피우는 풍경
<재벌집 막내아들>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투자의 고수가 이런 말을 합니다. 투자를 할 때 반드시 체크하는 것이 있는데, 길거리의 간판을 본다는 것입니다. 간판이 무엇으로 바뀌는지를 보면 시장의 변화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야기는 PC방이었습니다. “IT 강국으로 가겠다는 나라가 집에 컴퓨터 한 대가 없어서 PC방이 곳곳에 있는 게 말이 되냐”고 흥분한 모습에서 E스포츠가 성행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마찬가지로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에서 우리는 담배시장의 변화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요즘 길거리에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을 잘 보기 힘듭니다. 더구나 피우는 사람도 예전 담배가 아닙니다. 주로 전자담배를 피우고 있습니다. 그리고 냄새가 나지 않는다고 실내에서조차 피우고 있습니다.
실제로 통계로도 확인됩니다. <담배 시장동향> 자료에 의하면 국내 궐련 판매량은 2021년부터 4년 연속 감소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2024년 판매량은 28억 7000만 갑으로 전년 대비 4.3% 줄었습니다.
이미 담배는 전 세계 시장에서 위축되고 있습니다. 올해 초 JTI는 캐나다 정부와 237억 원의 합의를 했습니다. 흡연 관련 질병으로 인한 정부의 보건 의료비 손실과 흡연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 책임을 포함한 금액입니다. BAT가 네덜란드 정부에 1억 700만 유로, 미국 정부가 5억 8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한 것입니다.
담배회사들은 새로운 곳에서 활로를 찾고 있습니다. 글로벌 담배 1위 필립모리스는 2030년까지 궐련 생산을 전량 전자담배로 바꾼다고 합니다. BAT는 2035년까지 절반을 전자담배로 바꾼답니다.
담배를 피우는 풍경은 담배산업의 현재를 보여주는 척도입니다.
법 밖의 담배 - 국회에서 멈춘 담배법
우리는 상황이 어떨까요. 2005년 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에 가입했지만 전자담배에 대한 규제체계는 여전히 미완성입니다. ‘기술혁신’과 ‘사업전환’이라는 주장에 보건의료계와 시민단체들은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습니다. 규제의 허점 속에 담배산업은 새로운 골드러시를 맞이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습니다.
합성니코틴에 대한 과세를 검토하는 문제는 새 정부의 국정기획위에서도 논쟁거리였습니다. 따라서 담배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대두되었습니다. 국민건강증진 및 청소년 보호를 위해 담배사업법을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이었습니다. 다만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기존 사업자 보호를 위한 유예기간 등 추가 검토를 요구하는 이견이 있었습니다.
이런 조심스런 접근과 의견은 과거의 경험 때문입니다. 지난 5월 18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담배사업법 일부개정안을 심사했으나 통과가 불발되었습니다.
담배의 원료 범위를 기존 “연초의 잎”에서 “연초 및 니코틴”으로 바꾸는 데 합의했으나 막상 소위가 열리자 일부 의원들이 전자담배업계의 생존권 때문에 법을 반대하게 된 것입니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그동안 담배규제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스쿨존에서도 판매가 가능합니다. 더구나 세금 및 부담금도 사실상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합성니코틴을 이용한 액상형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청소년들이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질병관리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해 액상형 전자담배를 이용한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 비율은 3.57%(2023년 1.19%), 여학생은 1.54%(2023년 0.94%)였습니다.
모두 전년보다 크게 증가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여학생들의 액상형 전자담배 사용률은 관련 조사 후 처음으로 일반 담배 사용률(1.33%)을 앞질렀습니다. 규제의 공백이 청소년 흡연 확산을 방치하고 있는 셈입니다.
법의 규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타르, 니코틴 함량 등을 표기할 의무가 없습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합성니코틴으로 만든 액상 제품 대부분은 중국에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담배 대용품이고 유해성도 입증되었음에도 일부 수입업자들을 위해서 법안 통과를 막았다는 비판이 제기됩니다. 이미 OECD 38개 회원국 중에서 한국, 일본, 콜롬비아를 제외한 35개국에서 담배에 준해 규제합니다. 건강 보호가 우선이고 세수 확보는 부차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건강 문제는 건강보험 부담을 증대시키기 때문에 결국 재정문제이기도 합니다.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니코틴이 있는 곳에 세금을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9월 22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경제재정소위원회를 열고 담배사업법 개정안을 의결했습니다. 액상형 전자담배의 원료인 ‘합성니코틴’도 담배로 규정해 세금을 부과하고 규제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이 9년 만에 국회 첫 문턱을 넘은 것입니다.
개정안은 기존의 담배 정의를 기존 ‘천연니코틴’의 원료인 ‘연초의 잎’에서 “연초” 또는 ‘니코틴’으로 확대하는 내용입니다. 담배의 정의가 바뀌는 것은 1988년 법 개정 이후 37년 만입니다.
지난해 10월 기재부와 복지부의 용역 조사에서 유해성이 확인된 결과입니다. 연초 니코틴보다 1.9배 많은 유해물이 검출되었다고 합니다. 애연가들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전자담배는 더 위험한 담배입니다.
소위를 통과한 법안은 기재부 전체회의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를 거쳐 본회의로 넘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소위에서는 한두 명의 의원이 반대하면 막힐 수 있지만 회의 규모가 커지면 그래도 통과 가능성이 많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담배회사들의 로비에 넘어간 의원들이 없기를 바랍니다. 누구인지 주의 깊게 지켜보았으면 합니다.
더불어 재정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국회예산정책처는 합성니코틴에 담배소비세를 적용하면 연간 약 9300억 원 규모의 세수가 걷힌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수 문제뿐만일까요. 이로 인한 건강 피해는 수조 원을 넘습니다. 이에 대한 피해를 담배에 전가하면 담배값은 몇 배로 올려야 할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에 대한 분석과 규명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다른 나라들은 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을, 니코틴이 있는 곳에 세금을, 건강 피해에 세금을 물려야 합니다. 공동체의 원칙이 지켜지기를 바랍니다.






